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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Jun 09. 2023

윌리엄 마샬, 누구보다도 위대했던 템플기사

48/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런던~에딘버러편-2)

   윌리엄 마샬은 중세 기사도의 표본이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2세기 중반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국왕을 섭정하는 최고 권력까지 올랐다. 너무 가난해 프랑스 노르망디로 보내져 방랑기사(쉽게 말하면 ‘용병’)로 길러진 그는 갓 스물을 넘긴 1168년 외삼촌을 따라 모종의 임무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바뀐다.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영지를 방문하려던 아키텐의 엘레노어를 호위하게 된 것이다.


   엘레노어가 누구던가? 지금의 보르도를 포함한 아키텐 공국의 상속녀로서 원래 프랑스 루이 7세의 부인이었으나 이혼당한 후 보란 듯이 영국의 헨리 2세와 재혼했던 세기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잉글랜드에 결혼지참금으로 들고 온 방대한 프랑스 땅은 프랑스 국왕의 것보다 더 넓었고, 이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 분쟁(백년전쟁)의 씨앗이 된다.


   당시에도 약이 오른 프랑스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결국 윌리엄은 프랑스군의 기 드 뤼지냥(키프로스 십자군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되는 그 인물 맞다. 키프로스편 <제19화> 참고)에게 딱 걸려 포로가 된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엘레노어가 그의 용맹함을 높이 사 돈을 대신 내주지 않았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헨리 2세에게 스카웃되더니, 왕세자의 호위 기사장이 된다. 이때 그는 유럽을 돌며 마상 창시합 토너먼트에 출전해 내노라하는 오 백여 명의 기사들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한다.      


   그런데 1183년 왕세자가 일찍 죽고 모함까지 받자 쫓기듯 십자군에 참전한다. 이때 템플기사가 된다. 이후 헨리 2세가 정치적 곤경에 처하자 귀국해 그의 충복으로 여러 전투에 참여한다.


   헨리 2세는 국민들에게 비교적 인기가 있었지만, 야심많은 아들들이 문제였다. 헨리 2세가 막내아들을 귀여워하자 셋째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막내아들조차 셋째 형에게 붙어버렸다. 이에 헨리 2세는 홧병으로 죽고 만다. 그렇게 왕에 오른 셋째 아들이 사자심왕 리처드 1세다. 그는 짧지 않은 10년간의 재위 기간을 십자군을 비롯해 전쟁터에서 보냈고, 결국 전사한다.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막내아들인 존 왕이 등극한다. 그는 아버지를 배신한 불효자이자 리처드 1세가 없는 동안 끊임없이 형의 뒤통수나 치던 국민 밉상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같은 정치력이나 형과 같은 용맹함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영국역사에서 존을 왕의 이름으로 쓰는 경우는 다시는 없다) 많은 귀족들이 그를 떠났다. 국민들도 등을 돌렸다.(노팅엄 인근 셔우드 숲의 로빈훗도 존 왕 시절에 활동하던 의적이다)


(사진7-12. 노팅엄 인근 셔우드 숲, 숲 안에 들어가면 로빈훗이 되어 활쏘기도 배울 수 있다  ©이경석)


   하지만 윌리엄 마샬은 그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친다.


   존 왕과 귀족들 사이를 중재해 역사적인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이끌어낸 것도 그였다. 당시 템플기사단의 그랜드마스터는 봉신들의 대표로 제일 상석에 앉았다고 한다. 그의 중재가 없었다면 존 왕은 아마 왕위를 유지하기도 버거웠을 터였다.


   존 왕은 그의 충성심에 보답이라도 하듯 유언으로 왕세자였던 아홉 살 헨리 3세의 섭정과 후견을 그에게 맡긴다. 이때 그는 이미 군대 총사령관이었고,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영지로 펨브로크 1대 백작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국에선 이때부터 군대 최고 지위(원수)를 마샬 백작(Earl Marshal)이라 부르는 전통이 생겨났다.  


