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키프로스편-6)
요새를 내려와 키레니아에 도착했다. 키프로스 제일의 항구도시다. 분단 이후로 시간은 멈춘 듯하지만, 아기자기한 구도심은 여전히 활기차다.
항구에 붙은 키레니아 성채도 멋지다. 규모가 상당한데, 보존상태도 좋다. 해자를 건너 성채로 들어가면 교회와 막사로 둘러싸인 커다란 중정을 만난다. 중정에서 시작된 경사로는 성채의 옥상까지 이어진다. 옥상에선 키레니아 항구나 항구 반대편의 웅장한 키레니아 산맥과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채는 기본적으로 직사각형 형태인데 모서리마다 망루가 서 있다. 북동쪽 망루는 기 드 뤼지냥이, 북서쪽과 남동쪽 망루는 베네치아 공국이, 남서쪽 망루는 비잔틴 제국이 처음 세우고 베네치아 공국이 확장했다. 그야말로 키프로스의 연대기가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베네치아 공국은 세인트 힐라리온 요새를 포기하는 대신, 키레니아 성채를 키프로스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 지금의 튀르키예와 가장 가까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1570년 오스만제국이 키프로스를 공략할 때, 그들은 키레니아 성채를 우회해 남쪽의 라나카 지역에 상륙했다. 그리고 니코시아를 7주간의 포위 끝에 함락했다. 키레니아 성채에 주둔하던 베네치아 군대는 니코시아 함락 소식에 별다른 저항 없이 투항했다고 한다. 키레니아 성채가 지금껏 원형을 유지한 채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키레니아 성채만큼이나 키레니아에 오면 꼭 들르고 싶은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벨라파이스 수도원이다.
키레니아 성채 주변에 즐비한 노천카페에서 기분 좋게 브런치를 하고, 차로 20여 분을 더 달린다. 해발 220m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도원은 폐허가 되어 있다. 최초의 수도원은 13세기 키프로스 십자군 왕국의 출범과 함께 건설되었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면서 쫓겨난 성묘교회의 사제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수도원은 회랑과 본당, 식당 등을 차례로 증축하며 규모가 커졌다. 그러다 베네치아 공국이 지배하던 시기부터 사제들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엄격한 수도회의 계율을 포기하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들에게 사제의 지위까지 대물림시켰다. 보다 못한 오스만제국이 사제들을 모두 쫓아내고, 키프로스 정교회에 수도원을 넘겨버린다. 그 이후로 수도원은 다시 예전의 영화를 찾지 못했다.
내가 수도원을 찾아간 이유는 엉뚱하지만, 근처에 있다는 나무 한 그루를 찾고 싶어서였다. 일명 ‘게으름의 나무(Tree of Idleness)’. 로렌스 듀렐이라는 영국 작가가 집필한 ‘Bitter Lemons of Cyprus’란 책을 통해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1953년부터 3년간 직접 키프로스에 살면서 이곳의 일상을 기술한 책에서 작가는 전설 하나를 소개한다. 이야기인즉, 어떤 특별한 나무 아래에 앉게 되면 누구든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무기력해지면서 더이상 일하기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나무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않았고, 수도원 근처 상인들만이 상가 앞 아름드리나무에 그럴듯하게 푯말을 붙여놓고 장사에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꽃내음 가득한 선선한 바람과 포근한 햇볕이 고양이털처럼 살랑살랑 피부를 간지럽히는 벨라파이스에선 어떤 나무라도 그늘 밑에 들어가면 게으름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게으름은 참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금기시되는 행태인지라 게으름을 조금이라도 피워볼라치면 죄책감에 스스로를 책망하곤 했다. 사회에선 치열하게 살기를 강요당하는데, 이는 곧 시간을 쪼개가며 혹은 야근도 마다않고 바쁘게 빨리빨리 부지런 떠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게으름은 시간 낭비이며 무책임한 인생을 의미했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되니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진짜 그럴까?' 하는 물음을 자꾸 던지게 된다. 게으름도 그러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을 미덕으로 격상시킨 것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이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노동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과로 아니면 실업이라는 극단적 상태 중 하나로 갈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러셀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충분한 여가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소수의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노동으로 누리던 게으름의 권리는 기계화된 문명에서 누구나 충분히 누릴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여가를 통해 사람들은 여유와 행복을 찾고, 진정한 자유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게으름에도 사회경제학적인 강박이 개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으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한 가지는 항상 되뇌며 살려고 한다. 꼭 목적이 있고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만이 삶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 어렵겠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의 일부는 게으름을 피우며 나를 위해 ‘대충’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게 아니다.
아침잠을 깨우는 새소리도 음미하고, 아이들의 웃음에 감동하고, 멍때리는 자신에 관대해지고 싶다. 사회 혹은 타인이 요구하는 수준을 성취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나의 존재감을 겨우 자위하기보다는, 그저 나의 오감을 믿고 주변의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에 때론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다. 마지막 순간, 내게 남는 유일한 것은 스티브 잡스의 유언처럼 이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추억 아니겠는가?
수도원 회랑 근처 아무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누워본다. 스스로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지금의 게으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면 퍼뜩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이 기분이 가장 먼저일 것 같다. 류시화 시인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 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나에겐 여행이 그렇다. 여행하고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식적인 페르소나 따윈 차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영접할 수 있어 좋다. 누구의 지시나 평가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자고 먹고 생각하는 모든 본능을 내가 마음껏 느끼고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어 좋다.
마음에 들면 볼 것 없는 도시라도 며칠씩 빈둥거리고, 빠른 교통수단 대신 일부러 찬찬히 걸으며 둘러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걸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게으른 짓이라고 힐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런 나를, 나의 시간을, 나의 결정을 간섭하거나 빼앗지 못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결정엔 참도 거짓도 없다. 그저 나의 기분과 의지만 남는다.
그렇기에 어떤 결정도 나에겐 옳다.
결정이 초래한 뜻밖의 상황이 설사 고생을 부른다 해도, 그것조차 값진 추억이 될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 하나 덜 보는 대신 지구상에 나만이 간직하고픈 비밀의 장소가 생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는 대신 뜻밖의 맛집이나 친절한 현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게으름은 그렇게 또다른 근사한 기회를 선사한다. 그게 여행이다. 그래서 난 여행에 중독된 건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난 일상의 삶도 그러한 여행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생활 그 자체가 되어 무덤덤한 일상이 되는 여행생활자가 되기보다는, 생활 자체가 여행이 되어 언제나 가슴 뛰는 하루를 만들어내는 인생여행자가 되고 싶다. 그런 점에서 게으름은 내가 여행에서 얻은 큰 가르침이다. 아름드리나무가 그런 나를 응원하듯 묵묵히 내려다본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프랑스 파리를 향해 간다. 십자군으로서 템플기사단은 키프로스에서 종지부를 찍었지만, 템플기사단 조직은 그들의 마지막 그랜드마스터, 자크 드 몰레의 화형과 함께 파리에서 와해되었다. 그들의 조국이었지만, 그들의 명예를 빼앗은 곳도 프랑스였다. 따라서 템플기사단이 역사에서 사라진 순간부터 이후 기사단이 걸었던 여정을 쫓아 여행을 다시 시작하기에 파리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유럽 대륙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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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