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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Apr 14. 2023

고딕건축, 건축 역사의 수수께끼

24/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프랑스편-1)

   2019년 4월 15일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첨탑에 가슴 졸였지만, 그나마 지붕을 제외하고 구조체가 전소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성당 주변에서 눈물 글썽이던 파리 시민들을 쉽사리 잊지 못한 건 2008년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숭례문이 서울을 대표하듯, 노트르담은 파리의 얼굴이었으니 파리 시민들에게 상실감의 무게는 꽤나 컸을 것이다.     


(사진5-1. 2023년의 파리 노트르담 성당, 여전히 복구중 ©이경석)

     

   노트르담이 위치한 시테섬은 세느강 가운데 있는데, 파리가 시작된 곳이다. 원래 시테섬에는 강을 남북으로 왕래하며 무역을 하던 켈트족이 살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파리시(Parisi)라 불렀다. 이 명칭은 시테섬 남쪽에 이집트 이시스(Isis) 여신을 모신 큰 신전이 있어, ‘이시스 신전 근처 마을’이란 뜻에서 기원했다고도 본다. 이시스 신전은 아직도 있는데,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수도원에서 유명한 검은 마리아상도 이시스 여신의 숭배 흔적이다)


   로마가 1세기에 이곳을 점령한 후 강의 남쪽(현지에서는 강이 흐르는 방향을 기준으로 좌안이라 부른다)을 먼저 개발한다. 이후 섬의 북쪽 습지가 매립되면서 강의 북쪽(우안)이 본격 개발된다. 퐁피두 센터가 있는 레알지구가 그렇게 신도심이 되었다.


   12세기 후반에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 일부를 포함하는 성벽이 세워졌다. 지금은 루브르박물관이 된 루브르궁은 당초 파리를 방어하는 요새였고, 성벽 바깥에 있었다. 서쪽의 루브르궁과 동쪽의 바스티유가 성벽 안으로 들어온 건 16세기였으니, 영국과 백년 전쟁을 할 때만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시테섬에는 2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었다. 과거 로마제국 총독의 숙소가 있던 섬의 서쪽 끝에는 6세기부터 프랑스 메로빙거 왕가의 궁전이 들어섰다. 지금도 일부가 남아 있는데, 오늘날에는 ‘콩시에르쥬리’라 불린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에 갇혀 있던 곳이다.


   궁전과 대척점에 있는 섬의 동쪽 끝에는 주피터 신전이 있었다. 기독교 전파 이후 예배당으로 사용되다 1163년 지금의 노트르담 성당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시테섬은 파리의 기원이라는 역사적 상징성뿐만 아니라, 정치와 종교라는 중세시대 두 개의 거대한 권력 기반이 자리한 파리의 실체적인 중심을 이루었던 장소였다.      


   하지만 파리는 여전히 변방의 조그만 지방도시였다. 메로빙거 왕조 시대에 잠시 반짝하다가 다시 몰락해가던 파리는 12세기부터 카페왕조가 거점으로 삼으면서 점차 지금과 같이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파리가 가톨릭 대교구가 된 건 1622년이 되어서다. 다시 말해, 17세기까지 노트르담 성당은 그냥 조그만 시골교회 혹은 왕궁 옆에 붙어있는 부속교회 정도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왕들은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죽어서는 생드니 수도원에 묻혔다.


   보잘것없던 노트르담 성당을 지금처럼 웅장하게 만든 이는 당시 파리의 주교였다. 그는 성당을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기 위해 30년 전 생드니 수도원이 처음 선보였던 고딕 양식을 채택했다. 그렇게 고딕건축은 갑작스레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진5-2. 좌 : 랭스대성당 ©bodoklecksel, 우 : 생드니 대성당 내의 프랑스 왕가 무덤 ©이경석)


고딕건축, 건축 역사의 수수께끼     


   고딕건축은 글자 그대로 ‘고트족스러운 건축’이다. 16세기 피렌체의 바사리 비밀회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조르지오 바사리가 명명한 이래 지금은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단어엔 굉장한 경멸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당시 고트족은 로마를 파괴했던 게르만족 일파로 반달리즘의 대명사였다. 따라서 고트족같다는 말은 야만스럽고 천박함을 뜻했다. 물론 고딕건축은 고트족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새로운 양식에 고트족을 끌어다 붙인 것은 그만큼 고딕건축이 서양 사회에 던진 충격이 매우 컸다는 이야기다.     