   윌리엄은 살아생전에도 굵은 족적을 남겼지만, 사후에도 그의 가족사 자체가 곧 영국사가 된다. 윌리엄은 슬하에 열 명의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아들들은 모두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낳지 못해 금세 대가 끊기고 만다.


   대신 둘째 딸이 스코틀랜드로 시집 가 일가를 이룬다. 그녀의 외증손자가 바로 스코틀랜드의 국왕, 로버트 1세다. 로버트 1세는 로버트 브루스(Robert the Bruce)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잉글랜드 침략자를 몰아냈던 스코틀랜드 독립영웅이다.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을 그렸다. 물론, 주인공은 또다른 독립영웅 윌리엄 월래스(William Wallace)이다.


   영화에서 로버트 브루스는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나오는데 주인공인 월래스를 돋보이게 하려는 설정으로 보인다. 실제로 저항군을 조직한 월래스는 게릴라 전법으로 몇 차례 승리를 거두지만, 1305년 귀족들의 밀고로 잉글랜드에 붙잡혀 국가반역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사지를 잡아당겨 네 조각으로 찢어지기 직전에 거세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발라낸 후 머리와 팔다리를 토막내는 교수척장분지형을 받는다. (그가 처형당한 런던의 스미스필드 시장 앞 광장은 현재 성바르톨로뮤 병원이다. 세인트폴 성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병원 벽면엔 그의 기념비가 있는데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성지순례 스폿이다)


   마지막 순간, 영화처럼 ‘자유(Freedom)’을 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월래스의 장렬한 죽음으로 더욱 불타오른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끝까지 이끈 게 바로 로버트 브루스였다. 곧 잉글랜드와 맞붙은 결정적인 전투가 1314년 스코틀랜드 스털링 캐슬 인근의 배넉번(Bannockburn)에서 벌어진다. 의지 충만한 스코틀랜드가 대승을 거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진7-13. 병원 외벽에 붙은 윌리엄 월래스 처형장소 기념비문  ©이경석)

   

   에딘버러 북쪽, 삼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위치한 유서깊은 스털링 캐슬에 올라서면 입구에 칼을 차고 배넉번을 바라보는 로버트 브루스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주위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풍광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북동쪽 산 중턱에도 범상치 않은 탑이 우주선 발사대처럼 우뚝 솟아 있는데, 월래스 기념비다. 그가 1297년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스털링다리 전투에 나가기 앞서 진지를 구축했던 장소라 한다. 이 두 영웅 간에 놓인 대지가 700년 전 스코틀랜드의 가장 치열했던 역사의 무대이다. (그러나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전투신 촬영장소는 여기가 아니라 글랜코(Glencoe)라고 하는 유명한 곳이다. 장엄하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스코틀랜드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느낄 방법이 없다)                          


(사진7-14. 스털링 캐슬  ©이경석)
(사진7-15. 스털링 캐슬에서 바라본 배넉번 평야  ©이경석)
(사진7-16. 스털링 캐슬의 로버트 브루스 동상  ©이경석)
(사진7-17.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촬영지인 글랜코 협곡  ©이경석)


   항간에는 배넉번 전투에 템플기사들이 대거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런 전승이 이어지는 건 아마도 로버트 브루스가 템플기사였던 윌리엄 마샬의 자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윌리엄 마샬의 가족 계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버트 브루스의 외손자인 로버트 2세가 1371년 스코틀랜드에 스튜어트 왕조를 여는데, 200년 후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6세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 1세)까지 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윌리엄 마샬의 후손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왕 자리에 오른 것이다. 스튜어트 왕조가 끝났을 땐 독일에서 건너온 하노버 왕조가 그 뒤를 이어 현재까지 계속되지만, 하노버 가문 역시 스튜어트 가문과 외척관계이다.


   따라서 놀랍게도 엘리자베스 2세나 현재의 찰스 3세도 템플기사, 윌리엄 마샬의 혈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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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런던 지도와 이번 여행지, 구글 지도에서 발췌)
(영국 지도와 이번 여행지, 구글 지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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