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키프로스편-5)
키프로스 지도를 보면 니코시아가 왜 수도가 됐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섬 전체가 완만한 구릉과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지만, 험준한 산지 지형이 두 군데 있다. 섬의 남쪽과 서쪽을 아우르는 트루도스 산악지역과 북쪽 해안가를 길게 따라가는 키레니아 산맥이다.
니코시아는 바로 이 사이에 끼어 있다. 천혜의 방어시설을 가진 셈이다. 북쪽에서 니코시아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키레니아 산맥을 템플기사단이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 특히, 북쪽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키레니아와 니코시아를 잇는 길이 산맥과 만나는 요지에 3개의 요새를 구축했다.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St Hilarion castle)와 칸타라 요새(Kantara castle),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부파벤토 요새(Buffavento castle)가 그것이다.
모두 석회암 바위투성이의 산꼭대기에 원래 있던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 위에 석재를 쌓아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요새는 산과 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산 아래에서는 요새의 존재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설사 알아채더라도 실제보다 더 거대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남측 니코시아에서 차가 통과할 수 있는 국경선은 구시가 서쪽에 있다. 과거 키프로스 제일의 5성급 호텔이었으나 이제 비무장지대 유엔군 막사로 사용되는 리드라 팰리스 호텔도 보인다. 북키프로스 검문소에서는 자동차 보험 명목으로 3일짜리 20유로를 떼간다. 국경세나 비자 수수료라 생각하고 지불했다.
하지만 정작 일을 처리하기까지 채 5분도 안 걸렸지만, 직원이 한참을 꾸물거리니 대기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게다가 막상 내 차례가 되자 자동차 열쇠를 가져오라는 둥 갑작스런 요구를 해대는 통에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두 번을 다녀와야 했다. ‘처음부터 안내판을 세워 준비물을 알려주던지 할 것이지’ 툴툴거리며 인내심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낼 즈음 통과를 허가받았다. 국경은 언제나 어렵다!
국경을 넘으니 역시 20년 전 어디쯤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주변으로 끝없이 이어진 평야지대 군데군데 쇠락한 마을이 보인다. 그런데 달리는 와중에서도 시선을 압도하는 게 있으니, 지금 향하고 있는 북측에 병풍처럼 담을 친 키레니아 산맥이다.
쓰나미처럼 덮칠 것만 같은 높다란 산맥 중턱에는 북키프로스 공화국 국기까지 선명히 새겨놨다. 가로 425m, 세로 250m의 거대한 크기다. 하얀색 바탕에 빠알간 초승달과 별이 박혀 있는데, 튀르키예 국기와 색깔만 반대다. 스스로 튀르키예의 괴뢰정부임을 드러내놓은 것만 같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통일협상을 요구하는 유엔에 북키프로스를 합병하겠다고 종종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차는 어느새 산맥 위로 올라섰다. 네비는 3개의 요새 중 보존상태가 제일 좋다는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로 맞춰져 있었다. 구글에서 확인한 폐관시간은 오후 5시. 국경검문소에서 시간이 지체된 탓에 마음이 바빴다.
그런데 해발 730m에 불과한 요새까지 가는 길이 예상외로 험하다. 가드레일도 없는데 경사는 어찌나 급한지 마주 오는 차가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금이 저려온다.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종종 총을 든 군인들과 마주치니 긴장도 된다.
여전히 요새는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하늘로 뻗은 비현실적인 길을 따라 올라가기를 20여 분. 구름 위 딴 세상에 오르자, 길 끝에서 공터를 만났다. 차에서 내리자 아직도 고개를 꺾어 올려봐야 할 만큼 높다란 바위산 위에 요새 일부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시간은 오후 5시 30분. 매표소는 구글에서 가르쳐 준 대로 이미 닫혔다. 하지만 폐장시간은 6시 30분이란다. 그 의미는 무료입장! 서둘러 요새에 올랐다.
요새의 이름에 붙은 세인트 힐라리온은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여기저기 떠돌다 키프로스까지 온 기독교 성인이다. 헤르만 헤세의 마지막 작품, <유리할 유희>에도 잠깐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기적을 일으켰다는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인적이 드문 높은 산에 은거하며 말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여기가 그 은거지는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요새에 붙은 이름은 성자에 대한 오마주일 뿐이지만, 그만큼 요새가 험준하다는 반증도 된다. 그리고 실제로 고고학자들은 요새가 건설되기 전으로 보이는 수행자들이 기거하던 조그만 수도원의 흔적도 발견했다. 오래된 만큼, 요새에는 재밌는 전설도 내려오고, 십자군 왕국의 마지막 아픈 역사도 서려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요새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100개의 방을 제외하고,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어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101번째 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랫마을에 사는 일부 청년들이 40년마다 돌아오는 ‘Wish Day(소원성취의 날)’에 요새를 방문하여 그 비밀의 방을 발견한다. 방에 들어선 그들은 엄청난 보물들에 압도되었고 이 방에 걸린 규칙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규칙은 오로지 하나의 보물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탐욕을 부리는 사이 문은 닫혀버린다. 그렇게 40년 동안 방에 갇힌 후 그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40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신들보다 더 늙어버린 자식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전설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여러 가지가 생각났다. 소원을 들어주는 아프로디테 신화 혹은 요술램프를 가져오기 위해 마법사의 동굴에 들어간 알라딘 이야기도 겹친다. 무엇보다 그들이 갇혔던 방에서 40년 동안 늙지 않았다는 내용은 <인디아나 존스> 3편에서 성배를 통해 불멸의 삶을 얻은 템플기사도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40이라는 숫자도 종교적 색채를 더한다. 중근동에서 40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겪어야 하는 시련과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유랑한 기간이 40년이다. 노아의 홍수는 40일간 지속되었고, 모세도 40일간 호렙산에서 머문 후 야훼로부터 언약의 궤를 받는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악마의 시험을 받았다.(이러한 전통에 따라 기독교도들은 사순절을 40일간 행한다) 예수는 또한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무덤에 안치된 지 40시간 만에 부활했고, 부활해서 승천까지 40일간을 지상에 머물렀다. (지금 검역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 쿼런틴(Quarantine)도 40을 의미한다. 흑사병이 창궐하자 이탈리아가 입항 선박들을 40일간 해상에 대기시킨 데서 유래한다. 물론 흑사병의 잠복기간을 알 리 없었던 만큼, 40일은 단지 성서에서 차용한 격리 기간이었다)
어쨌거나 옛 전승부터 기독교의 흔적까지 포괄하고 있는 이 전설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역시나 성배를 암시하는 ‘감춰진 단 하나의 보물’이다. 그게 베네치아 공국이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를 파괴한 진짜 이유였을까?
