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카사바 사이에서 찾은 평온
나의 저녁 식탁은 하루를 결정짓는 조용한 무대가 되었다.
한때 나는 무대를 잘못 채워 넣은 적이 있었다.
늦게까지 강의 준비도 모자라 정책 프로젝트에 몰두하면서 마음이 지쳐가는데도 입은 기름진 고소함에 기대어 스트레스를 풀어보려 의지하곤 했다.
게으른 의지는 전주기당뇨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불러왔다.
은퇴를 하고 캐나다로 건너온 뒤, 나는 스트레스도 적어졌고 저녁 식탁도 화려한 고소함보다는 흙냄새 묻은 단순한 뿌리들을 가까이했다.
카사바와 고구마, 그리고 가끔은 삶은 달걀과 바나나로...
카사바는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갔다가 전자레인지에 찌면 포슬포슬 부서지는 속살을 드러냈다.
그 위에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르면, 소박하지만 묘하게 든든한 저녁이 된다.
처음엔 맛보다 건강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는 그 단순한 맛에 마음이 놓였다.
포만감은 길고, 혈당은 잔잔하게 흘렀다.
몇 달이 지나자, 의사의 차트 위 수치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거창한 약도, 요란한 식이요법도 아니었다.
그저 저녁의 선택이 나를 다른 길로 데려갔다.
이제 저녁 시간이 오면 나는 부드럽게 익은 카사바를 바라본다.
그 속에 담긴 건 흙과 햇볕, 그리고 나를 다시 걷게 한 작은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