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지하철역에서 5분 거리지만, 바로 코앞까지 가서도 원통의 특이한 형태가 눈에 띄질 않으니 귀신 곡할 노릇이다. 지금이야 구글 지도의 경로지정을 켜두면 길치도 개안하는 기적이 있다지만, 1992년 첫 배낭여행의 첫 도시 런던의 길거리는 나에겐 암호였다. 그래도 난 길치는 아니었다. 지도만 있으면 컴버배치의 셜록처럼 수많은 경유지를 엮어 목적지에 이르는 최적의 경로가 머릿속에 척 조합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템플처치가 널리 알려진 건 2003년 소설 <다빈치 코드>가 나오면서부터다. 이전에는 지도나 여행책자에도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여행 가기 전, 도서관의 책이란 책을 몽땅 뒤져 그게 템플지구란 곳에 있다는 정도는 알아냈다. 조그만 단서를 시작으로 여러 수단을 동원해 원하던 것을 얻어내는 것은 여행정보가 부족했던 당시엔 흔한 여행 방식이었다. 가장 유용한 수법은 현지에서 물어보는 것이다.
유스호스텔은 최적의 장소다. 대개 침대만 여러 개 놓인 도미토리에선 잠만 잘 수밖에 없어 저녁에는 공용 로비나 마당으로 다들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다른 배낭족들과 맥주를 한잔하거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정보를 얻어낸다. 그러다 목적지가 겹치거나 마음이 맞으면 즉석에서 동행이 생기기도 한다. 휴대폰이 모든 걸 대신하는 요즘엔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지만,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여행의 묘미는 아직도 달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그때 템플처치를 아는 배낭족이 없었다는 점이다. 미루고 미루다 런던을 떠나는 날, 모험삼아 찾아보기로 했다. 템플지구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다. 남쪽에서의 기점은 템즈강 근처의 템플역이고, 북쪽에서의 기점은 플리트 스트리트(Fleet Street)다. 난 북쪽을 택했다.
런던 여행자에게 플리트 스트리트는 정말 자주 만나는 곳이다. 시티 오브 런던에서 시작해 세인트폴 성당을 지나 피카딜리 광장과 웨스트민스터에 이르는 런던의 핵심 번화가를 동에서 서로 관통하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도로이지만, 나에게 여기는 또다른 이유로 흥미가 당겼다.
바로 팀버튼 감독의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잔혹한 연쇄살인마, 스위니 토드(Sweeny Todd)의 범행 장소인 까닭이다.
스위니 토드는 교도소에서 이발기술을 배우고 출소한 후, 이발소 손님을 상대로 살인을 저질렀고, 내연녀였던 로빗부인의 파이 가게를 통해 사체를 처리했다고 전한다. 인육이 들어간 파이라니! 너무 맛이 좋아 런던 맛집으로 유명해졌다는 엽기적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친다.
영화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아간 판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이 시작됐고,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왔지만 로빗부인의 질투로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나름 애틋한 서사를 보여준다. 18세기 말 비참했던 런던 노동자계급의 삶을 대변하는 비극적 인물로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적 허구다.
하지만 그의 이발소는 대담하게도 왕립재판소에서 180m 떨어진 곳에 실제 있었다. 그것도 던스턴 성당(St Dunstan-in-the-West) 옆 건물이었다. 그는 팔각형이 인상적인 성당의 지하 납골당에 사체를 은닉했고, 왕립재판소 동쪽 게이트 앞 벨야드(Bell Yard) 골목길에 있던 파이 가게까지 터널을 파서 재료(?)를 눈에 띄지 않게 공급했다. 암튼 영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발소 간판 중에 스위니 토드란 이름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으니 아직도 꽤 유명인사다.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처럼 이 거리의 중심엔 왕립재판소가 있다. 당연히 대로변에는 판사나 신흥 자산계급들을 위한 화려한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로변에서 조금만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난한 자들의 남루한 풍경이 이어진다. 근방에는 <The Old Bell>이나 <Ye Olde Mitre>와 같이 16세기 혹은 17세기부터 운영중인 유서깊은 펍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Ye Olde Cheshire Cheese>(‘아주 오래된 체셔 치즈’라는 뜻)에선 당시 계급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마치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정책)처럼, 좁은 술집은 층별로 이용할 수 있는 계급이 엄격하게 나눠져 있다!
왕립재판소 남쪽 맞은 편에는 영국만의 독특한 법학원(Inns of court)이 있다. 일종의 변호사 교육기관이다. 영국은 법정변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법학원 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원래 법학원은 법조인협회와 같은 길드조직에서 출발했는데, 이합집산을 거쳐 현재는 4개로 정리되었다. 그중 2개가 플리트 스트리트에 있다. 법원 근처에 변호사 사무실이 모여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2개의 법학원 이름이 이너템플(Inner Temple)과 미들템플(Middle Temple). 명칭에서 보듯, 법학원이 위치한 곳이 템플지구다.
원래 성벽으로 둘러싸인 템플기사단의 땅이었지만, 1307년 템플기사단 해체 후 땅을 인수한 구호기사단이 법학원에 임대를 했고, 구호기사단마저 불법화시키고 땅을 압수한 헨리 8세 이후 영국 왕실은 법학원에 아예 땅의 소유권을 넘겨준다. 템플지구는 완전히 개조되었지만, 템플처치는 두 법학원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내부 채플이 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바로 오늘 내가 찾아야 할 장소다.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에 그려진 대강의 건물 윤곽 중 원통형 같아 보이는 곳을 일단 1차 타겟으로 삼았다. 템플처치로 추정되는 건물은 템플지구 한가운데 중정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구 가장자리를 두른 건물들을 어떻게 뚫고 들어갈지가 관건이었다.