   고딕건축의 모범적인 교과서는 단연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다. 


   지하철 4호선 시테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온 후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세느강 옆에 널따란 광장이 펼쳐진다. 거기서 노트르담 성당의 서측 정면을 마주할 수 있다. 정면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양옆으로 한 층씩 더 올라간 종탑이 대칭을 이루고, 유명한 장미창이 가운데 보석처럼 박혀 전체 중심을 잡아준다.


   수직성이 강조된 벽기둥과 이들 사이에 자리잡은 아치 혹은 띠를 이루며 일렬로 늘어선 조각상 등이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음영을 만들면서 리드미컬한 시각적 흐름을 형성한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알 듯 말 듯 미묘한 긴장감이 희한하게도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를 형성하며 안정감 있는 조화를 이끌어낸다.    

  

   ‘돌이 만들어낸 장엄한 교향곡’     


   불과 스물아홉의 나이에 <노트르담 드 파리>를 써 내려간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성당을 그렇게 묘사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급기야 철거까지 거론되던 와중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무위도식하는 위선자들의 궁전이라며 흥분한 군중들에게 성당의 가치를 달리 보게끔 만든 결정적 한마디였다. 성당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런데 여러 다양한 악기가 동시에 화음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교향곡 한 편을 통째로 담아냈다는 표현을 쓴 거라면 교향곡은 성당 정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성당 그 자체도 교향곡이다. 중력을 이겨내면서 더 높은 그리고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장치들이 성당 내외부를 넘나들고 서로 연결되면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굽이친다. 마치 뼈와 장기, 근육과 신경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보이지만, 최적의 장소에 가장 합리적인 모양으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우리 인체와 비슷하다. 고딕건축을 특징짓는 수많은 구조적 장치 중에 대표적인 세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첨두아치(영어로는 포인티드 아치, pointed arch)다.


   이전에는 반원형이었던 아치가 끝이 뾰족하게 바뀐 것이다. 아치는 상단에 쌓은 벽이 내리누르는 하중을 양 갈래로 분산시켜 기둥으로 안전하게 전달하도록 고안됐지만, 근본적으로 기둥을 밀어내는 힘도 가졌다. 따라서 반원형 아치에서 기둥 간격이 너무 벌어지거나 아치의 높이가 올라가면 아치 중앙이 쳐지면서 쉽게 붕괴된다.


   첨두아치는 벽의 하중이 가파른 수직에 가깝게 내려가도록 해 기둥을 옆으로 밀어내는 힘을 최소화시켰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첨두아치의 등장은 보다 높은 벽과 넓은 개구부를 가능케 하였다.     


(사진5-3. 첨두 아치, 영국 웰스 대성당 ©이경석)

   

   둘째, 리브볼트(rib-vault)라 불리는 천장구조다.


   벽이 높아져도 천장이 불안정하면 소용없다. 고딕 이전의 기본적인 천장구조는 배럴볼트(barrel vault)였는데, 아치를 한 방향으로 길게 늘린 반원통형 터널이다. 이 구조는 모든 부분이 상단의 하중을 떠받치고 있으니 약한 지진에도 무너질 만큼 외부 충격에 취약했다. 또한 창을 내거나 기둥 사이를 늘리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배럴볼트를 직각으로 교차시켜 지지력을 강화시킨 교차볼트(cross vault)가 등장한다. 교차볼트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아치가 네 방향에서 서로 만나는 곳에 자연스럽게 모서리가 생긴다. 그 모양이 마치 사람이 다리를 벌렸을 때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Groin)와 닮아 그로인 볼트(groin vault)라고도 부른다.

   

   고딕건축은 이 모서리에 뼈대(rib)를 덧붙였을 뿐이다. 그러자 천장 전체를 누르던 하중이 마법처럼 뼈대를 타고서 기둥으로 흘러갔다. 뼈대만 강하게 만들면 되니, 천장은 가벼워진다. 인체의 갈비뼈처럼 뼈대와 기둥이 일체화되어 성당 전체를 감싸니 안전성도 높아졌다.


