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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Sep 20. 2023

비밀맛집18: 두 번째 비밀지도를 찾아 캐피톨로

77/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미국 워싱턴DC-13)

   순백색의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회의사당은 DC의 상징과도 같다. 1789년 미국 의회가 출범하고 1790년 DC가 새로운 수도 부지로 낙점되면서 조지 워싱턴이 제일 먼저 위치를 정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때 점찍은 장소가 포토맥 강 동쪽의 습지에 있던 작은 언덕이다. 주변이 평지라 더 높아보이는 언덕의 이름을 랑팡은 부지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젠킨스 힐’로 불렀다. 하지만 토마스 제퍼슨이 ‘캐피톨 힐’로 바꾼다.


   캐피톨의 기원은 고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중요한 캄피돌리오(영어로는 카피톨리노) 언덕이다. 최고 정치기구인 원로원과 제우스(주피터) 신전이 있어 로마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다. 기독교 공인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신성로마제국의 대관식을 위해 교황의 명을 받은 미켈란젤로가 새롭게 단장하여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제퍼슨은 이 명칭을 DC의 언덕에 붙였고, 언덕 위에 들어선 국회의사당도 ‘의회(Congress house)’가 아니라 ‘캐피톨(Capitol)’로 명명했다. 그의 바램대로 여기는 정치와 종교의 최고 전당으로 설계된다. 엥! 종교라니? 국회의사당이니 당연히 정치의 중심지는 맞는데, 종교가 생뚱맞게 여기서 왜 등장한단 말인가?  

        

(사진8-44. 캐피톨이라 불리는 미국 국회의사당 ©이경석)


   예약시간에 맞춰 지하에 있는 방문자센터로 바삐 갔다. 먼저 소지품과 엑스레이 검사를 하는데 검색대 직원이 어디서 왔냐고 다정하게 묻는다. 대답 끝에, 자기도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고 털어놓는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카투사였다며 주저리주저리 묻지도 않은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놨다. 마냥 딱딱한 공간에서 마주친 뜻밖의 친절함에 감사했고, 바쁜 와중에도 이방인을 환대하는 여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모두가 매뉴얼에 따른 것임을! 확인이 필요할 것같은 방문객을 골라 슬쩍 떠보는 절차란다. 주한미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대답에 대응할 매뉴얼 모범답안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하니 순진하게 농락당한 것같아 살짝 삐칠 뻔했다. 이렇듯 우리 일상에도 사실 너머 진실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음모론은 자라난다. (오죽했으면, <X파일>의 멀더도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고 사무실에 큼지막하게 붙여놨을까~)


   다행히 요주의 대상은 아니었나 보다. 캐피톨로 들어와 잠시 기다렸다가 인솔자를 따라 내부관람을 시작했다. 투어는 돔 아래 로툰다에서 시작한다. 캐피톨의 제일 중요한 공간이다.


   돔은 석조로 한 번, 그 위에 4천톤의 주철로 다시 한번 구성된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국회의사당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신예 건축가, 윌리엄 손튼이 최초 디자인한 돔은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 지붕 위로 수줍은 듯 봉긋 솟은 형태가 지금처럼 독보적 비주얼이 된 것은 점점 비대해진 몸체와 비례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1850년 상원과 하원 건물이 본관 양옆으로 증축된 탓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름 30m, 높이 55m의 돔 아래 공간은 근엄하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돔 아래 측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타고 흘러내리면서 하얀색 대리석은 무게감을 상실하고 부유하기 시작한다. 


   돔 내부는 미국의 역사를 기록한 타임캡슐이다. 우선, 8개의 커다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 <청교도들의 승선>, <세례받는 포카혼타스>, <미국독립선언> 등인데 교과서에서 많이 봐서 낯익다. 그림을 좇아가던 눈은 벽면의 아름다운 조각과 기둥을 따라 자연스레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 거기에 한 작품이 더 있었다. 


   돔의 안쪽면에 그려진 <워싱턴의 신격화>다!

