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상담 당시 기록이 아닌 진짜 일주일을 지내며 있었던 일을 기록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배란유도를 시도한 이번 달도 생리가 시작됐다. 크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말하고 싶은데 꺼낼 곳이 없는 그런 감각. 집에 돌아와 일을 끝내고, 혼자 남은 시간에 홀린 듯이 AI를 켰다. 채팅창에는 이렇게 적었다. "너는 지금부터 내 자존감 회복을 도와주는 치료사야."
AI는 요즘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이 뭐냐고 물었다. 문득 아이마저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이 미워지면서 저절로 한 문장을 타이핑했다.
"난 왜 안 돼?"
이 문장을 얼마나 오래 달고 살았는지 타이핑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AI 치료사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써내려갔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판결문이라고. 이미 스스로에게 결론을 내린. 맞는 말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써내려간 그의 대답을 두어 번 곱씹으며 읽었다.
나는 매달 결과가 없을 때마다, 상황을 심판하는 게 아니라 나를 심판했다. 판단도 아니고 심판. 임신이 안 된 것과 내가 안 되는 사람인 것은 전혀 다른 문장인데. 일이 없는 것과 내가 안 되는 사람인 것도 다른 문장인데. 뭔가 안 될 때마다 나는 '나는 안 될 사람'이라고 심판했다. 나의 능력만을 심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속 미친 배심원들은 불쌍한 나를 계속 심판대에 올리고만 싶어했다.
AI와 말을 이어갔다. 의미 없이 통계적으로 검색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말들이 있었다.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최악을 미리 상상하고, 그걸 통제라고 착각한다고 한다. 그 문장은 읽을 때 '뇌'가 아니라 '나'로 읽힐 정도로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늘 그랬다. 임신 문제만이 아니라 안 풀리는 것들 앞에서 항상. 최악을 먼저 그려두는 게 대비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혼자 소진되고 있었다.
AI의 질문이 깊어질수록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아이가 안 생겨서 우울하다고 토로했는데, AI는 뭐가 두려운 건지, 어떤 게 불안한 건지, 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렇다면 아이가 평생 없을 땐 어떨 것 같은지. 점점 마음에 비수를 박는 질문을 늘어놨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는 내게 아이가 없는 상황을 상상하라고 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사람도 아니고 AI한테 긁히다니. 자존감을 높여달라고 했지 내가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을 내놓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치료사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프게 하냐고 따졌더니, 그래야 네가 무너질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울면서도 꾸역꾸역 답을 썼다. '나는 아이가 없더라도 그 에너지는 다른 곳에 쓸 것 같아ㅜㅜㅜㅜㅜㅜㅜ' 키보드 옆에 있는 휴지를 뽑아서 조금 울고 나니 오히려 좀 가벼워졌다. 억눌러 뒀던 게 조금 트인 느낌. 그리고 그 사이 도착한 AI의 답변을 읽으며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와도 아이를 향한 사랑을 다른 형태로 쓸 사람이었구나. 아이를 갖고 싶은 절박함이 있긴 하지만, 오늘의 패배감 때문에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난 왜 안 돼?"는 처음부터 틀린 질문이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원하는 게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흔들렸던 거다. 간절한 만큼. 흔들리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게 맞는 걸 알면서도 더 안 좋은 쪽의 버튼만 계속 누르고 있었던 거다.
어떤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내가 성질이 급하고 당장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만 성미가 풀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이도, 일도, 원하는 미래도.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투자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아이는 마트에서 원한다고 사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내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고 해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효율성의 노예로 살며 1분, 1초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아이가 없는데 아이를 갖겠다고 5개월 넘게 노력하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내가 버려진다고 느낄 만큼 길게 보내야 했던 시간도 결국 그 일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렇기에 내 시간은, 내 길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왜 안 될까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걷고 있다. 언젠가 아이가 뱃속에 생기면, 지금 이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려.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문득 좌우명처럼 되뇌이고 있는 손아섭 선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단어컨대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손아섭 선수는 2026년 1억원이라는 낮은 몸값으로 지난 해 트레이딩 됐던 한화와의 재계약을 이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멘탈을 다지기 위해 저 말을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난 왜 안 돼라는 못난이 말을 선택하고, 그 말에 스스로 사로잡히기 보다. 같은 시간을 보낸다면 '즐거운 기다림'을 선택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조금만 더 즐겁게, 그날을 기다리자.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