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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26. 2024

케이팝은 어디로 가야 하죠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학창 시절의 나는 수학 문제를 풀 때 케이팝 플리를 즐겨 듣고, 친구들과 학교 교실에서 TV로 뮤직비디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케이팝에 관심이 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어느 한 그룹만을 깊이 좋아하기보다 전체적인 아이돌 그룹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예전부터 어떤 아이돌이든 신곡이 나오면 즐겨 듣는 리스너, 즉 라이트 팬덤에 속했다.

 케이팝과 함께한 역사가 꽤 오래된 사람으로서, 나는 중학생 시절 주로 인기 있었던 3세대 아이돌의 시대가 케이팝의 황금기였다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외 아이돌 그룹도 사랑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케이팝을 비교해 보자면 그 시절 아이돌은 각 그룹만의 확고한 컨셉과 정체성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러블리즈는 청순, 마마무는 실력파, 블랙핑크는 힙함과 걸크러시가 바로 떠오르는 것처럼. 따라서 음악방송을 보면 그룹마다 확 바뀌는 색깔과 퍼포먼스로 즐길 거리가 정말 많았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하지만 최근 들어 ‘이지리스닝’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빠른 비트와 리듬감 있는 음악을 즐겨 듣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았다. 물론 반복해서 들어도 부담 없어 편안한 곡인 게 이지리스닝의 장점이지만, 나에게는 요즘 트렌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이지리스닝의 곡으로 컴백하는 아이돌 그룹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유사성 논란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아이돌 사이에서 유행이 하나 시작되면, 다른 그룹들도 그 유행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챌린지성 음악’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지코의 ‘아무노래’부터였던가,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챌린지 품앗이를 통해 다른 그룹의 음악에 맞춰 안무를 추는 숏폼용 챌린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챌린지를 위한, 챌린지에 의한 안무와 곡이 생겨나며 퀄리티가 낮아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챌린지를 본 뒤, 음악을 찾아 듣거나 새로운 그룹을 알게 된 적도 종종 있기에, 챌린지성 음악의 장점이 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빡센(?) 퍼포먼스나 일명 하드리스닝에 가까운 음악을 주로 즐겨 듣는 나에게는 이 유행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이와 더불어 가장 최근에 유행이라고 느꼈던 것은,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 일었던 ‘청량’ 붐이다. 이에 따라 신인 그룹부터 평소 다른 컨셉을 보여왔던 기존의 그룹까지, 청량 컨셉의 곡으로 컴백하곤 했다. 청량 컨셉이 많아진 것에는 대부분의 팬이 청량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따라서 ‘남자 아이돌의 근본은 청량’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머글(팬이 아닌 일반 대중)이 볼 때는 거의 비슷한 곡과 컨셉으로 느껴질 것이므로, 그 속에서 그룹만의 차별점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같은 ‘청량’ 컨셉 속에서도 색다른 세계관과 분위기로 차별화하려는 그룹들 또한 존재한다. 청량에 청춘의 감성을 더한 듯한 투어스와 큐피드 세계관을 이어오고 있는 NCT WISH까지. 이들은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청량에서 벗어나지 않게 앨범을 발매하면서도 독자적인 컨셉과 장르를 앞세우며 호평을 얻고 있다.



 이처럼 나는 오히려 그룹만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유지하는 그룹에 더 눈길이 갔다. 걸그룹 중에는 정체성과 실력을 전부 잡은 ‘KISS OF LIFE(키스오브라이프)’가 최근 가장 눈에 띄었다. 나는 이전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 ‘아이돌 학교’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이해인이 디렉터를 맡은 그룹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들은 데뷔 앨범부터 각 멤버와 잘 어울리는 솔로곡을 담으며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중 특히 나띠의 ‘Sugarcoat’는 200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Y2K 컨셉의 곡으로, 팬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누군가 ‘이것도 뻔한 Y2K 컨셉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룹명의 뜻인 ‘인공호흡’처럼 가요계에 새 숨을 불어넣겠다는 목표로 달려온 이들은, 뻔해 보이는 컨셉 속에서도 그들만의 ‘자유’와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멤버 각각이 가진 실력과 4명의 합이 돋보이는 보컬 및 퍼포먼스까지. 이들의 무대를 보면 3세대 아이돌의 특징이 자연스레 떠올라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둘 중에 하나만 골라?

 앞에서 구구절절 설명한 나의 견해에 따르면 많은 아이돌 그룹이 대중성보다는 정체성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겠지만 이에 정답은 없다. 애초에 ‘대중성 있다’라는 말이 주관적이기도 하고, 팬마다 선호하는 컨셉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 많은 걸그룹이 청순 컨셉으로 컴백하며, 대부분의 사람이 청순에 질려 걸크러시 컨셉의 그룹이 많이 등장하니, 대중은 다시 청순 컨셉을 그리워했다. 이처럼 대중은 하나의 컨셉에만 머물러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이때 여기서 모든 그룹이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각 그룹만의 색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하여 대중성을 잡는 것이 아이돌 수명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단지 유행에 휩쓸려 통일성 없는 곡을 내게 되면 결국 그 그룹의 위치는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종 그동안 보여준 세계관과 이어지지 않는 곡을 내거나, 그룹의 특성을 전부 버리고 유행에만 탑승한 곡을 낸 경우를 본 적 있다. 그룹마다 다른 세계관이나 컨셉을 보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는 나에겐 약간 아쉬웠다.


 특히나 최근 투애니원,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도 컴백을 예고하며 케이팝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만약 이 안에서 그룹 색을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면, 잊힐지도 모른다고 냉정하게 말해본다.



 물론 처음부터 그룹에 딱 맞는 컨셉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컨셉에 도전해 보고, 각 멤버들끼리의 합도 맞춰가며 그룹의 이미지를 결정할 하나의 컨셉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룹의 색깔을 찾을 수도 있으니! 날이 갈수록 케이팝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챌린지도 해야 하고, 팬덤의 니즈도 고려해야 하고, 그룹에 맞는 컨셉도 찾아야 하고… 어쩌면 이 모든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케이팝 아이돌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케이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전의 다양성이 많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일까, 아니면 컨셉 단일화의 시대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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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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