      

(사진8-45. 국회의사당 돔 아래 8개 그림 중 '미국독립선언'와 조지 워싱턴 동상 ©이경석)
(사진8-45. 국회의사당 돔에 그려진 <워싱턴의 신격화> ©이경석)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조지 워싱턴이 하늘로 승천하여 신의 반열에 오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마치 제우스와 같은 자세로 위풍당당하게 앉은 워싱턴을 둥그렇게 둘러싼 건 13명의 뮤즈들이다. 워싱턴의 양옆에는 두 명의 여신이 앉아 나팔을 불며 그의 승천을 알린다. 이 소리를 들은 로마의 신들이 워싱턴의 발 아래 또 하나의 동심원을 따라 분주히 움직인다. 


   그들은 과학, 해양, 상업, 공업, 농업, 전쟁을 관장하는 여섯 명의 신들인데, 각각 관련 분야의 최첨단 기술과 함께 등장한다. 예를 들어 과학 분야에서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피뢰침을 발명한 벤자민 프랭클린, 전신을 발명한 모스, 증기선을 발명한 로버트 풀턴을 지도한다. 마치 워싱턴의 감독하에 신들이 전유하던 지식을 미국인들에게 전수하는 모양새다. 지금 봐도 선을 넘는 저 도발적인 제목과 메시지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인간을 신격화하다니......독재국가도 아닌,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캐피톨이 계획한 빅픽처의 일부다. 캐피톨에서 국회의 기능을 담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 돔 아래 공간이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조지 워싱턴을 위해 조직되었다. 그걸 명확히 보여주는 게 더 있다. 크립트로 불리는 돔 아래 1층 부분이다. 


   여기는 <워싱턴의 신격화>를 보았던 2층과 달리 어둡고 육중한 공기에 시간마저 멈춰선 듯 적막하다. 자연광 없이 오로지 조명빛 만을 의지한 40개의 도릭 기둥이 특별한 의식을 치르듯 원을 그리고 있다. 2개씩 쌍으로 32개의 기둥이 바깥쪽 원을 돌며 안쪽의 8개 기둥이 만든 원을 감싸는 모양새다. 안쪽 원의 중심은 크립트의 가장 내밀한 곳이며, 돔의 정중앙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여기가 워싱턴의 석관이 놓일 자리였다. 


   하지만 현재는 비어있다. 캐피톨의 정초식을 프리메이슨 의식으로 성대하게 치러주었던 그였지만, 준공 1년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유언에 따라 현재는 고향인 마운트버논에 묻혔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의 작은 도시에 관광소득이라도 올려주겠다는 워싱턴의 소박한 바램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무덤은 비었지만, 독립 당시 13개 주를 대표하는 인물 조각들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듯 응시하는 장면은 한 인간에 대한 존경을 넘어 종교적 신성함마저 느끼게 한다.         


(사진8-46. 돔 아래 지하 크립트 중앙의 조지 워싱턴 무덤 자리 ©이경석)


   이제 명확해졌다. 워싱턴이 신이 되어 승천하는 그림을 왜 그렸는지, 그리고 이 건축물은 왜 캐피톨로 불려야 했는지 말이다. 여기는 조지 워싱턴의 영묘이자 사당(shrine)이었던 것이다. 


   사실, 돔을 국회의사당에 사용한 것부터가 이상했다. 이스라엘에서 보았듯, 돔은 특별한 상징성 때문에 종교건축, 거기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에 사용되었다. 돔은 형태상 ‘하늘’을 상징했고, 중앙집중적인 구조상 ‘절대자’ 혹은 ‘절대적으로 기억할, 오직 하나뿐인 장소’를 의미했다. 그 장소란 예수의 무덤이었다. 성묘를 표시하던 원형의 공간이 돔의 형태로 성당 내부에 들어옴으로써 인류를 대신해 예수를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의를 재연하는 성당의 미사가 그렇게 예수의 무덤에서 계속 열릴 수 있게 된 거다. 


   이런 이유로 그 이전 어느 유럽 국가에서도 돔을 국회의사당에 사용한 전례가 없다. 이후에도 그렇게 많지 않다. 20세기 들어서나 독일, 헝가리, 세르비아와 저 멀리 쿠바와 아르헨티나 등 일부 식민지 국가의 국회의사당에서 돔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 돔은 이미 종교적 의미를 상실하고 디자인적 요소로 취급받았다. 그 최초의 모델이 미국 국회의사당인 건 분명해 보인다. 정작 미국 국회의사당의 돔도 국회 기능과는 별개인 종교적 목적을 갖고 탄생했지만 말이다.      




