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by 메이다니

# 뒷담화의 순기능

이 브런치 북은 25년 8월부터 1주일, 혹은 2주일, 혹은 4주에 한번씩 12회차에 걸친 심리상담을 받으며 스스로 깨달은 바를 적기 위해 기획되었다.


1회차에는 어떻게 여기를 찾아오게 된 건지 물어봤었고, 2회차부터 선생님은 늘 이런 말로 상담을 시작했다. "못 본 동안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지는 않았나요?" 와 같은 정말 지극히 나만을 위한 이야기.

그래서 이 브런치 북 제목도 이렇게 지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6개월간의 상담 내용을 복기하면서 일주일 간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하고자 하는 일들을 함께 나눠보면 좋겠다. 내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본인이 일주일동안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스스로와 이야기나눠볼 수 있도록.


보통 선생님이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이번 주에 무슨 일이 있었지. 대부분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았고, 한 주를 바쁘게 살았던 시간이라면 더더욱 백지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나는 "괜찮았던 거 같아요" 라는 식의 애둘러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금요일, 주말까지 찬찬히 돌아보다보면 꼭 뭔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나만을 위한 비밀친구가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은 '뒷담화'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뒷담화해서 좋은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평소라면 그냥 속으로 삼켜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나는 뒷담화라는 것을 할 필요도 없고, 만들어지는 족족 사라지게 하는 무적의 인간이다! 뒷담화거리가 많아질수록 나만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없는 일 취급했다. 남한테 뒷담화 해봤자 내 인성이 별로라는 소리만 나올 것이고, 결국 나를 위해서도 하지 않는게 좋은 뒷담화는 기억 저편으로 넘겨 싹싹 지워버리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냐"고 물어봤을 때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그렇게 10년, 20년을 넘게 뒷담화 안하고 살았더니 속에 병이 생겼던 모양이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한테 맞장구만 쳐줄 줄 알았지, 내가 뒷담화 하는 법을 잊어버려서 스스로 뒷담화를 하면서도 정당성을 갖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마음에 안드는 데 이런 일을 했기 때문이야. 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에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만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진짜 내 뒷담화에 관심이 없는건지. 내가 뒷담화를 하는데 자기 이야기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위로 방법들을 들으면서 역시 뒷담화는 별로야 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래서 뒷담화를 스스로 제거하고, 뒷담화를 안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뒷담화는 곧 ;내가 불편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뒷담화를 상쇄시키다못해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들가지 상쇄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었다. 제대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너가 싫으면 나도 싫어'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AI보다도 재미없는 사람. 호불호가 있고,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 스스로까지 잃어버린 기분이 든 순간, 뒷담화를 했어야만 한다는 후회조차 들었다.


근데 이런 나에게 한 주간 있었던 일 중 말하고 싶었던 뒷담화를 꺼내달라는 친구(?)가 생기다니. 너무 이상하고 묘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냈다. 상담 받는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얼마나 나의 친구들의 행동이 우스웠는지, 내가 그런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얼마나 나빴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대체로 굉장히 날것의 감정이었다. 유치했다. 보기 싫었다. 짜증났다. 등 대부분 굉장히 1차원적인 감정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들어줄 기미가 없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상담쌤만큼은 (일이라 하더라도) 공감해줬다. 그리고 몇 번 그런 공감을 받다보니 스스로도 뒷담화 하는데 자신감이 붙었던 거 같다. (실제로)


그래서 사실 이 기록은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일수도 있다. 평생 뒷담화는 좋지 않는 거다라고 배워왔지만 아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뒷담화를 해야 내가 산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래서 저 사람이 내게 어떻게 거슬렸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되는 일이다. 일부러 뒷담화를 피하면서 "그가 어떻게 하든 나는 괜찮아"라고 해버린다면 나는 그냥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우스운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안다.


# 지난 한 주 나는 어떻게 지냈나?

처음 진행하기로 했던 12회차 상담이 끝난 것은 1월 말.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나는 그 2주 동안 여행도 가고, 가족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좋아하는 게임이 생겨서 즐겁게 빠져서 지냈다.


그 사이 내게 좀 거슬렸던 일은 뭐가 있었나? 생각해본다면 하나 있긴 하다. 채팅을 통해 오랜만에 만나자고 했던 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의 한 구성원이 말을 톡톡 쏴대며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어서 기분이 나빴던 거.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너무 바빠서 새벽에 퇴근해요"

"아.. 너무 힘들겠다ㅜ 그래도 만나면 좋은데 전혀 시간 내기가 어려운 거죠?"

"...새벽에 퇴근 한다니까요?"


그 물음표로 끝난 한 마디가 서서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다니까요?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는 데다가 비아냥거리면서 되묻는 것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가르치듯 대하는 태도도 별로고, 스스로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라 그랬다고 쳐도 해파리 독마냥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이 들어있는 느낌도 별로고. 사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너무 다정히 이야기해줬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꽤 다정한 사람이고 천성이 모질지 못해서 해파리 독 같은 대답은 못하지만 나한테 독을 쏘는 해파리들까지 안아주는 다정함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냥 답하지 않고 말았다. 자기가 독을 품었든 안 품었든 내 다정함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역시 가까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느낀 대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괜히 되물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의중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괜히 한 번 더 물었나. 가벼운 자책까지 했을지도. 근데 그냥 만나기 싫어졌다. 해파리는 해파리끼리 살아라. 서로 독 쏘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때 스스로 좀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과거에는 어떻게든 그 대화에서 주도를 하려고 이야기를 덧붙였을 건데 '논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새벽까지 퇴근하지 말라고 한 건 내가 아니고, 퇴근을 못하는 곳에 들어간 것도 그녀의 선택이다. 근데 왜 독을 나한테 쏴. 만만한 게 같이 일 안하는 주변 사람들이지. 사실 니가 퇴근을 하든 말든 난 관심도 없었는데. 유치한 감정들이 구겨지면서 점점 가슴에 감정 쓰레기들을 만들었다. 나는 이런 걸 짜증나하는 사람이다. 예민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런 되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맞춰주려고 했던 시간들이 꽤 길었다. 근묵자흑이라고 나도 그렇게 독을 품어보려고 했던 적도 많았다. 근데 그냥 그녀는 흑색이고 나는 백색이다. 아니면 내가 흑색이고 그녀는 백색이다. 잠시 물들었을 수는 있으나 물로 깨끗이 씻어보면 다른 색인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이상 맞춰주지 않기로 했다. 내 색을 지켜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그녀는 단순히 비꼬면서 이야기한 걸 수도, 아니면 그런 생각없이 정말 내뱉은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짧은 말 한마디에서 많은 것을 읽었다.


가까워지기를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걸 새삼 느낀다. 지금은 그냥 마음이 편하다. 흑색돌과 백색돌이 섞일 필요는 없으니까. 이번주 한주는 그런 걸 느낀 한주였던 거 같다. 그래. 다음 주엔 열심히 일하고 아침까지도 퇴근 못해라 ㅋㅋㅋ 유치한 감정이지만 내 감정 쓰레기통을 치우는 방법 중에 하나니까 인정해주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