요새의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과 산길을 따라 20여 분 소요된다. 요새는 높이에 따라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만나는 제일 아래 1구역은 마구간과 수비대 건물들의 터만 남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원래는 도개교로 출입 가능한 2구역이 나온다. 가운데 홀을 중심으로 교회와 막사 등이 밀집해 있고, 빗물을 저장했던 대형수조도 있다. 제법 벽체들이 보존된 건물군 사이로 길이 계속된다.
은근 경사가 있다. 땀이 좀 나는가 싶을 때 마지막 3구역에 도착한다. 가운데 중정을 두고 건물들이 에워싼다. 요새 중 가장 은밀한 부분이라 두께 1.4m의 성벽으로 바깥을 둘렀다. 왕가의 여름 거처로 사용된 2층의 로열 아파트먼트에는 돌로 새긴 창틀이 남아있는데, ‘여왕의 창문(Queen’s Window)’이라 불리는 명소다.
3구역 내부에는 2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존 왕자의 타워(Prince John’s Tower)‘도 거기 있다. 아랫쪽 매표소에서도 보일 만큼 요새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산봉우리 위에 치솟은 타워는 독특한 경관을 만들고 있는데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바위투성이 능선을 따라 타워까지 가본다.
타워 명칭에 붙은 존 왕자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포르투갈 코임브라 지역의 공작 집안 태생인데, 역모에 휘말리면서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프랑스로 탈출에 성공, 우여곡절 끝에 1456년 키프로스의 샤롯데 공주와 결혼까지 한다. 당시 공주는 키프로스 왕 요한 2세의 외동딸로 왕위서열 1순위였다.
인생역전처럼 보이지만 기쁨도 잠시. 갑자기 어디선가 공주의 이복오빠가 나타난다. 그리고 십자군의 원수인 이집트 맘루크를 끌어들여 키프로스 왕권을 노린다. 다급해진 공주의 어머니, 헬레나는 제노아 공국에 지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제노아 공국의 요구대로 루이스라는 남자를 공주와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의 사위였던 존 왕자를 독살한다. 결혼 1년 만이었다. 그리고 공주는 이듬해 키프로스의 여왕이 된다.
존 왕자의 짧은 결혼 생활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한 번은 자신을 암살하려던 두 명의 불가리아인 호위병을 체포해 이 타워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래서 ‘존 왕자의 타워’이다) 최측근조차 믿지 못하며 숨막히게 살다가 결국 비명횡사하고만 비운의 인물인 셈이다. 인생 새옹지마다.
이후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샤롯데의 이복오빠는 마침내 판을 뒤집는 데 성공한다. 그는 샤롯데 여왕을 2년 만에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그렇게 외세를 끼고 왕이 된 제임스 2세는 샤롯데 부부를 키레니아 성채에 3년간 유폐한다. 교황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해 로마에 정착한 샤롯데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지만, 다시 키프로스로 돌아가진 못했다.
한편, 권력욕이 과도했던 제임스 2세는 이번엔 베네치아 공국의 14살 소녀 캐서린과 결혼식을 성대히 올린다. 베네치아 공국의 후원을 노린 정략결혼이었다. 캐서린의 집안은 베네치아 공국에서 4명의 도제를 배출했으며, 키프로스와의 무역으로 거상이 되면서 부와 권력을 모두 쥔 명문 가문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2세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결혼 후 몇 달 만에 그도 독살당한다.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제임스 3세가 왕위를 이었지만 1살도 되기 전에 타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 끊긴 키프로스 왕가를 대신해 베네치아 공국은 자국 출신의 캐서린을 여왕으로 내세웠다. 짐작하겠지만, 키프로스의 마지막 왕이다.
그녀의 재위 15년에 걸쳐 베네치아 공국은 키프로스의 경제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후 쓸모없어진 캐서린을 강제 폐위시키며 1489년 키프로스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어쩜 구한말 우리 역사와 닮았는지 소름 끼칠 정도다. 권력이 사사로움의 도구가 될 때 부족한 정통성은 외세의 무력에 기대게 된다. 그게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 역사는 매번 유사한 결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존 왕자의 타워에 서자 발아래 구름이 깔리고 저 멀리 키레니아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멋진 전망이다. 그것만으로도 여기 올라온 보람이 있다. 하지만 시원한 전망은 그 전략적 가치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전쟁에 종종 끌려간다.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했던 터키군은 제일 먼저 키레니아에서 니코시아에 이르는 길을 확보하는 데 안간힘을 썼다. 그 야전 사령부가 바로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 주변에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과거나 지금이나 키프로스의 주인이 되기 위해 선점해야 하는 중요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23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