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사자 족(1)
대족장이 자리에 누운지도 며칠이 지났다.
화족, 수족, 목족, 금족, 토족 족장이 누워 있는 일족 족장의 방으로 들어왔다.
대족장은 아픈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러자 금족 족장이 일족 족장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몸도 안 좋으신데 그냥 누워 계시지요.”
대족장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대족장은 관아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며칠을 이어진 고문을 대족장은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버텼다.
다섯 족장은 대족장의 곁에 빙 둘러 앉았다.
화족 족장이 자신의 귀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미안하다는 듯이 먼저 말을 꺼냈다.
“대족장님 죄송합니다. 이런 아픔을 겪게 해서요. 그런데 대족장님, 일족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일족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여기 있는 모든 종족들의 땅을 침범하고 빼앗고 있습니다. 화족도 일족이 일구는 땅에 의해서 점점 살곳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화족 족장은 자신들을 대표해 고문을 당한 일족 족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족에게 미안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족의 횡포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았다.
말을 이어갈수록 화족 족장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화족 족장이 언성을 높이며 한 말에 모든 족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화족 족장의 말이 끝나자 금족 족장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족 족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일족에 의해 금족의 하늘도 탁해지고 있습니다. 목족의 숲도 점점 줄어들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토족이 살 수 있는 땅이 너무 오염되어서 이제 토족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둠의 아이와 어둠의 군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족에 의해 다른 종족 모두가 멸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일족 중에는 벌써 어둠의 아이 편으로 돌아선 부족들이 많습니다. 천오백 년 전과는 다릅니다. 이제 일족은 강력한 무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족이 어둠의 아이 편에 서게 되다면……. 휴우!”
금족 족장은 차마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족 족장인 대족장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화족 족장과 금족 족장이 한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일족의 욕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땅을 오염 시키고, 공기를 오염 시키고, 풀과 나무를 베어버렸다. 오직 일족이라는 인간의 부를 위해서 한 일들이었다.
이제는 그 욕심이 다른 종족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곧 어떠한 부족과 다른 일족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었다.
대족장 역시 그것이 커다란 걱정이었다. 서로 힘을 모아도 어둠의 아이와 어둠의 군대를 이길지 승산이 없는 판국에 일족이 자꾸 말썽을 일으키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었기 뻔했기 때문이었다.
일족 족장은 모두를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내가 운신이 가능하게 되면 임금님을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야만 일족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수족 족장이 그런 일족 족장의 얼굴을 보며 안쓰러운 듯 말했다.
“일족의 임금이라고 해서 괜찮을까요? 이미 권력을 얻은 것이 임금입니다. 그러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어둠의 아이와 한 편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대족장님을 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일족 족장 역시 그런 걱정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족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최고의 지위자는 임금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족 백성들은 성군을 만나느냐, 악행을 저지르는 폭군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이 좌우 되어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둠의 아이의 편에 선다면, 그리고 어둠의 군대가 된다면 일족의 대부분은 어둠의 군대가 되고 말 것이 뻔 했다.
그리고 빛의 아이를 지키는 자신들은 정말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족 족장은 모두를 둘러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임금님을 믿어봐야지요. 임금님마저 어둠의 아이 편이 되었다면, 그때는 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모든 종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임금님을 설득하겠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뜻을 같이 하는 일족을 모아야지요. 임금은 하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만든 것입니다. 백성들이 괴롭다면 그때는…….”
일족 족장은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전투였다.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족은 일족끼리 무수한 싸움을 이어왔다. 그렇기에 왕족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특히 욕심이 가득 찬 일족들이 득실거릴 때면 하루가 멀다하고 권력을 쥐려는 자들이 서로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서로가 서로의 종족을 죽이는 일은 오로지 일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오직 탐욕에 가득찬 일족의 무리 밖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종족들의 눈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일 것이었다.
일족의 권력 욕심, 명예 욕심, 돈 욕심은 누군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탐욕에 빠져버린 일족에게는 정말 가족도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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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족 족장이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입을 열었다.
“최근에 이상한 종족이 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화족 족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또 어둠의 군대인가요?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수족 족장은 화족 족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린이를 시켜서 조사를 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 한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여서 만나는 자들 마다 그 모습을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수족 족장의 말을 들은 금족 족장이 말했다.
“좀 더 조사가 필요한 일이겠군요. 어둠의 군대라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피해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저도 미르를 시켜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수족 족장은 금족 족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인명 피해는 없지만 어둠의 군대라면 태린이나 미르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태랑이의 훈련은 잠시 미뤄두더라도 둘이 함께 행동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금족 족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는 태린이를 등에 태우고 이상한 종족이 지나갔다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족종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이상한 종족을 만났다는 종족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대체적인 의견은 무서웠다는 점이었는데, 무서웠다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다.
모든 종족들의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정확한 소식은 알아낼 수 없었다.
미르와 태린은 다른 스승들과 의논하기 위해 수련장으로 돌아왔다.
수련장에는 도착하자 나머지 스승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미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한 종족을 만났다는 자들 모두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하더군. 그냥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서움이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정확한 모습을 알 수는 없었어. 다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고 하는 이야기만 들었어.”
미르의 말에 성호가 물었다.
“어떻게 움직였다고 하던가? 하늘을 날아서? 아니면 물을 이용해서? 아니면 땅으로? 만약 땅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멸족된 종족 중 하나라면 미르나 태린이 자네들보다 나와 수참이가 흔적을 찾기에 더 좋을지 모르는 일이지. 우린 땅에서 움직이니까. 그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우리가 더 빠를지도 몰라.”
