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다이어트 (3) : 이전보다 높아진 난이도
일하는 동안 나를 버티게 해준 건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야근 때마다 먹는 야식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야식이야말로 거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리고 그 야식의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나왔다. 냉정히 말하자면 편의점 음식을 그렇게 매일같이 먹은 것 또한 피부를 망치는 큰 원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이걸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양도 최소 1.5인분 이상이었다. 그만큼 배고프기도 했고 보복성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 2년간 간신히 줄여놨던 뱃살과 몸무게가 다시 서서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이 안 찌고는 배길 수 없는 양이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렇게까지 자주, 많이 먹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밤에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 낮에라도 조금 먹자는 생각에 샐러드를 먹기도 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낮에 얼마나 먹든 밤 10시가 되면 배가 고파지는 건 마찬가지였고 밤에 먹는 양은 낮에 먹는 양의 차이를 상쇄할 정도로 많았으니까.
그 정도였기에 퇴사 전 습관이 몸에 익숙히 배어 잘 뿌리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퇴사한 다음날부터 나는 편의점에 야식을 사먹으러 가지 않게 되었다. 야식뿐만 아니라 편의점에 뭔가 사러 가는 빈도 자체가 크게 줄었다. 이전의 습관이 대부분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이었음이 이렇게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여하튼 퇴사를 했으니 이제는 말로 다짐했던 다이어트를 실천할 때가 되었다. 2차 다이어트의 기억이 머리엔 남아있었지만 몸에서는 다 휘발되어 버렸다. 쌓은 건 2년이었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으니까. 조금이나마 만들어놨던 근육마저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시작 지점을 파악해야지. 몸무게를 재보았다. 맙소사, 83.5kg이었다. 시작부터 아찔했다. 2차 다이어트를 하기 전보다도 더 쪘다. 2차 다이어트 때도 역대급 몸무게였는데 그 기록을 또다시 갱신한 것이다. 어쩐지 늘어난 뱃살 높이가 심상치 않더라니……. 어서 빨리 이 상태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2차 다이어트 때와 마찬가지로 끼니 때 먹는 것을 조금 줄이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운동량을 예전처럼 해볼까 시도했지만 반도 안 돼서 몸이 못 버티는 걸 느끼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결국 양을 확 줄여서 2차 다이어트 초창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9월 말까지도 나는 어느 정도 안이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년간 간식에 길들여진 내가 간식을 확 끊지 못하고 은근슬쩍 허용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식부터 단호하게 끊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고, 매끼 식단도 별로 손을 대지 않았으니 먹는 양을 조절했다 하더라도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10월 초쯤에 다시 한 번 몸무게를 쟀다. 2주는 족히 지났으니 많이는 아니어도 솔직히 1kg 정도는 빠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83.5kg 그대로였다. 아뿔싸. 그제서야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몸무게가 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상당히 비관적인 사람이었다. 소수점조차 전혀 변하지 않은 몸무게에 나는 제대로 충격을 받았다. 진짜 경각심이 들었다. 이건 안 된다. 이렇게 느슨하고 허술한 마음으로는 절대 살을 뺄 수 없다. 역대급 비상사태인 만큼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이후부터 나는 식단에도 제대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간만 날리고 고생만 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차피 퇴사하고 쉬는 상태인지라 내 생활 패턴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2차 다이어트 때 하던 대로 하루 2끼 먹기, 평균 16시간 공복 유지(16:8 간헐적 단식), 월·수·금요일 및 화·목·토요일 나눠서 푸쉬업/스쿼트 및 복근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패턴은 지난번 시도했던 ‘몰아서 하기’와 ‘나눠서 하기’ 중 후자가 좀 더 심리적 부담감이 덜했기에 선택했다.
2차 다이어트 때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식단에 더 많은 변화를 주었으며 이를 비교적 철저히 지켰다는 것이다. 평균 하루에 1끼 이상은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먹었다. 사먹는 것 대신 집에서 직접 만든 샐러드로 말이다. (내가 직접 만든 건 아니고 엄마가 해주셨다. 3차 다이어트 성공에는 엄마의 지분도 높다.) 그렇게 먹는 칼로리와 구성을 크게 바꾸고, 때때로 전날 다른 걸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다음날 하루 2끼를 간식 없이 샐러드만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비록 그런 날은 잠들기 전 허기가 크게 느껴졌지만, 이 또한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 감내해야 할 의미 있는 시련이라고 여기며 참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은 여전히 가고 싶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을 빡세게 하는 건 여전히 싫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헬스장 등록비 그 자체도 아까웠지만 뭔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민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헬스장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알고 공부해야 하는 것 또는 신경 쓰며 관리해야 하는 것이 점점 늘어날 테니까. 반면 나는 운동에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들일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목표는 그저 가슴과 팔, 배와 다리에 약간의 근육이 보기 좋게 붙는 정도였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운동인데 그걸 위해 내 생활 패턴에 큰 변화를 줘야 하고, 심지어 그 비중과 강도를 점점 더 늘려야 하고, 혹시라도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 쉬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한다 쳐도 다시 취업을 하고나면? 직장을 다니면서 헬스까지 병행할 자신은 없다 – 본전 생각이 나게 되는, 왠지 끝없이 확장될 것 같은 나선형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도 나는 살을 많이 빼는 게 더 우선이었기에 일단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근육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와 강박까지 동시에 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