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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29. 2023

그녀는 어쩌다 우울증이 재발되었나

오르막길은 숨이 차고 내리막길은 미끄럽다




  “약이 다가 아니지만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 ”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우울증이 재발된 것이다.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발을 헛디딘 건지 누가 밀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일 거예요. 학교도 그렇고, 가족도.” 내 생각에도 그랬다. 단순히 한 가지 이유로 재발이 되었을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이유건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더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언제쯤부터 상태가 안 좋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어느샌가부터 사랑하는 미술이 재미없었고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초고라서 쓰레기가 아니라 그저 내 글이 쓰레기 같았다.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으니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쓰다가 잦은 현타를 맞는다.


  약 복용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졌다. 남은 약 개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약을 부족하게 처방받아 온다. 아니면 약을 까먹고 먹지 않은 탓에 너무 많이 남는다. 약을 안 먹는 것은 둘째치고 약을 먹고도 오후가 되면 약 먹었나? 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게 진정 사람의 기억력인가 싶다. 친절한 아이폰의 도움을 받아 복용하는 약의 시간을 설정해 알림을 받을 수 있고 기록도 확인할 수 있지만 복용 후 기록을 하지 않거나 알림이 울려도 그냥 넘겨버리고 말면 쓸모없는 기능으로 전락해 버린다.


  수면은 아주 망가지진 않은 것 같다. 가끔 잠에 들지 못해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정신이 멀쩡하다. 보통은 2시 전후로 잠이 든다.

  주말인 경우 더 늘어져 자는 편이다. 딱히 피곤할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기분은 늘 가라앉아 있다. 물론 웃긴 것을 접하면 웃는다. 행복하지 않지만.

  밤이 되면 울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다. 새벽에는 정점을 찍는다.

  집에 맥주가 있으면 밤마다 두어 캔이 몰래 사라진다. 몇 번씩 말을 안 듣는 환자가 된다. 술을 마시고 약을 먹진 않지만 술을 먹든, 안 먹든 약을 잘 챙기지 못한다. 말 잘 듣는 환자 되기, 오늘도 실패.


저무는 해처럼 행복도 사라져갔다.




  완치 후 한동안 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에 되돌아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잘 지내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기우가 아니었다.

  인생에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나의 오르막길은 숨이 차고 내리막길은 미끄럽다.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턱 끝까지 차 기진맥진하고 내리막길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한없이 내려간다. 눈물이 결정이 되어 더 미끄덩거리게 만든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제대로 서있지도 못한다. 수 없이 넘어지고 쓰러진다. 무릎이 지면과 헤어지질 못한다.

  그래서 내가 어디쯤에 엎어져 있는지 아느냐 묻는다면 모른다. 여기가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알지 못하고 피투성이 채로 울고 있다. 마음은 땅바닥에 내던져진 바람에 찢겼다. 주워 담을 마음도 없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괜찮다고 해야 한다. 아프다고 말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다. 돌아오는 상처는 모조리 내 몫이다. 그래서 다들 내가 괜찮은 줄 알고 있다. 의사 선생님을 제외한 모두에게 나는 더 이상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이겨낸 사람일 뿐. 사실은 그게 아닌데.





  "정말 어떤 말을 해서라도 돕고 싶어요. “ 의사 선생님은 또 한 번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라도 사는 게 맞는 걸까요, 사람이 숨을 쉬는 한 살아가는 게 맞는 건 알지만 그 대상이 꼭 저여야만 할까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았다. 도저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사명을 다해 살려주심에 감사해야 할지, 이겨낼 자신이 없는데 할 수 있는 척 약속해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않아 침묵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의사 선생님을 뵐 면목이 없다.


  상태가 나빠지는지도 모르고 이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있다. 톱니바퀴가 어긋났다.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 이게 아닌 걸 알면서도 돌려놓을 수가 없다. 얼마 동안인지도 모를 만큼 제자리걸음을 걸을 것이다. 넘치는 바다에 한없이 허우적 댈 것이다. 우울을 감당해 내야 하는 현실이 겨울바람 보다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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