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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EUFeeLMYLOVE Nov 23. 2023

96일째 밀가루를 끊었다

칼국수를 7일 연속으로 먹을 수 있는 내가,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 얘기해 봤으니 이제 완전 일반인인 내 얘기다.



어머니의 시래기 감자탕과 아버지 표 멸치쌈밥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나의 소울푸드는 무려 칼국수(였)다. 걸을 때마다 뽂뾱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다녔을 적 나의 최애 간식은 과자였다. 과자에 정통한 '전문가'였던 나는 진열대 속에서 오늘은 무슨 과자를 먹을까? 살짝 고민하는 척을 하지만, 언제나 늘 먹던 과자를 고른다. 확실한 재미(맛)가 보장되어 있는 것들이다. 엄마가 밥 대신 과자만 먹으라고 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던 나는 과자를 많이 먹는다고 종종 혼이 났다.


과자뿐이랴.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물어보면 나는 밥보다 '면 종류'를 대부분 다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나에게 밀가루란 술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하는 '대단한' 음식이란 말이다. 절대 떼려야 땔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내가 밀가루를 비롯해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아예 안 먹은 지 오늘로써 딱 96일째다.



래퍼 쌈디는 최근 음식 알레르기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89% 맞지 않았던 음식인 우유를 끊어 아주 맑고 생기 있는 피부를 되찾게 되었다. 나도 음식 민감성 검사를 해볼까 하다 책을 읽어보니 굳이 검사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읽을수록 나는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레인 브레인의 저자 데이비드 펄머터(신경의학 전문의)는 글루텐 알레르기 검사를 이제 더는 환자들에게 실시하지 않는데, 검사를 하기도 까다롭고 별 의미가 없다. 글루텐에 대한 반응이 지금은 양성이 아니더라도 잠재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루텐 관련 서적을 더 이상 안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때까지 읽었다. 이해가 완벽하게 되니 글루텐쯤이야 쉽게(?) 나름 쉽게(!) 끊을 수 있었다. 무조건 밀가루(글루텐)는 안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열린 생각으로 책들을 정독했지만, 아래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글루텐 민감성 증상들이다.



글루텐에 민감한 증상 3가지


아래에 나열한 3가지 증상 말고도 차근히 생각해 보면 글루텐에 민감한 증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글루텐에 대한 반응이 가장 최고치를 달했던 해는 바로 작년인 2022년도다. 만약 작년에 내가 겪었던 일(전신 발진)이 없었더라면, 나는 글루텐에 대한 책을 읽었어도 밀가루 음식이 주는 행복이 고통보다 아주 많이 커서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후루루 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작년 한 해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들은 특히 칼국수, 특히 보리면 칼국수, 수제비, 조청(엿기름), 통밀 식빵, 튀김이다. 모두 글루텐이 함유된 음식이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1년 중 글루텐을 아예 섭취하지 않은 날을 꼽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1. 발진

나는 20대 때부터 샤워를 하고 나오면 BTS 뷔도 앓는다는 콜린성 알레르기가 아주 가끔 있었다. 허벅지에만 약간 붉게 부어오르다가 조금 간지럽고 그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해진다. 온도가 상승하면 피부가 예민하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작년에는 전신에 발진이 실시간으로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X-Man처럼.. 발진은 불편한 증상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증상이었다. 온몸에 열감이 퍼져 내가 불속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싶었지만 어찌어찌해서 몇 시간 내로 해결이 되었다. 내 몸속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빨간 불의 경고등이 켜졌다. 그날 발진이 왜 생겼는지? 글루텐 책을 보기 전까지는 정확히 몰랐다. 내가 그때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 보니 아뿔싸 무릎을 탁 치게 됐다. 밀의 영향력은 뇌, 내장, 동맥, 뼈 등 여러 기관을 제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체 기관 중 가장 넓은 부위를 차지하는 피부에도 그 힘이 닿을까? 확실히 그러하다. 밀가루를 끊으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보셨을 것이다. 밀가루는 피부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 발진, 포진성 피부염, 건선, 트러블, 건조함 등에도 영향을 준다. 피부과 의사라면 누구나 피부가 신체 내부 상황을 외부로 중계한다고 말한다.  



