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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Dec 30. 2023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자 떠나자 붕어잡으러

붕어세요?

바야흐로 돼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하철 역사를 가득 메우는 달달한 풀빵 냄새부터 하얀 입김을 뒤로하고 줄을 서서 사 먹는 호떡, 그리고 입천장과 뜨거운 만남을 스스로 자처하게 되는 어묵 국물까지. 에디터 아궁이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정도로 착실한 돼지가 되어가는 데에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하지 않은가? 겨울 간식에 “이게” 빠지다니…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바로 겨우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붕어빵”이다.

에디터 아궁은 붕어빵을 사러 갈 때 “붕어 잡으러 간다” 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나 붕어빵 사러 가는 길이야 - 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 붕어 잡으러 간다- 라는 대사를 던지면 왠지 결의에 가득 찬 걸음으로, 푹 눌러쓴 모자와 함께 “세 마리에 얼마예요.” 하고 말하게 되지 않는가. 낮게 깔린 목소리는 덤이다. 건대입구역 앞 길거리에서 수상한 행색으로 붕어를 잡으러 어슬렁거리는 작자를 본다면 “혹시 아궁이세요?” 하고 물어보라. 열에 아홉은 당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테니… 




잉어 놓고 붕어도 모른다

그런데 혹시 그 사실 알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아는 붕어빵의 모양은, 사실 붕어가 아니라 잉어다. 우리는 붕어의 탈을 쓴 잉어를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고기를 보기 어려웠던 과거의 서울에서 비교적 흔한 민물고기인 붕어의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다는 붕어빵의 유래가 있는데, 당시 붕어보다 귀했던 잉어의 이름을 붙여 기존의 붕어빵보다 좋은 맛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자 잉어빵이 탄생했더랬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 귀한 잉어의 모양이 지금의 보편적인 붕어빵의 형태가 되었다니. 그리고 그 잉어의 모양을 보고 “붕어빵”이라는 고유명사가 탄생했다니… 굳이 비교하려 들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문제지만, 한 번 신경이 쓰인 이상 그냥 두고 넘어갈 수가 없다. 방금 에디터 아궁이 이 사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붕어와 잉어의 사진을 번갈아 검색해 보고 왔는데, 붕슈탈트 붕괴가 올 것 같아 금방 그만두었다. 꿈에 붕어 친구와 잉어 친구의 이글이글한 눈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화면 너머로 생선과 눈이 마주치는 경험 따위 하고 싶지 않을 테니 자료 사진은 생략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붕어빵이 유행한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보자.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 붕어빵은 싼 가격과 옹골차게 품어진 팥앙금 덕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더랬다. 이제는 김치, 피자, 고구마, 치즈 등 다양한 속 재료를 자랑하고 있지만, 어쨌든 근본은 팥에서 시작한 것이다. (에디터 아궁은 김치 붕어빵을 가장 좋아한다. 그냥 그렇다고) 붕어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장면 또한 종이봉투에 투박하게 담겨진 붕어빵을 소중히 안고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순간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웰던으로 구워진 붕어빵을 잘게 8등분하여 포크로 찍어 팥을 올려 먹는 장면 따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방금 에디터 아궁은 하긴 했다.

이렇게 우리네 겨울 일상의 한구석을 조용히 차지한 붕어빵이 화두에 오르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에서부터다. 다름 아닌 붕어빵의 가격 인상 논란.



인성 논란도 아니고 인상 논란이라니. 차라리 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붕어빵의 인성 논란이라면 몇 번이고 피의 쉴드를 쳐 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세 마리에 천 원 하던 붕어빵은 몸값이 너무나 거대해진 나머지, 세 마리에 삼천 원이 되었다. 어느 붕어빵은 한 마리에 천오백 원을 하더라. 애석하게도, 거대해진 몸값과는 반대로 실제 몸집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꼬리까지 가득 차 있던 앙금은 이제 너무나 소중해진 양으로 변하고야 말았다.


아아- 이게 물가 폭등으로 인한 붕어의 몰락이란 말인가, 하는 비통함이 들었던 것도 잠시, 사람들은 그새 금값이 된 몸값에 익숙해져 예전처럼 줄을 서서 한 마리에 천 원인 붕어를 잡아먹고 있었더랬다. 물론 에디터 아궁도 예외는 아니다. 건대입구역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붕어빵 가게(예금주 최**)의 팥앙금 한 봉지는 내 계좌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붕어빵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한때 붕어빵과 왕좌의 자리를 다퉜던 어묵 또한 오백 원이던 가격에서 두 배가 뛰어 천 원이 되었다. 꼬치에 노란색 표시가 되어 있는 치즈 어묵의 경우 이천 원까지 받더라. 직접 사 먹어 봤기 때문에 안다.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먹고 있던 붕어의 탈을 쓴 잉어빵은, 결국에 원래의 작명 의도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붕어보다 귀한 잉어의 이름을 붙여 질 좋고 맛 좋은 음식이 되길 바랐던 과거 사람들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때문에 길거리의 붕어빵을 바라보았을 때 가족과의 따뜻한 순간보다 가격 인상이라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겹쳐 주머니 속 지갑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잉어세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처럼, 우리는 모로 가도 배만 채우면 된다. 사실 잉어고 붕어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냥 에디터 아궁만 아티클 쓰려고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때로는 귀한 것보다 흔한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번 가지지 못할 잉어의 순간보다 손쉽게 구할지라도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 되어주는 붕어의 순간이 더 가치 있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붕어가 잉어의 본질을 찾아 몸값을 올렸더래도, 어릴 적의 추억과 현재의 기억 한구석을 차지한 순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물가 상승에 수긍하며 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장이라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오늘 집에 돌아가며 붕어, 아니 잉어 잡는 여정을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한다. “세 마리 얼마예요?”라는 물음 대신 삼천 원 계좌이체 화면을 당당히 들이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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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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