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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Apr 15. 2024

1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



1970년 8월 8일에서 8월 26일까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바닷가 근처 고향에 내려온 21살 '나'의 청춘에 관한 편린을 심플한 문장들로 채운 책이다. 


부자면서 부자를 경멸하는 '쥐', 가난한 대학생이자 질문하지 않으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나', 맥주와 핀볼 기계가 있는 제이스 바의 '제이', 그리고 제이스 바의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왼쪽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여자'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뜨거운 한 여름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공허감과 결핍감을 간결하고 읽기 쉬운 문장으로 잘 풀어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정작 작가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쓴 소설'이라고 했다.

그래서 뭔가 분석하고, 글 너머의 있을지도 모를 의미를 그러쥐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 속에 '바람'이 언급되어 있는 부분을 발췌하면 그 실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의 책으로 작가가 등장시킨 가상의 작가 하트필드의 가상의 소설 <화성의 우물>에는 우주를 방황하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청년은 우주의 광대함에 권태를 느껴 아무도 모르게 죽으려고 화성의 우물로 들어간다. (몇만 년 전 화성인이 판 우물로 그 끝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우물 밑으로 내려갈수록 기묘한 힘에 의해 기분이 좋아진다. 멈춰버린 시계로 인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를 즈음 청년은 다른 우물로 연결된 굴을 발견하고 정처 없이 걷는다. 마침내 우물을 빠져나온 청년은 황야를 바라보고 태양을 바라본다. 그때 바람이 그에게 속삭인다. 


"자네가 우물을 빠져나오는 동안에 약 15억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자네가 빠져나온 우물은 시간의 일그러짐에 따라  파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시간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셈이지. 우주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삶도 없고 죽음도 없어. 그냥 바람이지." (p. 119)


여름 방학이 끝나가고 다시 도쿄의 대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p. 143)


시간이 흘러 스물아홉의 나는 결혼을 해 도쿄에 살고 있고, '쥐'는 내면에 침잠해 있는 자아를 드러내고자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왼쪽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여자와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 다시 돌아갔을 때 그녀는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바람처럼.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울고 싶을 때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얘기한다. 


'그런 법이다'라고.  (p. 145)




결국에는 바람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우리의 모든 것, 삶과 죽음, 청춘, 시간, 그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태도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지나쳐가는 모든 것의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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