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자'보다 강력한 한 마디는?
#인간 관계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우리는 몸이 피로해지면 휴식을 취하고, 위장이 부담스러우면 가벼운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지쳤을 때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감정을 받아낸다. 마치 멈추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크게 요동칠 때가 온다. 그때서야 알게 된다. 이미 과부하였다는 것을.
그 시작은 늘 비슷하다. 특히 나는 '한 사람'에게서 그런 감정과 상황을 반복해서 느낀다. 최근 그 친구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늦은 밤과 새벽을 막론하고 연락을 해왔다. 그녀가 힘들다고 말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들어줬다. 게임을 하면서 전화를 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면서 전화를 하기도 했다. 너무 그녀의 상황에 몰입하지 않기위한 방어책이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결국 나는 내 성격대로 '과몰입' 상태에 들어갔다.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방향을 정리해주고, 필요하면 시간을 비워 도와줄 준비까지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상대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했고, 나는 그 상황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더 신경을 썼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까지 이야기하길래 무리하게 잡혀있던 일정을 바꾸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준비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미 나는 ‘도와주는 사람’을 넘어,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나 일주일간 매일 같이 상황과 사건을 업뎃해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상황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상대는 나에게 털어 놓은 것 보다 긴장감이 높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상담했던 건 내가 누구보다 자신의 일처럼 함께 화내줄 걸 알았기 때문일뿐. 그걸 나만큼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사건에 대한 반응과 대응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도 않았고 (물론 진행되더라도 내 생각만큼 지혜롭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내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고 내가 길게 고민해서 건넨 말에도 답이 없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SNS를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다른 이야기를 메시지로 툭툭 던져 놓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또네.’ 원하는 것에만 반응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나를 찾는 패턴. 몇 년에 걸쳐 정의내린 그녀의 가장 '구린 행동'. 처음이 아니었기에 더 빨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더 크게 짜증이 났다.
이런 생각은 오프라인으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더 명확해졌다. 그녀와 나는 분명 마주 앉아 있는데, 함께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일에 몰두했고, 나는 그 옆에서 그저 물리적으로만 ‘같이 있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밥 먹는 사이 일하는 동료에가 전화를 걸어 15분간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걸 나는 무의미하게 앞에서 듣고 있었다. 이미 나는 밥을 다 먹었고, 함께 보내기로 했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들을 필요없는 그녀의 업무 대화를 들으며 어이없는 웃음을 삼켰다. 나는 대체 뭘 듣고 있으며 저 이야기를 왜 내가 들어야 하는 걸까. 설마 나한테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고. 같이 있는 사람과 밥 한끼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 쟤는 지금 어떤 정당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10대도 아니었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함께 있는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배운 사회성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살아가는 일이 벅차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한 사람을 두고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이사람에게 존중받기 위해서 대체 내가 왜 이 30살 넘은 가족도 아닌 사람의 성장을 기다려줘야하는 걸까. 함께 있는 동안 내내 든 생각은 단 하나의 생각은 ‘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였다.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이미 관계의 균형은 무너진 상태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고, 시간을 내고, 감정을 써왔는데, 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사람은 화가 나기보다 먼저 허탈해진다. 그리고 그 허탈함이 쌓이면, 결국 분노로 바뀐다. ‘내가 왜 여기까지 했지’라는 질문과 함께.
돌이켜보면 문제는 단순했다. 나는 도와주고 싶었고,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느 순간 선을 넘었다. 도와주는 것과 책임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상대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지쳤고, 상대는 점점 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사용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는 같았다.
그러면 나는 또 마치 깨달은 것 처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 또 왔구나. 이 사람과 거리를 둬야 하는 시간이. 이건 단절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끊어내기 위한 일종의 신호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나 또한 미련했지만 관계를 끊어내는 게 아니라면 결국 이 디톡스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전보다도 더 그 시간을 길게 가져야한다는 생각이었달까.
#인간 디톡스의 방법
관계를 디톡스한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단지, 내가 이 관계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정하는 일이다. 일단은 나도 과몰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했던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늦은 밤 연락을 받지 않는 것, 모든 감정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 필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미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이 문장은 체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언이다. 이건 디톡스 과정이기 때문에 내가 여유를 갖게 되면 다시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중에 내가 기꺼이 하고 싶을 때 다시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내 입장에서 비루하고 미련한 짓을 하필 내 친구가 반복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최근 나를 지탱하고 있는 '내버려 두자'를 또 써먹어봤다. 100번이고 200번이고 무언 마법을 제창하듯 마음 속으로 지금도 되뇌이고 있다. 내 심리 상담 선생님은 한 층 더 높은 주문을 외워보라고 했다. 그 주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맞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또 스스로가 판 무덤에서 빠진 멍청이가 되었지만 이번엔 조금 빠르게 그 구덩이에서 나오기 위한 사다리를 마련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 누군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다고 느낄 때 = 인간 디톡스가 필요할 때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를 잃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편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서는 한 발 물러나는 것이 결국 더 건강한 선택이라는 것을.
인간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감정도, 관계도, 때로는 비워내야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 시작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문장 하나에서 출발한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할 만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