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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22. 2023

유서를 썼다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계절을 불문하고 죽고 싶어질 때면 어김없이 펜을 들었다. 틀어놓은 노래는 진혼곡이 되었고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찍었다.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한 마디와 비참한 삶의 단상을 써 내려갔다. 일기는 부단히 적지 못하면서 유서는 꾸준히도 적었다.

  휘발성이 짙은 기억력 때문에라도 계속해서 기록해야 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영 잊어버릴 것 같았다. 나 조차도 스스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침엔 뇌가 잠들어 있었다. 낮에는 낮잠을 잤다.  밤에는 고통에 절여져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모든 하루가 밤이었다. 별도, 달도 없는 어두운 밤.

  새까맣게 잿가루가 덮인 인생길을 걸어도 끝이 없어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다. 발자국을 그만 찍고 떠나기로.


  “유서를 썼어요. 죽고 싶어서.”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정적 속에 글을 읽어 나가는 의사 선생님의 눈길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공간에 짧은 탄식이 지나갔다.

  진료의 끝은 포기하지 말아 달란 부탁이었다. 확답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를 되뇔 뿐이었다.


  여러 번 내 삶은 몇 글자로 간결해졌다.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한 사람이나 있을까. 어떻게 죽었는지는 또 어떤가. 그래서 그리 길게 적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세한탄에 그치지 않은 글을 반길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글로 감정을 뱉고, 또 뱉어내어도 입 안에서는 피 비린내가 났다.




  21.02.08

  내가 무언가에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있었다 해도 그게 언제더라. 기억조차 흐리다.
  나는 뭘 좋아했더라, 뭘 잘했더라, 뭘 할 수 있더라.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이제 잘 모르겠다. 안다고 해도 자신이 없다. 사실 무얼 하고자 하는 것보다 손을 놔버리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냥 그만두고 싶다. 모든 걸,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으니까.

  하나둘씩 그만두면 남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끝은 역시나 자살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나 나약하고 능력 없는 사람의 끝이야 누가 궁금하겠냐만은 도저히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다.

  현실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괴롭다. 이상만 보고 살 수가 없으니까 현실의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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