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다이어트 (1) :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파도
2차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학교를 졸업하면서 동시에 취업을 했다. 나의 첫 직장은 학원이었다. 보통 생각하는 강의를 하는 강사는 아니었고 학생들의 학습을 관리하면서 상담을 병행하는 일이었다. 다만 학원 스케줄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학생들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식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오후 1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일이 끝났다.
입사 전에는 1시 출근이 매우 여유롭게 느껴졌다. 웬만큼 늦게 자도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부터 계속 해오던 운동을 출근 전에 하면 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또 필요하다면 오전 시간을 활용해 다른 무언가도 해볼 수 있겠다는 호기로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를 크게 비웃었다. 우선 업무 시간이 매우 빡빡했다. 업무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많아서 화장실조차 편하게 다녀오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그런데도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자꾸 남아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 첫날부터 나는 야근을 했다. 게다가 매일 해야 하는 반복 업무량 자체가 많아 다음날로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입사 전에는 ‘11시쯤 집에 들어와 조금 쉬다가 금방 자면 되겠지’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나는 기본 3~4시간씩 야근을 하며 버스가 끊긴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빠르게 쌓이는 피로는 어디 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몸에 채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 후 처음 한 달 동안에는 출근 전 운동을 유지했다. 정말 극강의 의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힘들어지며 결국 포기했다. 잠이 부족해지니 운동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안 됐고 그것을 이유로 운동 자체를 안 하게 된 것이다. 운동을 그만두자 생활 패턴의 변화는 더 빨라졌고, 그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야근하고 늦게 자며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완전히 야행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패턴이 엉망이 된 것은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하교하고 바로 학원에 오기 때문에 4시 이후부터는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식사 시간은 보통 오후 3~4시였다. 점심이라기엔 너무 늦고 저녁이라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을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10시가 되었을 때는 진이 다 빠졌다.
야근을 하면 더더욱 그랬다. 10시에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더 일을 하려니 낮 시간 만큼 효율이 안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어쨌든 해야 하니 붙잡다 보면 오래 앉아있게 되고 배고픔은 강해졌다. 처음에는 ‘야식은 살찌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붙잡고 꾹 참고 버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함께 야근을 하며 야식을 시켜먹는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야근을 하며 돈을 버는데 먹는 것 하나 마음대로 못하면 무슨 낙이 있나 하는 억울함도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때부터 또 다시 리미터가 풀리며 나는 먹을 것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면서 새벽 1~2시에는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게 되면 잠시 여유를 내어 근처 편의점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차피 포괄임금제라 야근 수당이 없었어서 그런지 야근 시간에 내가 무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별로 살펴보지 않았던 편의점 내 다양한 음식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간식거리를 찾아보면서 이것저것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끼니가 될 만한 것으로 옮겨갔다. 자연스레 도시락, 라면, 샌드위치, 각종 즉석식품 등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격 대비 맛과 양을 따지다 보니 주로 도시락과 라면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락도 메뉴 구성과 양을 비교해가며 먹어봤고, 컵라면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먹어봤다. 특히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 다양한 즉석식품도 먹어봤다. 떡볶이, 라볶이, 우동, 칼국수, 수제비, 파스타, 국밥, 닭강정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편의점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음식을 판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물론 간식류도 많이 먹었다. 단짠단짠이야말로 스트레스 해소에 직빵이었으니까. 편의점에서 보이는 과자나 빵을 사와서 중간 중간 먹기도 하고, 야근할 때는 어느 카페에서 디저트를 배달시켜 먹기도 했다. 커피는 물론이고 딸기라떼, 크로플, 버터바, 케이크 등등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 여담이지만 이때 시켜먹은 그 카페의 그 디저트는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나면 그리워진다. 비단 그때 먹은 거라서가 아니라 퇴사 후 다른 디저트도 다양하게 먹어봤지만 여기만큼 맛있는 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스트레스성 폭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이때는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긴 야근에도 불구하고 출근 시각은 똑같으니 평균 수면 시간 또한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매일같이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피부와 정신에 악영향을 미쳤다. 면역력이 떨어지며 아토피는 점점 심해지고 멘탈도 점점 가라앉아갔다. 계속 이러다간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이때는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매일 파도같이 밀려오는 일을 쳐내는 게 더 급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야간 업무가 2A군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은 퇴사한 이후였지만.
이렇게 생활 리듬과 함께 생활 습관까지 뒤집혀버린 나는 이전까지 챙겨오고 있었던 건강을 순식간에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