   여의도에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사당도 돔이 있다. 당시 설계공모 당선작에는 없던 돔이 들어간 것은 정치권의 요구때문이었다 한다. 국회라면 모름지기 미국처럼 돔이 있어야 한다나...... 국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 지 고민은 없고 오로지 규모와 모양에 집착해 만들어지다 보니, 전세계에서 가장 신기한 돔이 출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돔은 기둥과 어울리지 않는다. 돔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둥없는 대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돔을 주인공으로 하는 건축물은 외관에서 기둥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벽에 붙이거나 아예 숨겨버린다. 그런데 대놓고 건물 사방에 열주랑을 둘렀다. 이 건축물의 정체성이 기둥인지 돔인지, 주연배우 두 명이 서로 다투는 모양새다. 마치 파르테논 신전 한가운데 돔을 설치한 것 같은 어색함이다. 


   그런데 더 웃긴게, 열주랑의 기둥들은 그냥 장식이다. 지지할 게 없는데, 굵기로만 보면 이 지역만 지구의 중력이 왜곡되고 있는 게 확실하다. 돔 아래 공간도 가관이다. 그냥 로비다. 돔이 주는 압도적 공간감은 살아 있지만, 역할이 없다. 오죽했으면 돔이 열리고 태권V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받을까? 그렇게 텅 비워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본회의장은 옆에 따로 나앉아있으니, 거기서 자꾸 논점을 빗겨간 고구마같은 얘기들이 오가는 것도 그 때문인가 싶다.     




   다시 캐피톨의 돔에 그려진 그림을 찬찬히 올려다 본다. 그림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신격화’를 의미하는 ‘Apotheosis’는 ‘~로부터(from)’를 뜻하는 ‘apo’와 ‘신’을 의미하는 ‘Theos’가 조합된 단어다. 문자 그대로 인간이 천상으로 들어올려져 불멸의 존재인 신으로 변신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 단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신의 섭리를 자각한 인간이 신과 합일하는 경지가 되었다는 그노시스적 견해가 그것이다. 그들에게 신격화는 성서에 나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표현과 동일시된다. 


   보통 몸이 더러워지면 씻어야 하나, 물이 부족한 중동에선 향유를 발랐다. 오염된 물건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우리네 목욕재계처럼 부정을 떨쳐내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었다. 기름부음은 인간의 영적인 영역이 신성(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비유하는 메타포인 셈이다. 그런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인간의 몸으로 신성을 획득한, 다시 말해 인격이 신격으로 업그레이드됐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머리에 기름붓고 신의 특별한 사역자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인간들 간의 의식행위가 아니란 얘기다)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고, 그리스어로 옮기면 ‘그리스도’가 된다.     


   프리메이슨이 그노시스파로부터 밀접한 영향을 받은 게 맞다면 이 ‘신격화’ 그림은 조지 워싱턴이 새로운 세상의 메시아이자 예수와 같은 그리스도급 반열에 올랐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프레스코화를 그린 것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라는 화가다. 캐피톨의 미켈란젤로라 불릴 만큼, 55m 높이에서 무려 11개월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다. 미국으로 오기 전, 놀랍게도 3년 동안 교황청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갑자기 쫓겨났다. 다시는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영구 추방당한다. 


   그가 교황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둥 여러 소문도 있지만, 이탈리아 통일 영웅, 주세페 마치니의 휘하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알려져있다. 마치니는 왕정을 부정하고 교황과 대립하던 과격한 공화파였으니, 교황의 노여움을 짐작할 만하다. 마치니와 브루미디가 프리메이슨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돌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브루미디가 추방된 직후 미국 정부로부터 곧바로 고용되어 캐피톨에서만 25년 넘게 일하면서 단숨에 국민화가가 되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브루미디에 대한 소문을 가늠해볼 수 있는 건 역시 그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워싱턴의 신격화> 말고도 상원 건물 1층 복도에 장대한 벽화를 남겼다. 일명 ‘브루미디 회랑’이다. 


