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씨 Apr 19. 2024

13. 오직 두 사람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7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버릴 정도로 흡인력 있는 책이었다. 각 소설마다 설정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냥.. 너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다음 장이 너무 궁금했다. 오랜만에  아껴읽는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직 두 사람>은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딸 현주의 이야기이다.


길들여졌다는 말은 굉장히 순화된 것으로, 아들과 딸 둘 중 만만한 한 아이를 표적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한 끝에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결과 현주는 아버지 외의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나르시시스트에다 지독한 바람둥이인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버림받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현주만큼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 현주은 말한다. 아버지가 모국어 같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느낌, 운명이라고 말이다. 이로써 아버지가 씌운 멍에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에 읽었던 책 <완벽한 아이>와 내용이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올무로부터 모드는 벗어났지만, 현주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주는 끝내 아버지와 공유했던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로 남아 언어의 독방에 갇히게 된다.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는 사치품을 끌어안고.


<아이를 찾습니다>는 11년 전 유괴된 아들이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내밀한 심리변화를 담담한 언어로  내려 간 글이다.


부부는 여느 날처럼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세 살짜리 아들을 잃어버린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르고 경찰서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게 된다. 유괴범을 엄마로 알고 커온 아들은 친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들을 잃어버린 후 조현병 증세가 더 심해진 아내 또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곰팡이 슨 집과 몸으로 이들을 감당해야 하는 남자 또한 이 상황이 낯설다. 십일 년간 익숙했던 불행의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일은 이미 일어났고, 세월은 흘렀고,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았지만 그 간극은 메워질 수 없다. 그 고통스러운 경계에서 몸부림치는 남자는 완벽한 회복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는 게 일과가  남자는 무가지 배포원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오직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와야 하는 의무를 지닌 아버지로서 십여 년을 살아왔다. 늘 불행했지만, 그 불행 속에서도 적응을 하는 모습에서 <이것이 인간인가>가 떠올랐다. 나치스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노역수용소에 수용되면서 겪는 명백히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적응을 하고 나름의 울타리를 치는 인간의 능력 말이다. 언젠가 자유로워질 날을 꿈꾸며 괴로운 오늘을 견디지만 나치스가 물러가고 자유를 찾아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정말 괜찮았을까.

으레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결말로 생각했기에 그 이후의 삶까지는 농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10개월의 간극은 메워졌을까. 그 경계에서 더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남자처럼, 앞으로의 그 수많은 시간을 묵묵히 견뎌나가야 했을까.


<인생의 원점>은 어릴 적 친구였던 두 남녀가 이십여 년 후 신도시 아파트 단지 근처 호숫가에서 우연히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자가 유부녀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여자의 남편이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이라는 사실인데, 인과관계는 모르겠지만 여자 또한 외도가 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 남자의 말대로 남자에게는 여자가 회귀할 원점이고, 여자에게 남자는 힘겨운 등산길에 만나게 되는 대피소 같은 느낌이다. 계속해서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오던 중 남자를 따라붙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가는 곳마다 마주치게 되는 이 남자는 누구일까?


<옥수수와 나>는 지질한 냄새 물씬 풍기는 한 작가의 이야기로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글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의로 남자가 여자를 소개받을 때 입버릇처럼 "예뻐?"를 외치듯 책을 소개받을 때 "재밌어?"를 남발하는 나로서는 유레카를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유머가 돋보이는, 노상 심심해를 달고 사는 사람 마음 설레게 하고도 남을만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슈트>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아버지의 유골을 받으러 갔다가 아버지의 슈트만 입고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이다.


<최은지와 박인수>는 싱글맘이 되겠다는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출판사 사장의 이야기다.


<신의 장난>은 신입사원이 거치는 연수의 한 과정으로 알고 방탈출 게임에 임했으나, 가짜가 아닌 진짜 방에 갇히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레텔이 된 기분이었다. 숲 속을 헤매다 발견한 과자집을 허겁지겁 뜯어먹는 느낌으로 소설들을 읽어나갔다.

세상엔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이 많이 있겠지. 적지 않은 나이, 지금까지 읽은 책이 너무 빈약해 희비가 교차된다. 얕은 밑천으로 글 쓰느라 힘들 내 머리가 슬프고, 앞으로 읽을 책들이 많음에 기쁘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숲 속을 헤맬 것이다. 단 하나의 과자집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마녀가 들통에 물을 끓이고 있든 말든, 그것은 차치하고.

이전 12화 12. 완벽한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