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치 않았던 대학생활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by 손영호

손자의 대학진학이 확정되자마자,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여동생에게 연락을 한다. 큰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생각해 두었던 계획 중 하나였다.


다행스럽게도 큰 아들이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주어, 손자의 대학 입학에 필요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학비지원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모든 부담을 지게 되었고, 모든 것을 삶이 자신에게 부여한 책임이라고 여겼다. 할머니는 절대 그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할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손자는 과외는 물론 커피숍, 술집, 건설현장 일용직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할머니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학비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손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손자는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손자가 군대에 가 있던 약 2년이 시간 동안, 할머니는 계속 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손자에게 남은 2년간의 대학생활에 필요한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할머니는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손자는 제대 후,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닥친 것이다. 손자는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였기에 취업에 필요한 영어는 준비가 되었으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 어학연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할머니는 큰 아들과 상의해 보지만, 역시나 그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손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고민한다. 결국 둘째 아들의 도움을 받아 1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일부를 마련하여 손자를 일본으로 보낸다.


손자는 일본에 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생활비와 2학기 등록금을 충당하였다. 그리고 복학할 때 필요한 등록금의 일부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손자가 돌아왔다. 3학년 복학 시 필요한 등록금은 해결되었으나, 대학 2년간 생활했던 할머니의 여동생 집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손자는 이런 사정을 동문 선배하고 얘기하던 중, 그 선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자취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손자는 그런 선배의 도움으로 머무를 곳을 해결하게 되었고, 남은 2년간의 대학생활을 이어나갔다.


손자는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였고,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비용을 해결할 수 없었기에 할머니의 도움은 여전히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손자의 뒷바라지를 했다.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손자에게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손자가 탄탄한 기반 위에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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