플리트 스트리트를 따라 지구 주변을 빙빙 돌아보지만, 아무래도 템플처치로 안내하는 번듯한 입구같은 건 없는 듯했다. 대신, 이상한 건축물이 눈에 꽂혔다.
박공지붕을 이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 통상 있어야 할 로비 대신 쇠창살로 된 출입문이 있고 그 너머로 골목길이 이어졌다. 미들템플 레인(Middle Temple Lane)이라는 싸인이 벽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걸로 봐선 공용도로 같기도 하지만, 차량통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으니 사유지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시간이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나중에 쫓겨나더라도 미련없이 일단 들어가보기로 했다.
차단기를 넘어 안으로 들어섰는데 사이렌이 울리거나 경비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뛰쳐나오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됐다. 번잡한 플리트 스트리트에 도열한 건물들 뒤로 몇 발짝 들어왔을 뿐인데 얼떨결에 숨겨진 비밀의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길 양옆으로 그늘져 우중충한 벽돌 건물이 도열해 있다. 그중 길에 바짝 면해 끝없이 이어진 왼쪽 건물 1층에 한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아치형 통로가 보인다. 미처 사라지지 않은 안개 희뿌연 골목길에 흡사 무단침입자를 퇴치하려고 뚫어놓은 트랩 같다. 다른 길이 안 보이니 여기가 중정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일 텐데, 왠지 음산한 게 꺼림칙하다.
하지만 통로를 후딱 지나치자 정말 놀랍도록 멋진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주인공이 꽉 막힌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오자 그동안 살고 있던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위치한 또다른 세계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관리가 잘 된 정갈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정원은 엄숙하면서도 밝은 기운이 넘쳤다. 때마침 드러난 파란 하늘과 투명한 햇살이 중정을 가득 채우자 꽃화단에 숨어있던 나비들도 일제히 부시럭거린다. 박하사탕 가루가 풀풀 흩날릴 것만 같은 상쾌한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주눅 든 마음이 일순간 녹아내렸다.
마음이 안정되자 건물 틈새로 빼꼼히 내민 계단이 그제야 보인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탑 위에 있는 건 무척이나 낯익은 조각이다. 말 한 마리에 두 명의 기사가 올라타고 있는, 청빈함과 전우애를 상징하는 템플기사단의 문장이다. 제대로 찾아왔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니 드디어 템플처치다. 원형과 사각형이 조우하는 모습이 예루살렘의 성묘교회와 판박이다. 1185년 헨리 2세가 봉헌한 이 오래된 성당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체가 기적이었다. 1666년 런던대화재로 런던 중심가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화염은 템플처치 바로 코앞에서 멈춰섰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는 나치 독일의 소이폭탄 공격에 처참히 부서졌지만, 다행히 완파를 면했다. 하지만 초기 성묘교회처럼 원형 부분의 고깔모양 지붕이 날라가면서 지금의 평지붕으로 복원되었다.
이른 아침,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템플처치는 온전히 내 독차지다. 손으로 건물 벽을 한동안 쓰다듬으며 템플처치가 겪었을 지난했던 세월을 음미했다. 그날은 그게 다였다.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못내 아쉬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3년 후 드디어 내부에 발을 디뎠다. 처음 템플처치와 만났을 때의 감동은 여전했지만, 이후 런던에 올 때마다 여러 이유로 그냥 지나쳐야 했다. 못다 한 숙제가 남아있는 마냥 찜찜하던 터에 2015년 9월, 다시 런던을 찾자마자 이번엔 작정하고 제일 먼저 달려갔다. 템플처치는 평일 낮 시간대 개방을 하지만 예고 없이 문을 닫거나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했는데, 마음이 통했을까? 마침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오픈 처치 행사 중이다. 입장료 무료에 템플기사단 관련 각종 전시까지, 그야말로 횡재였다. 그사이 스타덤에 오른 템플처치는 꽤나 북적였다.
지면보다 약간 낮은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원형의 로툰다가 나온다. 예루살렘의 성묘성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원형의 공간이 끌어당기는 강력한 집중력은 여기서도 돋보인다. 로툰다 안쪽에는 검은색 대리석 기둥 6개가 다시 원을 그린다. 겉보기엔 수직이지만, 특이하게도 바깥쪽으로 약간씩 기울었다.
기둥과 두꺼운 외벽 사이에는 어둡지만 돌출된 사람의 머리 조각상이 벽을 빙 둘러가며 설치되어 있다. 저마다 다른 두상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기괴하다. 그들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둥 안쪽은 높은 천장의 창에서 스며든 빛으로 채워진 일종의 ‘빛의 우물’이다.
어둠과 밝음의 극단적 대조로 세상의 중심을 표시한 원의 중앙에는 8기의 기사 무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기둥 바깥에 2기까지 포함해 총 10기가 있다) 당초 바닥에 묻혀있던 것을 1841년 교회를 정비하면서 발굴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바닥 위로 죽은 자의 모습을 새긴 대리석 조각만이 돌출되어 있어 더욱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각은 같은 듯 다르다. 베개를 베고 왼쪽에 방패를 둔 형식은 비슷한데, 누구는 칼을 쥐고 다른 이는 기도를 한다. 다리를 반듯이 펴고 잠든 기사 옆에는 다리를 겹쳐 불편한 자세로 누운 기사도 있다.
이 무덤 중 제일 위쪽에 영국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템플기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바로 윌리엄 마샬(William Marsha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