   물론, 그 갈비뼈 안에 인류 역사상 본 적 없는 높고 웅장한 실내공간이 들어섰다.     


(사진5-4. 좌 : 배럴볼트 천장과 반원아치, 독일 슈파이어성당, 우 : 리브볼트 천장과 첨두아치, 프랑스 생드니성당 ©이경석)


   셋째,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의 출현이다.


   벽이랑 천장은 이제 높일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이들의 재료가 모두 돌이다 보니 어마무시한 하중을 어떻게 견디느냐 하는 거였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둥과 벽을 두껍게 하면 된다. 고딕 이전의 로마네스크 건축이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창문조차 낼 수 없어 내부는 어둡고 무거웠다.


   그런데 고딕 장인들이 기발한 해결책을 내놨다. 천장으로부터 내리누르는 하중에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비스듬히 기둥에 덧댄 것이다. 외관을 보면 플라잉 버트레스가 지네의 발처럼 노트르담 성당을 빙 둘러가며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장치는 뜻밖의 결과도 가져왔다. 우선, 하중을 받는 구조재와 하중을 받지 않는 부재가 분리되었다. 특히, 하중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의 등장은 가히 건축의 혁명을 가져왔다. 당장, 고딕건축은 비내력벽에 수많은 창문을 내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워 넣었다. 그러자 실내에선 이전에 보지 못한 화려한 연출이 가능해졌다. 빛을 건축의 재료로 부리게 된 것이다.


   한편, 바깥에 설치된 플라잉 버트레스는 기둥에서 건네받은 하중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무거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위에 돌을 더 쌓아올렸다. 그냥 올려놓기 밋밋하니 조각상으로 만들거나 끝이 뾰족한 원뿔형으로 처리하여 시각적 안정감과 미적 효과를 동시에 얻어냈다. 흔히 고딕 건축하면 빛으로 가득한 내부와 하늘을 찌를 듯 뾰족뾰족한 외관을 떠올리는 이유다.   

           

(사진5-5. 좌 :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플라잉 버트레스 ©위키피디아, 우 : 생드니 성당의 플라이 버트레스 ©이경석)


   이러한 고딕건축의 등장에 두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먼저, 고딕건축이 선보인 기술적 진보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완성도 높은 성취에는 틀림없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구조체를 해석하는 물리학이나 구조역학 같은 학문조차 변변치 못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딕은 거의 완결된 양식으로 홀연히 등장한다.


   설이 분분하지만, 고딕양식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인물은 생드니 성당의 수도원장 쉬제(Abbot Suger)라 전한다. 하지만 그는 건축주이자 고딕건축 장인의 후원자 정도로 여겨진다. 아쉽게도 고딕건축 장인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때문에 고딕 기술의 원천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사진5-6. 생드니 대성당 ©이경석)


   두 번째 의문은, 도대체 당시 무슨 충동이 있었기에 새로운 건축을 탐하게 됐을까 하는 점이다. 고딕 직전에 서유럽을 휩쓸던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였다. 글자 그대로 로마의 양식을 물려받은 건축이란 의미다. 바실리카의 직사각형 형태에 카라칼라 공중목욕탕의 천장에서 그로인 볼트를 가져오고, 이슬람에서 들여온 반원형 아치를 조합해 양식을 완성했다. 통상 10세기,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하니, 고딕이 출현하기까지 짧게는 200년, 길게는 700년 가까이 이어온 양식이다.


   그동안 로마네스크 건축의 변화는 더뎠다. 디테일은 조금 변했지만, 기본 구조는 그대로였다. 시간의 무게를 감안하면, 건축양식을 바꿀 생각조차 좀처럼 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욕구가 생긴 듯하다. 이전 양식에 미련을 가지기보다 모두 뒤엎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강한 의지같은 게 말이다. 그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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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파리 지도 ©https://maps-paris.com)




[사진출처]

사진5-2 좌 : By bodoklecksel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78975


사진5-5 좌 :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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