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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Sep 27. 2023

비밀맛집19: 워싱턴DC, 새로운 로마

78/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미국 워싱턴DC-14)

   캐피톨이 처음부터 거대한 신전으로 계획되었다면 이 도시는 더 큰 그림을 보여줄 게 확실하다. 여기는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그의 도시가 아니던가! 그의 무덤과 신전이라면 DC를 계획할 때 특별한 역할이 주어졌을 건 분명했다. 그렇게 캐피톨은 DC에 숨겨진 두 번째 비밀지도를 여는 열쇠가 된다.     


   투어를 마치고 캐피톨 서쪽으로 나오면 영화에서 많이 봤던 바로 그 광경이 펼쳐진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으니 시선은 3.5km 떨어진 링컨기념관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거기에 유일하게 눈길을 가로채는 건 신전과 동일 축선 상에서 바늘처럼 솟아있는 워싱턴 기념비다. 조지 워싱턴을 매개로 하나의 세트처럼 계획된, 돔을 가진 무덤과 신전, 그리고 그 앞의 오벨리스크라니......가만 있어 보자! 이 신박한 조합,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건 바로 너무나 유명해 누구나 아는 세계 가톨릭의 중심, 바티칸이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독립국, 바티칸의 중심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대성당의 정중앙, 베르니니가 만든 발다키노가 놓인 곳이 무덤 상부로 전한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서 그의 권위를 물려받은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일종의 ‘신의 옥좌’인 셈이다. 여기가 ‘천상의 중심’이라면, 여기서부터 신도들이 앉는 회중석을 가로지르는 축선은 대성당 앞마당 정중앙에 위치한 ‘지상의 중심’과 만난다. 바로 오벨리스크다. 이 모든 건 예수로부터 천상과 지상의 열쇠 2개를 받았다는 베드로를 예수의 적통으로 내세운 가톨릭이 땅에 새겨넣은 교리다. 다시 말해, 바티칸은 베드로의 무덤과 신전, 베드로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오벨리스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베드로의 도시다. (심지어 바티칸은 국기에도 열쇠 2개를 그려넣어 베드로의 나라임을 명백히 내세운다)     


(사진8-53. 성베드로 성당 정면 ©이경석)


   바티칸과 워싱턴 DC의 유사성이 도시계획적 측면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바티칸에서 볼 수 있는 상징체계 중에는 지금까지 여행하며 눈에 익은 것들이 꽤나 많다. 예를 들어, 대성당의 기본 평면은 팔각형의 별이다. 정사각형 바탕에 그릭십자가가 만드는 마름모가 겹쳐져 있다. 이슬람권의 ‘선지자의 인장(Rub el hizb)’ 문양과 똑같다. 가톨릭에서 잘 쓰지 않는 그릭 십자가를 쓰면서까지 이교도적 냄새를 풀풀 풍기며 중앙집중형 평면을 구성하려 했던 건축가는 브라만테다. 아마 성당의 기능보다는 배드로의 영묘를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아무리 그래도 가톨릭의 심장에 내리꽂은 대담한 시도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사제들의 불만에 설계는 계속 수정되었고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손을 거쳐 결국 현재의 라틴 십자가 형태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사이 엄청나게 불어난 공사비를 대느라 마구 찍어댄 면죄부의 결말이 종교개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진8-54. 좌: 브라만테의 배드로 대성당 최초평면, 우: 미켈란젤로의 초기 수정안)


   광장 한가운데 오벨리스크는 원래 대성당 자리에 있던 칼리굴라 황제의 전차 경기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네로 황제가 후에 확장한 경기장은 64년 로마의 대화재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기독교도에 대한 잔인한 학살을 즐기던 장소가 되었다. 자연스레 경기장 북쪽에 순교자들의 무덤이 형성되었고, 언제부턴가 여기에 베드로도 묻혔다고 알려진다.


   그 소문을 토대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경기장 일부를 허물고 목조 성당을 세운 게 대성당의 시작이었다. 아비뇽 유수를 거치며 황폐해진 대성당은 16세기 초부터 재건되기 시작했고, 1626년 완공되자 오벨리스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다. 칼리굴라의 경기장에서 베드로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했을 성물이라는 이유지만, 후대에 제멋대로 덧붙여진 이야기다. 왜냐면 가톨릭은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로 전혀 다른 곳을 지목하고 있어서다.      


