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색들은 빛에 바래면 하야 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가랑잎처럼 누리끼리 해진다. 그래서 노랑의 시간적 상징은 세월의 흔적이자, 상처요, 또 문화이자 예술로서 과거를 의미한다. 그러니 미래의 상징인 파랑이나 보라의 색들과는 상극의 관계로 여간해서는 어울리지를 못한다.
특히, 보라로 가면 극단적 대립의 보색이 되지만 종종 동반자의 관계가 되어 곧 잘 어울리기도 한다. 이 둘은 워낙 튀는 놈들이어서 저기압의 장마철엔 특히 잘 어울린다. 이들의 특징은 둘 다 아주 산만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한 둘은 고상하며, 우아하고 때로는 장중한 신비의 색이 된다.
노랑은 어린아이의 색이어서 주변의 색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다른 색료를 조금만 넣어도 쉽게 자기 색을 버린다.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하는 어린이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보라는 아주 고집스러운 4차원의 색이라서 주변의 색을 웬만큼 섞어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대적인 보색의 녀석들이 만나면 얼마나 정신없겠는가? 하나 그것은 흔히 이야기하듯 “원색적”일 때만 그렇다. 노랑에 보라를, 또는 보라에 노랑을 섞게 되면 고상하고 우아한 색이 된다. 아무리 생각조차 하기 싫은 미운 오리 새끼라 해도 다시 생각게 하는 색의 신비이다.
이 녀석의 포커페이스는 도박판과 같은 곳에서는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못된다. 본색과 함께 사람냄새까지 감춰져 버렸기 때문이다.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런 사람 냄새가 특히, 이 녀석의 특질이다.
사람냄새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따뜻 노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과 이성은 차가운 머리에서 나오는 파랑인며, 열정과 정열은 배에서 나오는 빨강이다. 그래서 본색이 노랑인 사람에게는 정과 아이디어가 많고 친구가 많아 늘 바쁘기만 하다.
노랑본색은 과거 지향적이기도 한 덕분에 가끔씩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삐짐이 아니다. 노랑은 가슴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파랑이나 빨강과 달리 모든 감성과 기억은 물론 아픔까지도 모두 가슴에 담아 둔다.
노랑은 태양의 기운을 받는 빨강과 달리 달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밤잠이 없다. 해가 떨어져야 일할 맛이 나기 때문에 늘 야작을 많이 한다. 그래서 노랑본색은 감성이 밤에 살아나듯 예술과 같이 창조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
음양오행에서 대지(土)로서 사물의 중앙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며, 사계절을 지배하는 감성과 창조의 색이다. 근대 우리 민족은 짧은 기간 이룩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빨리빨리의 빨강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한류라는 본래의 색을 찾아가고 있다.
흥과 놀이의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은유와 풍자가 자연스러운 우리의 전통문화는 본디 노랑본색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과정에서 허리띠를 졸라맸던 빨강이 2002년 절정에 달했었지만 이제는 세계를 지배할 한류본색, 노랑의 한류가 꽃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