   볼트형 천장을 포함해 복도 전체를 굵은 선의 프레임을 두른 패널로 잘게 쪼갰다. 그리고 그 패널 안에 미국에 사는 수백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그려넣었다. 컬러풀하면서도 자연의 형태를 패턴화하는 방식이 꼭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를 연상시킨다. 일부 패널에는 풍경화나 유명 인물의 초상화도 눈에 띈다. 브루미디는 패널 일부를 빈칸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후대에 자랑스런 미국 역사를 채워넣으라는 배려였다. 실제로 1930년을 전후해 대서양 횡단비행에 최초로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비행기(‘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와 1975년 인류 최초 달착륙 등의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다. 


(사진8-47. 브루미디 회랑 ©https://flickr.com/photos/65191584@N07/8318482230)


   회랑의 그림 중에는 알린 콕스라는 프리메이슨 화가가 묘사한 국회의사당의 정초식 장면도 있다. 1793년 9월 18일 삼각 지지대를 가진 도르래를 이용해 주춧돌을 내려놓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그림 속 조지 워싱턴과 행사 관계자의 복장이 특이하다. 하얀색 사각형 앞치마를 허리춤에 둘렀다. 전통적인 프리메이슨 예복이다. 


   참석자들은 프리메이슨 의식에 따라 우리네 상량문처럼 건축을 하게 된 경위를 적은 은쟁반을 주춧돌 위에 올려놓고 옥수수와 포도주, 기름을 섞은 후 기도와 합창을 했다. 통상 주춧돌 밑에 빈 공간을 만드는 데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당시 건축물 설계도와 성경책을 비롯해 프리메이슨 관련 자료들을 넣었을 거라 추정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인 불가다. 아마 캐피톨이 건재하는 한 영구히 보존될 것이다.     


(사진8-48. 캐피톨 정초식 벽화 ©https://ourlostfounding.com/washington-d-c-capital-and-capitol-cornerstones)


   그림 속 워싱턴 옆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또다른 프리메이슨 단원의 앞치마에 새겨진 표식도 지나칠 수없다. ‘여덟 개의 포인트를 가진 계몽의 샛별’을 또 만난 까닭이다. 이슈타르 혹은 이시스를 나타내는 계몽의 샛별이 프리메이슨의 중요한 상징으로 쓰였다는 증거를 재확인한 셈이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이 샛별의 비호를 받으며 서 있는 워싱턴을 볼 수 있는 장소가 DC에 또 있다. 포토맥강 건너편, 국립 조지 워싱턴 메이슨기념관이다. 


   워싱턴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932년 헌납된 건물은 높이 333피트(101m)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파로스의 등대를 모티브로 세워졌다. 파로스의 등대가 세워진 곳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으니, 기념관이 동일한 이름의 또다른 알렉산드리아(버지니아주)에 있는 것도 재미있다. 


   파로스의 등대가 당시 지혜의 보고인 알렉산드리아의 입항을 안내해준 것처럼, DC의 남쪽 경계선 초입 부분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기념관의 등대는 대서양에서 포토맥강을 거슬러 올라온 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가까워졌음을 증언한다. 건축물의 중앙부에 높이 솟은 3단의 탑 위에는 역시나 13개의 단을 가진 피라미드가 있어 이곳이 프리메이슨 성지임을 알려준다. 


(사진8-49. 국립 조지 워싱턴 메이슨 기념관 ©Joe Ravi, Wikipedia에서 재발췌)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열주가 도열하고 벽에는 워싱턴의 업적을 그린 회화가 걸려있다. (실내 구조는 역시 이집트에 위치한 아부심벨 신전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 또 한 점의 국회의사당 정초식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브루미디 회랑’에서 봤던 알린 콕스의 작품이다. (보다 더 노골적으로 프리메이슨 의식을 묘사했다) 열주가 끝나는 지점에는 높이 5.2m에 무게가 7톤에 달하는 워싱턴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 반구형 천장에서 ‘계몽의 샛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샛별은 기념관의 모든 창살과 출입문 상단에 반복해서 쓰이고 있다.     


