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캐나다
6월 21일은 캐나다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이고 딱히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학교 재량으로 쓰는 PD Day(Professional Developement)라고 해서 학교 교직원들이 세미나도 하고 수업 평가서 같은 것도 작성하느라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 직장맘들은 참 이럴 때마다 월차나 휴가를 쓸 수도 없고 곤란할 테다.
눈뜨자마자 아침도 먹기 전에 6인이 먹을 샌드위치 도시락과 간식을 쌌다. 뭐라도 해야 한다. 어디라도 가야 한다. 에드먼턴 시내에 있는 미술관에서 원주민의 날 행사를 주최하며 평소에 1인 만오천 원 정도 하는 입장료가 오늘은 무료라니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렇지 않아도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렇게 등을 떠민다.
사춘기와 갱년기의 전장에서 오늘은 사춘기가 기선을 제압하며, 집을 나서려는 순간 큰 아이가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 우거지상이다. 큰소리 내기 싫어 점심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두고 간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산불로 인한 대기오염을 거두어 갔다. 제법 오랜만에 맑고 눈부신 푸른 하늘로 눈이 부시다.
다들 학교 쉬는 날 애들 데리고 가는 장소가 미술관, 박물관, 공원인지라 한동안 아이 현장학습에 따라다닌 보람 있게 낯익은 얼굴들이 학교 운동장 아닌 곳에서 마주쳤다고 반가워한다. 타인에게도 쉽게 말을 걸고 눈만 마주치면 웃는 문화에 스며들어 아이들 데리고 나온 듯한 학부모들이다 싶으면 대화의 물꼬가 쉽게 트인다. 미술관이 사교의 장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전화번호 교환이라도 할 것 같은 들뜬 분위기지만 오늘 남은 하루 잘 보내라는 산뜻한 인사로 서로에게 질척거리지는 않는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팝아트 시조새 앤디 워홀 작품을 무료로 관람해서 황송하다. 재기 발랄한 뱅크시 작품도 사진으로나마 옮겨 놓은걸 보고 있자니 별거 없던 일상에 별일이 생긴 듯하다. 들뜬 기분을 뒤로하고 7세 10세 두 어린이들의 요구와 관심사를 살피며 보필하느라 배꼽시계가 예정보다 빨리 울린다.
캐나다 원주민들 공연을 2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관중 속에 있는 시어머니가 눈에 띈다. 혼자 미술관 오시는 시어머니 좀 멋지다고 생각하며 본의 아니게 넉넉하게 싸 온 도시락을 염두에 두고 시어머니에게 점심 피크닉을 제안하고, 흔쾌히 수락하시는 시어머니는 미술관 피크닉 명당은 3층 루프탑 라운지임을 귀띔해 주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눈호강 좋다지만 텅 빈 위장 채우는 민생고 해결이 먼저다. 좀 쌀쌀하지만 맑은 하늘, 높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소박하지만 궁색하진 않다. 그렇다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