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가 멈춘 저녁 9시의 우유니 사막, 지프차 상판에 누워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별을 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칠흑 같은 밤, 주위의 풍경을 눈에 넣기까지는 몇백 년, 몇천 년 전에 출발해 이제야 도착한 과거의 별빛에 빚지고 있다. 여행을 하며 기대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곳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만, 사실은 그들을 통해 오래전 여기 살았던 그들의 과거를 만나려는 게 여행이니 말이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현재는 없다. 과거의 결정이 현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정이 반드시 진실에만 근거해 이루어진 건 아니다. 그렇게 거짓이 섞인 수많은 과거가 쌓이고 쌓여 만든 현재에서 올바른 것을 가려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할 수나 있을까? 나는 눈앞에 쏟아지는 과거의 별빛을 홀로 막아낼 재간이 없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현재는 이미 팩트다. 하물며 현재를 부정하거나 벗어나는 건 생각조차 어렵다.
현재를 만든 과거의 결정에서 간혹 거짓을 의심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눈앞의 별빛에 곧장 저항없이 순응하고, 심지어 과거에 대해 집단최면에 가까운 믿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먼 옛날, 그때의 별빛에 진실을 담기엔 역부족이었을지 몰라도, 진실 대신 거기에 채워 넣은 꿈과 바램까지는 잃고 싶지 않아서일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가로등으로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더이상 별빛이 필요치 않은 현재는 꿈과 바램을 담아 내렸던 과거의 결정 따윈 잊어버리려 한다. 하지만 가로등이 있건 없건, 과거의 별빛은 아직도 우리의 밤을 비추고 있다. 가로등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존재하지만 느낄 수 없게 된 별빛은 마치 지금 이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듯 결국엔 마음속 판타지로만 남겨지는 것 같다.
813년 펠라요라는 수도승이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에 이끌려 서쪽으로 갔다. 도착한 곳은 리브레돈이라 불리는 들판이었고, 거기서 별빛에 반짝이는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들어섰고, 무덤은 성 야고보의 것이라 전한다. 대성당이 위치한 도시 이름 ‘콤포스텔라’도 ‘별이 빛나는 들판’이란 뜻이다.
하지만 무덤이 성 야고보의 것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냥 교황청이 공인해준 것이 전부이지만(그것도 무덤 발견 이후 약 370년이 지난 후에야) 무덤의 진짜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거기에 진실은 없더라도 사람들의 꿈과 바램은 녹아 있었으니까. 무슬림에 쫓기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스페인 기독교도들은 기적이 필요했다. 그때 무덤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슬림을 스페인에서 몰아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성 야고보의 무덤이라 불린 곳에서 또다른 기적을 원했던 무리 중에는 템플기사단도 있었다.
기사단은 프랑스에서 공동체가 와해된 이후 상당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기사단은 원래 두 가지 성격을 가졌다. 그들은 성지를 보호하는 기사이자 교황의 명령에만 절대복종하는 사제였다. 하지만 성지도 잃고 교황한테도 버림받은 지금, 존재의 의미를 다시 설정해야 했다.
자신들이 보호할 가치와 충성할 대상을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성지인 템플마운트에 직접 머물렀던 유일한 기독교도였다. 그리고 성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건 왕과 귀족들은 물론 교황의 경제적, 정치적 후원을 단박에 이끌어낼 만큼 위협적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성배라 불렀다. 그렇다! 이제부턴 성배를 보호하는 기사단이 되어야 했다. 성배가 있는 한 누구도 건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프랑스 왕도 빼앗지 못한 성배가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고 앞으로도 몰라야 한다. 템플기사단은 그 비밀을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전수하고 조직에만 충성하는 폐쇄적 집단으로 바뀌었다. 철저한 생존논리였다.
기사단은 자신들을 살려둘 수밖에 없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치적 상황을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레콩키스타를 통해 기사단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무슬림에게서 빼앗은 땅은 기사단에 맡겨졌다. 기사단은 거기에 수많은 성을 쌓았다. 무슬림과 싸울 기사도, 다시 회복한 국토를 관리할 인력도 부족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기사단은 영역을 넓혀갔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러했다.
하지만 교황이 눈감아주었다 해도 칙서를 통해 기사단을 해체하라는 지시는 변함없었다. 이에 따라 유럽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잔존 조직 간에 네트워크를 복원해 기사단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과정은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했다. 첫 시작은 신입 기사들이 기사단에 입문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급격히 위축된 조직의 세를 늘리고, 유럽 내 존재감을 계속 유지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입문 과정에는 교황청이나 종교재판소에서 잠입한 스파이를 걸러냄과 동시에 비밀을 전수받을 충성도 높은 기사를 단계적으로 선별할 장치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기사단은 비밀리에 회합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그렇다면 그 첫 번째 단계의 입문이 이루어지던 최초의 장소는 어디였을까? 일부에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목한다. 난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성당이 있는 스페인의 북서쪽, 갈리시아로 가려 한다.
그것이 내가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북쪽 루트를 택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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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