   그곳은 전차 경기장에서도 한참 아래쪽, 테베레강을 따라 이어진 야누스 신의 성역인 자니콜로 언덕에 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나려다 예수의 환영을 보고 ‘도미네 쿠오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치며 다시 로마로 돌아온 베드로가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은 언덕 남쪽 언저리라 전한다. 길이 복잡한 데다가 관광지도 아니어서 맘먹고 가야 할 만큼 외진 동네다. 우연히 마주친 오토바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한참을 헤맬 뻔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가죽바지의 멋진 사내는 말없이 뒷자리를 가리켰고, 곧 그의 도움으로 날개를 단 나는 이카루스가 되어 미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리엔 최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시그니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역시 브라만테가 설계한 원형의 작은 사원이다. ‘템피에토’라 불리는데 군더더기 없는 비례와 조각같은 외관이 일품이다.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라는 성당의 좁은 중정 안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당당함은 늦은 오후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찬란하다. 특히 중후함과 날렵함을 동시에 넘나드는 매력은 이후 돔 양식의 프로토타입이 된다.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미국의 캐피톨의 돔이 모두 템피에토를 따를 정도였다.          


   바로 여기가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였다.


(사진8-55. 배드로 순교지에 세워졌다는 브라만테의 템피에토 ©Space Odissey - Flickr)

 


   그런데 ‘목격자’가 아니라면 오벨리스크를 무슨 목적으로 베드로 광장에 옮겨다 놨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광장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그걸 가져다 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집트 태양신의 성역,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벨리스크 말고도 베드로 광장에서 이교도적 상징은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하게 보려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대성당의 돔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300여 개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 꼭대기에 서면, 대성당 입구 쪽 파사드 지붕 위에 서 있는 열두 명의 사도 너머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광장이 한눈에 담긴다. 우선 형태가 타원형이다. 원과 달리 초점이 두 개인 타원은 중세시대 금기였다. 물론 베르니니 이전에도 사례가 있긴 하다. 아마 가장 선구적인 타원은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역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건물을 통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미켈란젤로는 광장 중앙에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을 두고 바닥에 패턴을 그려 넣으면서까지 타원이 원으로 보이게끔 착시를 유도했다.


(사진8-56.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Jensens)


   120여 년 후에 베르니니는 달랐다. 백지상태의 땅에 타원의 열주랑을 두르고 두 개의 분수대를 타원의 초점처럼 보이도록 했다. 타원임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것이다. 타원형 설계에 대한 교황의 반응이 어땠을까 싶지만, 무리없이 최종 낙점을 받은 듯하다. 타원형 광장의 모습이 배드로의 상징인 열쇠(혹은 열쇠구멍)를 닮았다는 주장이 먹혔을 테고, 이 시기엔 이미 공간을 늘리고 찌그러뜨리는 역동적인 ‘바로크’ 문화에 거부감도 덜했을 테니 말이다.


   타원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베르니니가 광장에 새긴 문양이다. 너무 커서 광장에선 오히려 볼 수 없고, 돔 위에 올라와야 선명하게 식별된다. 뜻밖에 ‘여덟 개의 포인트를 가진 별’, 바로 ‘계몽의 샛별’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된다. 역시 거대한 ‘유니언잭’처럼 보이는 이 상징이 왜 여기 있는 걸까? 댄브라운의 소설처럼 일루미나티 단원인 베르니니가 교황청을 감쪽같이 속인 걸까?              


(사진8-57. 계몽의 샛별이 새겨진 성배드로 성당 ©이경석)


   잘 알다시피, 베르니니는 로마에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품을 남겼다. 나는 이 중에서도 똑같은 문양을 몇 개 찾아냈다. 가령, 로마의 입구라 할 수 있는 포폴로 광장에 세워진 ‘포르타 델 포폴로(포폴로 문)’의 제일 상단 중앙에도 ‘계몽의 샛별’이 선명하다. 원래 있던 문에 이걸 덧붙인 것도 베르니니였다. 근데 자세히 보면 그냥 별만 있는 게 아니다. 별 아래 6개의 산이 피라미드 형태로 포개져 있다.