2. 편두통

전~~ 혀 두통과는 거리가 먼 세월을 일평생 보냈다. 태생이 건강 체질이라 자부했지만 딱 3년 전부터 편두통이 종종 심하게 왔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심장박동이 뛸 때마다 골이 흔들렸다. 식은땀이 나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종종 편두통이 심하게 오다 보니 "아 이러면 중요한 날에 두통이 오면 어쩌지?.." 하며 슬 걱정이 되었다. 진통제로 '때울게' 아니다. 기능의학의 아버지 격인 시드니 베이커(Sidney Baker)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압정 위에 앉아있다면, 고통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은 문제 해결법이 아니다. 해답은 그 압정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이다." 왜 없었던 두통이 생겼을까? 나는 내 압정을 간절히 찾고 싶었다.


밀은 아편과 유사한 펩티드(peptide) 형태로 뇌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신경계는 신경세포와 신경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밀 글루텐 노출로 불거진 말초 신경병증은 어떤 신경 다발이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글루텐 뇌병증은 팔다리 통제 및 언어 구사의 어려움, 시력 감퇴 등 뇌졸중 유사 증상과 '편두통'으로 나타난다. 밀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단지 기분이나 활력, 수면 정도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밀은 두뇌와 신경계 전체에 독특한 영향을 끼치는 잠재력 면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3. 만성피로

현대인들의 짝꿍 만성피로다. 중요한 약속이 있고 나서 파스타를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진맥진했다. 점점 피로가 쌓여 빨리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에이 설마 내가 '먹은' 파스타 때문에 피로가 잘 안 풀리는 걸까?



소화계통에 특별히 문제가 없었던 나는 위의 3가지 증상들의 원인을 음식에서 찾을 생각을 전혀 못했다. 나는 직접 실험에 들어갔다. 그 결과 거짓말처럼 단 한 번의 발진이나 편두통도 없었다. 어깨가 무거운 느낌도 사라졌고, 만성피로도 눈 녹듯 사라졌다.



글루텐을 끊는 과정


나의 경우 글루텐을 점차 줄여나가지 않고 느닷없이 완전히 끊었다. 개인에 따라 갑작스러운 중단보다 점차 줄여나가는 방식이 편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중단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뺐다면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밀을 함유한 식품을 추적하다 보면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밀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글루텐을 제거하고 남은 부분을 어떤 음식으로 채울지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 '빼기' '끊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냥 자연에서 온 음식을 더 많이 먹고, 집에서 만든 음식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 1~2달째: 금단 현상 발생

- 유튜브로 후루루 면 먹방을 봄.

- 집 근처 3대 칼국수 맛집을 지날 때마다 조금 씁쓸함.

- 꿈속에서 빵, 피자를 와구와구 먹음


· 3달째: 사라진 밀 식욕

석 달이 지나가면서 밀에 대한 식욕이 떨어짐을 느꼈다. 더 이상 꿈에 밀가루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맛을 보는 혀의 감각이 살아난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 말고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애호박이 이런 맛이었다니. 애호박이 이렇게 맛있다고? 버섯은 오독오독 식감이 정말 맛있다. 눈앞에서 빵을 먹는 것을 봐도, 튀김가루가 바삭하게 입혀진 돈가스를 봐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가공식품들은 거의 먹을 수 없다. 처음에는 세상의 수많은 음식들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조금밖에 없구나라는 다소 슬픈 생각이 잠깐 스친다. 하지만 잠깐이다. 그게 지나고 나면, 삶이 간소해진다.



글루텐 프리의 효과 5가지


내가 효과를 보았던 것들 중 가장 만족한 것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았다.


1. 기분

많은 것들이 만족스러웠지만 가장 좋았던 변화다. 기분이 다르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찾아오지 않는 마법. 이러한 기분의 변화는 마법 같다. 현대에 우울증이 많은 이유는 음식과도 상관관계가 깊지 않을까 생각한다.


