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안 보지만 옛날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습니다.
일본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요.
일본은 유난히 교훈으로 마무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결국은 우정과 사랑의 중요성, 성실하게 살기 등으로
결론을 맺는 거죠.
어떤 특정 애니메이션의 장면은 아니지만 하나의 클리셰가 생각납니다.
주인공이 싸움에서 열세가 되어지려고 합니다.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여태까지 쌓아왔던 경험과 기술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에겐 이것밖에 없어!'
그리고는 여태까지 해왔던 걸 계속하는 거죠.
일본의 장인정신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을 살다 보면 결과가 예측되면서도 해야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요.
상황이 절망스러워서 일수도 있고 내가 염세적인 탓일 수도 있습니다.
10대 0으로 지고 있는 축구선수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회사에서 욕먹을 걸 아는 가장도 회사를 다녀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는 거죠.
현실에 순응하게 돼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질 줄 알면서 참여하는 승부, 떨어질 줄 알면서 보는 면접, 차일걸 알면서 하는 고백,
남 일 같지 않죠?
아마 비슷한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입니다.
채용 공고가 하나 나왔는데 조건이 좋은 일자리입니다.
급여도 괜찮고 거리도 가깝습니다.
업무도 저랑 잘 맞고요.
문제는 내정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자리라는 거죠.
작년에도 공고가 나서 지원을 했었거든요.
면접을 가보니 업무나 경력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더군요.
공무원 시험 문제를 '지엽적이다'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그런 류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알아도 당장 실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질문들이요.
저는 상당한 불쾌감을 가지고 귀가했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내정자가 있을까요?
어쩌면 저번 공고 때도 내정자가 없었는데 제가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부족했던 거죠.
공고에 지원한다고 해서 제가 크게 잃는 건 없습니다.
면접에 떨어진다 한들 손해는 없잖아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지원하는 게 맞습니다.
이력서를 쓰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고요.
저는 다시 불쾌감을 느끼기 싫어 망설이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거죠.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라고 최면을 걸기도 합니다.
잘난 척하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성적으로는 판단이 확실한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합니다.
비겁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또 모멸감을 느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판단이 확실해질까 써보는데요.
확실한 판단이 들지 않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은 밤 11시 33분입니다.
일단 자고 나서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밤에는 감성이 풍부해져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한다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