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방법
*이번 글은 상담 당시 기록이 아닌 진짜 일주일을 지내며 있었던 일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2주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달력을 넘겨보니 분명 14일이 흘렀는데, 체감상으로는 사흘쯤 지나간 기분이었다. 나는 가끔 현실에서 뭔가 잘 풀리지 않거나,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서게 되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게임을 꺼내 든다. 이제는 마음껏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른다.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듯 나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번에 붙잡은 첫 번째 게임은 단 5일 만에 엔딩을 봤다. 그런데 그 5일 사이의 3일은 누워서 게임을 하는 바람에 허리가 아플 정도로 몰입했고, 남은 2일은 그 허리를 고치겠다고 반가부좌로 번갈아 앉아 있다가, 서로 닿지 않던 무릎이 바닥에 닿아버리는 경험까지 했다. 아픔을 이기면서도 손에서는 컨트롤러를 놓지 않았던 그 시간. 어쩌면 나는 통증을 견디면서도 즐거움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체험한 건지도 모른다.
또 다른 게임은 내가 평생 즐겨보지 않았던 그래픽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유명 게임 시상식에서 5개 부문 중 5관왕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안 살 수가 없었다. (발더스3) 그렇게 시작한 게임은 나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끌고 갔다. 남편과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빠져 있었고, 스스로도 ‘이건 좀 심한가’ 싶을 만큼 집중했다. 오른쪽 손목에 고질적이던 통증이 (보통은 일할 때만 살아나던 그 통증이) 다시 도져서 오랜만에 깁스같은 찍찍이 부목을 손목에 붙이고도 게임을 계속했다. 미련하기까지 한 취미였다.
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게임에 빠져 있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를 판단할 틈조차 없이 몰입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또렷하다. 무언가가 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경험.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각은 점점 사라진다. 책임과 역할, 계산과 효율이 삶을 채우면서 우리는 점점 ‘빠져드는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2주는 아주 1차원적인 즐거움,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기쁨을 맛본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게임에 이렇게까지 빠져 있었던 건 2021년 이후 거의 처음이다. 보통은 이틀, 길어야 2박 3일이면 열기가 식는다. 그런데 좋은 게임은 사람을 2주, 3주 동안 두근거리게 만든다. 잠들기 전에도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일을 하다가도 빨리 집에 가서 켜고 싶게 만든다. 그런 작품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의 한 지점이 아닐까. 최근에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내년, 혹은 내후년에 나온다는 기사만 보고도 “그때까지는 살아 있어야겠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한다. 예전의 나는 그런 말을 유치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유치함이 아니라, 내 취향을 인정하고 즐겁게 기다리겠다는 선언이라는 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깎아내리지 말자고, 괜히 철든 척하며 부정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가끔은 내 안에 나를 끊임없이 나무라는 엄마가 한 명 더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나이에 게임이냐”라고 말하는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만 듣고 '어른'으로만 살다보니 내가 뭘 좋아했는지도 한참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21년 이후 처음으로 '러너스 하이'같은 '게이머스 하이'가 돌아온 것이다.
아직 두 번째로 산 게임은 한창 진행 중이다. 켜기만 하면 시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책임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즐거움을 오래 붙들고 싶어서다. 중요한 건, 내가 푹 빠질 수 있는 무언가에 다시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해야 하는 일들만 하다 보면 시간은 더디게 간다. 아무리 내가 선택한 일이라 해도, 일이 되는 순간 괴로움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융치료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달랜다.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참고 괴로운 것들만 하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지난주부터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오래전에 나왔는데 요즘 시대에 다시 주목받아 개정판으로 재판되고 있는 책이다.) 그녀는 인생을 살며 자신이 확실히 안다고 믿는 것들을 조용히 적어 내려간다. 그 책을 덮으며 나도 하나를 정의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 한 가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에 푹 빠지는 시간이 있을 때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 드라마 한 편을 잘 만나면 다음 회를 기다리며 한 주를 버티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기대하고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만약 지금 그런 것이 없다면, 당장 그것을 찾아야 한다. 절실히! 절박하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게임이든, 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음악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거나, 앞으로 좋아할 것들이든 아무 상관없다. 일주일을 빠르게 보내는 방법은 나를 잊을 만큼 좋아하는 것에 내가 다시 매달리는 것! 그렇게 보낸 일주일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평생이 된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제법 확실히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