2. 통증 제거

모든 통증이 완화된 게 아니라 없어졌다. 편두통이 완전히 사라졌고, 가끔 있었던 어깨 통증도 사라졌다. 심지어 근육통도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다.


그중 가장 신기한 점은 두통이다. 설마 글루텐이 뇌까지 영향을 미치겠어?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면역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글루텐이 인체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의사 책 수준으로 상세히 나와있으므로 대번에 이해가 된다.


3. 숙면

난 정말이지 이때까지 숙면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숙면을 취하고 나니 알게 된 사실이다. 글루텐을 끊고 거의 1주일도 안 돼서 찾아온 변화는 숙면이었다. 장이 편안해지니 숙면을 취한다. 취침시간은 10-11시 사이 기상시간은 6-7시 정도다.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8시간 정도 잔다. 심지어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 그대로다. 뒤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불이 종종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글루텐을 끊으니 졸음이 자연의 시간에 맞춰 몰려온다. 8-9시쯤 되면 나의 몸은 잠을 자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4. 집중력 향상

집중력 향상은 1) 글쓰기와 2)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뇌에 안개가 꼈었다 사라진 느낌이라 글쓰기에 더욱 집중이 잘 된다. 필라테스를 하는데도 점점 집중이 잘 됐다. 배불리 과식하고 운동을 하면 잘 집중이 안 되듯이 소화가 어려운 글루텐이 장내 머물면 운동수행 능력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즉, 속이 편안하면 어떤 것이든 집중이 잘 된다.



5. 피부와 체중 변화

내가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 편두통이라 이것들까지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레 따라왔다. 피부 안색이 맑아져서 피부 톤이 한 톤 더 밝아졌다. 가끔씩 뾰루지가 나거나 아주 더 가끔씩 종종 뒤집어졌던 얼굴 피부도 이제는 쭉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 체중은 보통 46-7kg였는데 이제는 42-3kg이 되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음식량을 줄인 것도 아니요, 운동을 더 많이 한 것도 아닌 단지 글루텐만 뺐다. 저절로 쉽게 빠진 5kg는 글루텐의 흔적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글루텐을 걸머지고 다닌 듯하다. 오랫동안 밀을 먹지 않으면 체중이 감소한다. 글루텐은 물론, 아밀로펙틴 A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식단에서 밀을 제거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베이글이나 라자냐를 끊은 지 며칠에서 몇 주 만에 기분이 좋아지고, 감정 기복이 덜해지며, 집중력 향상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뇌가 겪는 이런 종류의 '가벼운' 개인적 체험은 수량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위약 효과의 영향이지 않을까? 하고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석 달 동안 글루텐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명확히 깨달았다. 음식을 바꾸면 정신도 바뀐다.


글루텐은 물을 머금으면 끈끈한 점착성을 발휘한다. 이것이 장 표면에 얇게 들러붙으면 장이 제대로 가능하지 못해서 소화와 흡수 작용에 지장이 생기고, 장 표면에 붙은 글루텐 역시 충분히 소화되지 않는다. 어깨 결림과 편두통, 관절염 등의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증상 역시 장에 구멍이 생긴 탓에 글루텐이 곳곳으로 옮겨 다니며 염증을 일으킨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 뼈와 근육, 뇌와 신장, 손톱과 눈썹, 혈관을 따라 분출되는 6리터의 혈액,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먹은 재조합된 음식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계속 움직이고 살아 있게 하는 에너지는 음식에서 나온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라는 말은 닳고 닳은 비유가 아닌 생명체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사람에 따라서 글루텐을 제거하는 식단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루텐이 맞지 않았던 경우라면 글루텐을 제거함으로써 나온 위의 5가지 효과는 장이 건강해져 나오는 효과일 것이다. 글루텐을 빼고 나서 오히려 내 삶에 더해진 것들이 많다. 제2의 천성은 음식 습관이다. 꾸준한 습관을 들여서 다음에는 96일이 아닌 365일, 1년 후기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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