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4월이 언제부턴가 ‘기억의 달’로 불린다. 어느덧 10주기가 된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만들어 낸 이름이다.
학교에서도 매년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진행되어 왔다. 재작년에는 하교 시간에 맞춰 학생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는 전지를 여러 장 이어 붙인 다음, 커다란 리본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포스트잇에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메모를 남겨서 그 리본의 안을 노랗게 채웠다.
참사가 일어났던 날부터 얼마 동안은 그 충격과 탑승자들이 생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이 당연한 구조 작업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는 데서 오는 분노 등 여러 격한 감정들을 느끼곤 했다.
다만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런 감정들이 사그라졌고 매년 4월 중순쯤 반복되던 학교의 추모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충분히 추모하고 애도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래전 참사는 희미해졌다.
참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나서 얼마 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접했다.
‘경하’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책을 출판한 이후 가족과 이별을 하게 된다. 분명하진 않지만 광주의 참상을 기록했던 일이 가족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여파로 경하는 4년간 삶의 의욕을 잃고 고통스럽게 생활한다.
‘인선’은 제주도 목공방에서 전기톱에 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기적적으로 봉합 수술에는 성공하지만 두 손가락의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 피를 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딘다.
소설 중, 후반부를 지나면서 인선의 모친인 ‘정심’이 등장한다. 정심은 제주 4.3 사건의 유가족으로, 국가 주도의 학살로 인해 부모와 여동생을 잃는다. 학생이었던 정심은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의 얼굴에 쌓인 눈을 닦으며 신원을 확인하고 배와 턱에 총알구멍이 뚫린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는다. 오빠는 기적적으로 생환하지만 곧 이별하고, 다시 만나기 위해 정심은 수십 년간 그의 흔적을 쫓는다. 결국 재회하지 못하고 오빠까지 잃는다. 이 모든 기억은 정심에게 트라우마로 남고, 그녀는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말년을 보낸다.
이렇듯 작가는 소설에서 세 인물이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낀 인물들의 고통스러움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이 불편한 감정들, 즉 인선과 경하, 정심이 부여하는 아픔은 왠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3 특별법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빨갱이를 절멸시키겠다’며 3만 명가량의 인명 피해를 냈다. 연좌제나 대살이라는 전근대적인 명분을 걸고 무고한 시민들까지 학살한 결과다. 그렇게 총살당한 사람들은 구덩이나 갱도에 묻히고 밭에 버려졌다.
곧이어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진상규명은 고사하고 유골을 수습한 유족들마저 빨갱이로 몰아가며 다시금 학살을 되풀이했다.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맞닥뜨릴 때, 남은 자들은 과연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러한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불가능한 애도’라고 한다. 수용하기 어려운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움을 일깨우는 표현이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제주 4.3 사건의 유족들에게 국가권력의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불가능한 애도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수만의 ‘정심’들이 어떤 심정으로 5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이들의 심정에 다가가는 일은 ‘인선’의 절단된 손가락을 접합한 후, 그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바늘을 찔러 넣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운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은 참혹한 상흔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인물들의 고통스러운 심정에 다각도로 공감하게끔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결국 이 야만스러운 역사에 대한 기억은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비극적 죽음을 충분히 기억하고 슬퍼하고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감성팔이라며 이제는 좀 잊어버리라는 말들, 사망자와 유족들을 향한 온갖 혐오 발언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한 시민이 유명 정치인에게 노란 리본이 지겹다며 달지 말라고 요구하는 영상은 이미 유명하다. 참사 발생일로부터 3년 뒤에 있었던 일이다. 참사를 추모하는 일이 지겹다는 인식과 더불어 입에 담기도 역한 혐오의 언어들이 오래 전부터 만연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른다.
올해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이 나라 최고 권력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불참한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주 4.3 사건과 세월호의 참사에서 몇 가지 공통되는 점을 찾자면 그들의 죽음을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분명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4월의 비극적 역사와 참사를 기억하는 행위는 선택 사항이 아니며 지겹다고 잊기를 요구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희생자나 유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잠시나마 생각해 본다면, 정치적 편견을 덧씌우고 혐오하며 망각을 강요하는 언행들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반인륜적이다.
같이 기억하고 슬퍼하면서, 불가능한 애도를 계속하는 이들에게 미약한 위로나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위로들은 분명 우리 사회가 겪어 온 비극적 아픔을 회복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소중하고 또 아름다운 노력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