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사건일지 1장(1)
해경은 펜을 들었다. 펜 끝에 잉크를 묻히고 글자가 퍼지지 않게 적당히 힘을 주었다.
해경은 첫 글자를 쓰려다가 아파오는 입술을 잠시 어루만졌다. 아물었던 자국이 찢어져 다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혀를 내밀자 입 안으로 진한 피맛이 번져나갔다.
해경은 피맛을 느끼며 사선을 건넜던 시간을 생각했다. 죽을만큼 흠씬 두들겨 맞았고, 죽기 직전에서야 겨우 물건을 찾아내었다.
해경은 군화발에 두들겨 맞던 그 순간을 생각하자 치가 떨렸다. 허약한 몸 여기저기에 다시 고통이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희열, 죽음을 앞에 둔 해경에게는 그 희열도 잊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사건을 해결했다는 기쁨이 해경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맞으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마치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를 안겨주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다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져다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삶이 다시 살고 싶어서였을까? 해경은 끝내 남자의 부탁을 승낙하고 말았다. 탐정이 되어서 남자를 도와주는 것, 해경은 또 어떤 사선을 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살고 싶다는 느낌을 준 첫 번째 사건을 겪고 난 후 또 다른 사건을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탐정이 된다는 것이 이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었다면 진작에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질 것을, 그래서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딴 끽다점(카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탐정 사무소를 차려버릴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늦어버린 지금이라도 탐정 사무소를 차렸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또 두근거릴 가슴을 생각하니 권태 속에 묻혀 있던 가슴 속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것과 함께 오래 해경을 괴롭힌 아픔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해경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찍어보았다. 지문을 따라 입술에서 흐른 피가 흘러내렸다.
해경은 손등을 입가로 가져가 맺혀 있는 피를 닦았다. 암호를 풀며 두근거렸던 가슴처럼, 긴 여운처럼 길쭉하고 진한 핏자국이 손등을 훑고 지나갔다.
해경은 자신의 삶처럼 날카로운 펜촉을 희미하게 바라보며 잉크가 마르기 전에 첫 글자를 써내려갔다.
펜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해경은 삐뚤빼뚤한 글씨를 두꺼운 공책에 정성들여 적었다.
이제부터 써 내려갈 글은 해경 자신이 첫 번째로 해결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었다. 해경은 두꺼운 공책에 써진 글자를 보며 이 공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채울 때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 공책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기록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첫 사건이 마직막 사건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 상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목을 쓴 후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할 때였다. 해경은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다.
“콜록, 콜록, 콜록…….”
해경은 가슴 속에서 묵은 오래된 무언가가가 울컥하고 올라올 것처럼 집이 무너질 것처럼 기침을 했다.
“콜록, 켁켁, 콜록, 켁켁…….”
해경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손수건을 입에 가져다 되었다.
“콜록, 콜록…….”
기침은 서서히 작은 소리로 변해갔다. 그리고 드디어 폐를 도려낼 것 같은 기침이 멈췄다. 해경은 옆에 놓인 자리끼를 컵에 부어 천천히 마셨다.
해경은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서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두꺼운 공책에 얼마나 많은 사건을 기록할 수 있을까?’
욕심 같아서는 정말로 이 공책을 사건일지로 가득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하늘이 허락해 준다는 전재 하에서 였지만 말이다.
하늘이 허락해 준다면 사건 일지를 기록하며 마음 껏 하늘을 날고 싶었다.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본 파란 하늘. 그 하늘을 마음 껏 날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해경의 삶은 지주(거미)의 종생 같은 것이었다. 번화한 도시도, 녹색의 시골도 해경에게는 모두 권태, 권태, 권태 온통 권태 투성이였다.
그런 삶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거미줄에 걸려 허덕이는 삶, 죽음이란 녀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해경의 일상이었다.
해경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해경은 폐병 환자였다. 건축을 전공한 해경은 건축 일을 하다가 결핵에 걸려 일을 그만두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허약했던 몸은 결핵에 걸리고 나서 더 허약해졌다. 그의 친구인 유정은 결핵에 걸리고도 힘이 남아도는데 자신은 언제나 골골거렸다.
해경은 현재 일을 하며 모아둔 돈과 큰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조그마한 끽다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신식 끽다점이라고 해봤자 아주 조그마한 가게였다. 가베와 삐루(맥주)를 파는 아주 작은 가게. 해경을 아는 사람들이 단골로 모여 가베와 삐루를 마시는 볼품없는 작은 가게가 해경이 가진 전부였다.
다른 끽다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해경의 끽다점에는 자신의 그림과 친한 친구인 본웅의 그림이 걸려 있어 더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 뿐이었다.
물론 찾아오는 손님도 같은 구인회의 동인이거나,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화가 등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나름의 특징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끽다점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해경은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하고 탐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건 일지의 첫 글자를 써내려가면서 해경은 자신이 탐정이 된 계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탐정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 그날 일어난 아주 사소한 사건, 누가나 겪을 수 있는 바로 그 사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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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본식 건물로 지어진 번화가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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