(사진8-50. 국립 조지 워싱턴 메이슨 기념관 내 ©https://www.atlasobscura.com)


   ‘브루미디 회랑’도 예외가 아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팔각형 무늬는 물론, ‘계몽의 샛별’과 이를 응용한 도상학이 차고 넘친다. 천장이 아치 형태의 배럴볼트인 복도가 계단실과 만나면서 형성된 교차볼트는 아예 그 자체가 ‘계몽의 샛별’이다. 굵고 또렷한 윤곽선 때문에 흡사 거대한 영국국기 ‘유니언 잭’이 천장을 뒤덮은 것처럼 보인다. 


   장엄하게 장식된 공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순식간에 고대의 어느 신성한 사원에 들어온 것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돔으로 된 조지 워싱턴의 영묘에 더해서 처음부터 캐피톨 전체가 그를 모시는 사제들까지 기거하는 거대한 신전으로 구상되었던 건 아닐까? 마치 그리스 도시국가 지도자들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던 것처럼, 현대판 피티아(국회의원)들이 신이 된 워싱턴의 말씀을 받들어 나라를 운영한다는 컨셉이 초기 미국인들에게 국회의 이상적 모습으로 구현된 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인 피티아가 신전 지하 깊숙한 밀실에 들어가 신탁을 듣듯, 브루미디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실은 회랑에서 연결된 신전의 성소처럼 꾸며졌다. 그리고 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주신, 워싱턴의 호령을 받고 내려온 수호신들이 그 성소의 출입구에 배치되었다. 예컨대, 국방위원회 앞에는 창과 13개의 줄이 선명한 방패를 들고 있는 전쟁의 신, 벨로나가 지키고 있다.        

 

(사진8-51. 브루미디 회랑 천장 ©www.tctcost.com/projects/capitol-senate-brumidi-corridor-fine-art-conservation)


   그렇다면 현대판 피티아들이 받들어야 했던 워싱턴의 신탁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돔 아래 <워싱턴의 신격화> 속 조지 워싱턴의 머리 위쪽에 브루미디가 선명하게 새겨놨다.      


   ‘E PLURIBUS UNUM’     


   번역하자면, ‘여럿에서, 하나(Out of many, one)’란 뜻의 라틴어다. 건국 초기부터 사용된 미국의 모토인데, 이는 종종 이민자 국가인 미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믿어졌다. 즉, 여러 이민자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만든다거나 13개 주가 뭉쳐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공교롭게 모토의 알파벳 수도 13개다)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국회와 어울리는 민주주의의 원리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다수결 원칙이나, 투표를 통한 대의민주주의같은 걸로 말이다. 그런데 이 모토는 엉뚱하게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해석 가능하다.      


   ‘'하나'가 모든 것에 존재하고, 모든 만물은 그 '하나'에서 나온다’     


   놀랍도록 유사하게 보이는 이 아포리즘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겼다. ‘우리는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화의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가 모든 만물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원리를 ‘로고스’라 처음 정의했다. 따라서 로고스 하에서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대립되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동양의 음양설마저 연상되는 논리는 기독교에도 스며들었다.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 대표적이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로고스는 곧 하느님이니라......만물이 로고스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우리말 성경에서는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한다. 이 로고스가 종종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인간을 영적인 잠에서 깨우는 신의 계시로 간주된다. 이런 해석들로 인해 요한복음이 그노시스주의 복음서라는 주장과 논란이 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돔에 걸려있는 워싱턴의 신탁이 연방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프리메이슨 그랜드마스터로서의 종교적 담론을 제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 모토는 1956년에 공식적으로는 ‘In God We Trust’로 바뀌지만, 지금도 사용된다. 문제의 1달러 뒷면에도 있다. 독수리가 그려진 인장 속 독수리가 물고 있는 배너에서 확인 가능하다. 


(사진8-52. 1달러 지폐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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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8-47: https://flickr.com/photos/65191584@N07/8318482230

사진8-48: https://ourlostfounding.com/washington-d-c-capital-and-capitol-cornerstones

사진8-49: By Joe Ravi,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997995

사진8-50: https://www.atlasobscura.com

사진8-51: https://www.tctcost.com/projects/capitol-senate-brumidi-corridor-fine-art-con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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