   사실, 이건 시에나에서 발흥해 로마의 유력 가문이 된 키지 가문의 문장이다.      


   포폴로 광장 바로 옆 포폴로 성당에는 키지 가문의 납골당도 자리하고 있다. 지하 납골당 위에 만들어진 소예배당은 라파엘로가 만들기 시작해 베르니니가 완성했는데, 대가들의 작품답게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바닥과 천장의 돔에도 모두 ‘계몽의 샛별’이 들어 있다. 그리고 두 개의 피라미드가 대칭으로 마주 본다. 천장의 돔에 있어 천상을 상징하는 별은 피라미드 위에서 반짝이니 마치 1달러 뒷면에 그려진 ‘호루스의 눈’과 비슷한 구도다. 반면에, 납골당을 덮은 바닥에 그려진 ‘이슈타르의 별’은 지옥을 나타낸다. 별의 중앙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키지 가문의 문장을 들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지옥의 구멍’으로도 불린다. 그림이 그려진 원형의 덮개를 열면 바로 납골당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지하에 묻혀 천상으로 올라가는 여정을 형상화한 채플인 셈이다.


   이 채플은 댄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 이후 부쩍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소설에서는 ‘지옥의 구멍’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하고 제단 옆에 베르니니가 조각한 <하박국과 천사>는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베르니니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이 모든 게 그가 남긴 음모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베르니니가 자신을 후원한 키지 가문을 위해 가문의 문장을 디자인의 컨셉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다.     


(사진8-58. 포폴로 광장과 키지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포폴로 문 ©이경석)
(사진8-59. 포폴로 성당 내부 키지가문의 납골당 ©이경석)

 

   그렇다면 역시 ‘계몽의 샛별’이 그려진 베드로 광장도 키지 가문이 베르니니에 의뢰한 작품일까? 맞다. 베르니니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전속 예술가처럼 고용한 교황 알렉산드르 7세가 키지 가문 출신이다. 교황 알렉산드르 7세는 금융재벌 가문의 후계자답게 로마 시내를 정비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아까 봤던 포폴로 광장과 포폴로 문도 그렇고, 코끼리 조각으로 유명한 미네르바 광장이나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 콜론나 광장과 몇몇 성당들에도 손을 댔다. 로마 시내 곳곳에서 ‘계몽의 샛별’을 볼 수 있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키지 가문은 ‘피라밋’과 ‘계몽의 샛별’과 같은 이교도적 상징을 왜 가문의 문장으로 차용했을까? 혹시 그들이야말로 템플기사단 혹은 일루미나티 같은 계몽주의나 그노시스파 단체와 연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로마 여행을 하며 계속 맴돌았던 생각 중의 하나였다.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서 눈에 띄는 건 또 있다. 배드로 광장에서 산탄젤로성과 테베레강까지 일직선으로 시원스레 쭉 뻗은 도로(‘화해의 길’)를 보고 있노라면, 성당에서 방사된 가톨릭의 영성이 한 줄기 빛처럼 인간들의 세속 공간으로 파고드는 기분이다. 건축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이 드라마틱한 감흥은 워싱턴 DC의 캐피톨 앞에 섰을 때에도 똑같이 폭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DC의 중심부는 바티칸과 데칼코마니처럼 너무나 비슷한 도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DC는 제2의 로마를 표방했다.


   포토맥강은 정착 초기에 테베레강으로 불렸다. 로마의 테베레강처럼 남북으로 흐르는 것도 유사했다. 포토맥강 연안 습지를 매립하면서 저지대의 물을 빼내기 위해 만든 운하의 명칭도 ‘테베레 운하(Tiber Creek)’였다. 1850년대 중반까지 운영되었던 운하는 포토맥강에서 캐피톨 앞까지 이어졌다. 당시의 유일한 흔적이 백악관과 워싱턴 기념비 사이에 남아있다. 바로 ‘운하관리인의 집(Lockkeeper’s House)’. 운하를 관리하고 수문 열쇠를 보관하던 곳인데, 원래 포토맥 강변에 있던 것을 이전해 와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중이다. 운하는 이후 수질이 악화되면서 골칫거리가 되었다가 복개되면서 내셔널 몰의 북쪽 간선도로인 ‘컨스티투션 애비뉴 노스웨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매립지 주변은 판테온, 캐피톨 등 고대 로마식의 기념비적 건축물들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영묘에서 오벨리스크를 거쳐 강에 이르는 일직선의 축은 DC가 로마를 베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시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로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마의 축은 정확히 동쪽을 향해 있는 반면, DC의 축은 정확히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뻗어있다. 배드로 영묘에서 오벨리스크에 이르는 길 양옆에 284개의 기둥 위에서 140명의 성인 조각이 신의 권능을 설파하고 있다면, DC는 워싱턴 영묘에서 오벨리스크 사이에 위치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인류가 이룩한 역사와 과학, 예술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비슷해 보이지만, DC는 로마가 가진 질서를 완벽하게 반대로 뒤집어놓은 셈이다.