성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땅에서 움직인다면 멸족된 종족 중에서도 아마 토족일 가능성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같은 토족인 성호가 그 흔적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를지도 몰랐다. 수참 역시 성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나와 성호가 조사를 할게. 미르 자네와 태린이 자네는 그 동안 흔적을 쫓느라 힘들었으니 며칠은 푹 쉬게.”
수참의 말에 모든 스승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와 수참은 아침 일찍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태랑이가 다가왔다.
“오늘은 화의 날이잖아요. 수참이 아저씨랑 수련을 해야하는 데, 수참이 아저씨가 없으면 수련을 할 수 없으니까.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수참은 태랑이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에라이 녀석아, 또 수련이 하기 싫어진 거냐?”
수참의 말에 태랑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예요? 수참이 아저씨도, 성호 아저씨도 알잖아요. 요즘 제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력도 많이 늘었는지. 지난 번 코끼리 족의 공격도 제가 방법을 찾아냈고 저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함께 가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태랑이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성호가 재빨리 태랑이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려고 했다. 태랑이는 신속하게 성호의 손을 피했다.
성호는 연달아 공격을 했다. 태랑이는 두 번째 공격, 세 번째 공격도 가볍게 피했다.
성호는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태랑이를 보며 말했다.
“정말로 수련을 열심히 한 건 맞구나. 내 공격을 이제는 다 피하는 걸 보니. 하지만 아직 더 수련해야 해. 어둠의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누구도 모르니까. 오늘은 화의 날이지만 수참이 대신 미르에게 부탁해 놓았다. 네 수련을 맞아달라고.”
태랑이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쳇! 네, 알겠어요. 미르 아저씨랑 열심히 수련하고 있을게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수참과 성호는 시무룩하게 수련장에 남은 태랑이를 뒤로 하고 빠른 속도로 뛰었다.
둘은 순식 간에 태린이와 미르가 조사했다는 마지막 마을에 도착했다.
성호와 수참은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보지 못한 낯선 흔적이 없는지 천천히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낯선 종족의 흔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수참은 혹시나 어둠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은 없는지 주위의 기를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둠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반나절 동안 낯선 흔적을 찾았지만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수참이 이만 포기하고 마을로 내려가 밥이나 먹고 정보를 더 모으자고 말하려는 그때, 성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참, 이리와 봐. 흔적을 찾았어. 여기 이 발자국. 분명 처음 본 발자국이야. 이건 네 발로 걷는 멸족된 종족의 발자국이 아니야. 분명 사라져버린 종족의 발자국일 거야. 두 발로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
성호의 말에 수참이 성호 근처로 다가왔다.
성호의 말대로 분명 한번도 본 적 없는 발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자신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 종족이나 동물의 흔적이라면 수참 역시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발자국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수참은 이것은 분명 어둠의 군대의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발자국에서는 익숙하지 않고, 친근하지 않은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수참이 발자국의 냄새를 여러 번 맡으며 성호에게 말했다.
“발자국의 냄새도 처음 맡아보는 냄새야. 전혀 익숙하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사나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또 어둠의 군대 중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다른 종족들이 피해를 입기 전에 서둘러 녀석을 잡아야 겠어. 다행히도 발자국의 형태를 보아 여러 명은 아닌 것 같아. 우리 둘이 상대하기에 충분하겠지?”
“그래도 어둠의 군대라면, 분명히 우리 둘이 상대하기 버거울지도 몰라. 다른 스승들을 불러오는 것은 어떨까?”
“그러다가 이 발자국을 놓쳐버리면 어떻게 해? 우리가 먼저 그놈을 공격하면 전혀 승산이 없지는 않을 거야. 그놈이 무방비로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 일단 우리 둘이 움직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을 것 같아.”
말을 마친 수참은 성호를 바라보았다. 성호는 수참의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여러 명의 흔적은 아니야. 혼자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발자국의 흔적이 깊지가 않아. 그 말은 몸놀림이 엄청 가볍다는 이야기겠지. 이 정도 몸놀림이면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빠를 것 같은데. 일단 발자국의 흔적을 더 찾아봐야 겠어. 여기는 발자국이 사방으로 퍼져 있어서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이 녀석이 도망간 방향을 찾아보자고.”
수참은 성호의 말을 듣고, 발작국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발자국들 사이에서 정말 일정한 발자국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날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물론 수참이 불을 밝히면 될 일이지만, 불을 밝히면 적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불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발자국을 찾고, 발달한 후각에 의지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성호도 일정한 방향으로 난 발자국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성호는 어둠 속에서 온몸의 감각을 가득 세우기 시작했다. 후각, 청각, 시각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다 동원했다.
둘이 흔적을 찾는 동안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수참이 성호를 불렀다.
“성호, 여기. 이 방향으로 간 것 같아.”
성호는 수참이 말한 곳으로 가서 발자국의 방향을 살펴보았다. 흩어진 발자국 속에서 이 발자국만이 일정하게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둘은 걱정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더 강해지는 어둠의 군대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찾고 있는 것이 정말 어둠의 군대라면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추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발자국의 주인은 분명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늦으면 정말 모든 것을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어둠의 군대라면, 어둠 속에서 어떤 종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수참과 성호는 일정하게 난 발자국을 따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혹시라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