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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Aug 15. 2023

운동이 싫은 나의
가성비 다이어트 성공기 (15)

3차 다이어트 (2) :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다

   매일 같이 야근을 불사하면서 일을 했던 이유는 일 자체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가장 컸다.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기에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조건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각오한 바였다. (물론 이렇게 강도 높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처음에는 일에 서툴러 바쁘게 구르더라도 조금 지나면 능숙해져서 이런 일상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일이 능숙해지며 업무를 쳐내는 속도가 올라가는 것보다 내 건강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건 업무의 특성 때문이기도, 내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우선 관리 업무 특성상 자잘하게 할 게 많았다. 집안일과 비슷해서 열심히 하면 티가 잘 안 나지만 빠뜨리면 금방 티가 난다. 그리고 안 하려면 얼마든지 대충 할 수 있지만 잘 하려면 얼마든지 할 게 많아질 수 있다. 타협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지 못하면 무한하게 증식하는 일의 굴레에 그저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떤 일이든 대충 하는 것을 못 견디는 스타일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심지어 같은 업무도 더 잘 하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했다. 끝을 모르게 일의 퀄리티를 높이려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내 빠른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빠르게 탈진시키는 독이 든 성배였다.






   그렇게 일을 하다 반년 쯤 지났을 때 나는 이러다가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한 번쯤 쓰러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걸 남들에게도 명백하게 확인시키는 셈이니까. 하지만 의외로 쓰러지지는 않았고 그 대신 피부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인생 역대급으로 최악의 상태가 됐다.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니 아토피가 점점 더 심해졌고, 피부가 붓고 갈라지며 진물이 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온 몸의 상처가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외형마저 일그러져 거울을 보기조차 괴로웠다.



   이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아졌던 건 지금까지 2번 정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도 더 심했다. 그때도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했지만 그나마 내 맘대로 밖에 안 나갈 수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근을 위해 반드시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위한 최소한의 사람과의 최소한의 노출만을 감수하며 사적인 약속은 거의 잡지 않았다. 상태가 안 좋은 게 겉으로도 티가 많이 났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괜찮은 척 하려고 정말 많이 애썼다. 그래도 (조금 나중에 알았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까지 겉으로 말은 별로 안 했지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꺼내들고 싶지 않았던 퇴사를 결국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시작한 일을 반년 만에 그만두는 건 뭔가 내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어떤 일도 최소한 1년은 겪어봐야 성실함과 경험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의 퇴직금이라도 받으려면 1년은 견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못 받고 퇴사하면 나중에도 계속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반년을 더 버텼다. 건강을 위해 더 빨리 퇴사하는 게 나았을까? 아니면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1년을 채운 것이 나았을까? 이건 지금 생각해도 판단하기가 어렵다.






   한편 퇴사를 생각하면서도 오랫동안 우물쭈물하며 계속 망설이기를 반복하던 차, 내 결심에 힘이 실린 건 여자친구가 생기면서부터였다. 9~18시 근무를 하는 여자친구와 활동 시간대가 엇갈리는 것이 불편했을 뿐더러 내 생활 패턴이 더욱 극명하게 대조되다보니 앞으로의 내 건강에 대한 걱정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여자친구도 내 건강을 많이 걱정했다. 이미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때문이었다. 내가 한참 망가진 상태로 살 때를 첫인상으로 만났어서 그런지 더욱 그랬다. 내 상황을 이해하기에 밤에 뭘 많이 먹는 습관이나 늘어난 뱃살 등을 보며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현 상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다이어트로 유지했던 몸은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다시 펑퍼짐해졌고, 여자친구는 과거의 ‘관리하던 나’가 아닌 ‘최악으로 망가진 나’를 첫인상으로 보고 있었다. 비록 내 기준으로 최악인거고 여자친구가 볼 때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살이 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지만 – 만약 그랬다면 만날 생각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 – 나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쇠락해버린 내가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퇴사하고 나면 우선 다이어트를 비롯한 건강 회복에 주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때까지도 여자친구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전에도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많이 뺐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아직 보지 못한 순간이니까. 아무래도 말만 더 반복하기보다 직접 ‘전성기(?)의 나’를 보여주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마침내 작년 9월이 되어서야 나는 퇴사를 했다. 예상과 달리 원하던 시점에 바로 퇴사하지는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1년보다 조금 더 지나서야 퇴사를 할 수 있었다. 휴식 겸 퇴사 기념으로 제주도에 2박 3일 놀러갔다 온 뒤, 나는 열심히 자면서 건강을 되찾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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