   요샛말로 일종의 ‘미러링’이다.


   그런데 이게 우연처럼 보이진 않는다. DC를 설계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만들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미국 국장에도 새겨넣었다. 역시 문제의 1달러 뒷면에 피라밋이 그려진 국장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라틴어 문구를 적어놨다.     


   ‘NOVUS ORDO SECLORUM’     


   번역하자면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다. 신세계가 있다면 그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구세계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미국 독립 이전의 세계였고, 그 중심은 바로 로마였던 셈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많은 국가들이 명멸했지만, 천오백 년 동안 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로마가 베드로를 앞세워 틀을 갖춘 종교였다. 하지만 신세계는 달랐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 대신 조지 워싱턴을 택했고, 절대신을 올려다보기보단 인간의 능력과 가치에 주목했다. 이성과 과학, 민주주의는 그렇게 미국이라는 인류사에 없던 새로운 국가를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신세계 질서’ 중 ‘질서’로 번역되곤 하는 라틴어 ‘ORDO’에 예전부터 신경이 쓰였었다. 왜냐하면 영어로 ‘Order’의 어원이 되는 이 단어는 생각보다 심오한 개념과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가톨릭에서는 유일신이 혼돈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며 부여한 질서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인간은 만물에 내재된 하나님의 질서를 발견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봤다. 그 의무를 쫓아 일부가 금욕과 고행을 하며 엄격한 규율을 세우고 규칙적인 기도와 노동의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바로 ‘수도회’의 시작이다. ‘ORDO’(혹은 ‘Order’)의 또다른 번역이기도 하다. 가령,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율을 따르는 수도회를 ‘프란치스코 수도회(Ordo Fratrum Minorum, Franciscan Order)’로 부른다. 그러던 것이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무장을 한 ‘군사 수도회’ 개념이 더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템플기사단이다. 그들은 성직자가 아닌 기사들로 구성된 무사집단이었지만, 성지 보호라는 특수임무를 띤 수도회로 인정받았다. 그들이 정식 명칭과는 별개로 Order of Solomon’s Temple(Ordre du Temple)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후에는 오히려 ‘ORDO’(혹은 ‘Order’)가 기사단이라는 뜻으로 널리 통용된다.     


   그렇다면 ‘New World Order’는 ‘신세계 질서’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신세계 기사단’이라는 이중적 의미도 갖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의 기사단이라니, 진짜 존재한다면 그게 누구란 말인가? 힌트는 당연히 이 문구가 그려진 국장에 있을 터다. ‘호루스의 눈’을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표식으로 사용하는 단체라면 단연 프리메이슨이다.         


   조금 더 명확해졌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미국의 건국에 참여한 프리메이슨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구현할 새로운 세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원했고, 개인자격이 아니라 프리메이슨의 이름으로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기사단으로 칭했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은 이제 막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에 불과했을 뿐이다. 템플기사단이 무슬림으로부터 탈환한 예루살렘을 수호했듯, ‘신세계 기사단’은 새로운 세상이 그 모습을 갖추고 지속하도록 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그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기사단의 기사들을 끊임없이 길러내야 했을 거란 의미다.


   그 중요한 임무는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기사단을 양성하는 곳이라면 아마 거기에 템플기사단에서부터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져 온 최고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곳이 두 번째 보물지도가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일 테고......!


(79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8-55: By Space Odissey - Flickr,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47601

사진8-56: By Jensens - Own work,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6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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