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과 나의 사막을 읽고』을 읽고
“시리야, 사랑이 뭐야?”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괜히 인공지능에게 터무니없는 것을 물어본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입니다.”
인공지능은 터무니없지만 낭만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솔직히 낭만보다는 학습된 직시 전달에 가까운 텍스트 읽기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고작 인공지능의 말 한마디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형체 없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청소기, 무인 로봇에게도 기대려고 하고 마음을 주는 인간에게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로봇을 발견한다면 어떨까?
‘랑’이 ‘고고’에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다 헤아리긴 힘들지만 그가 고고를 만나 행복했고 고고와 마지막까지 함께 해 외롭지 않다는 건 알 수 있다. 고고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나 하고 싶은 말도 있었으리라.
랑을 잃어버린 고고를 생각한다. 랑의 심장이 멎었을 때 고고의 얼굴엔 표정이 없지만 이 로봇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퍼하고 있다. 울지 못하는 로봇은 계속해서 랑과의 추억을 영상으로 되감으며 곱씹는다. 이제 어디에도 없는 랑과 고고를 부르던 랑의 목소리를, 고고 등에 업혀 자신을 내맡기던 랑의 천진난만함과 더 이상 고고 등에 업히지 않겠다고 선언한 랑의 다짐 같은 것들을.
고고의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나는 하늘을 원망했고 아파트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큰 소리로 울었다. 그렇게 뱉어 냈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자주 울었고 엄마 생각을 수시로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일부러 엄마 생각을 멈추기도 했다. 고고가 울음을 터트릴 줄 알았다면 덜 무거워졌을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토해내지 못한 슬픔도 입 밖으로 나와 흩어진 슬픔도 모두 나를 무겁게 만든다. 내려가도, 한참을 내려가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가벼워지지 못한 나는 고고의 슬픔에 가까이 다가간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불분명해진다. 구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나는 언제든 랑이 될 수도 고고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지카나 알아이아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목표나 애정, 또는 그리움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존재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 주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고고는 지카를 따라가지 않고 알아이아이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목적, 자신을 깨워준 단 한 사람을 향해서 걸어갈 뿐이다. 인간이 설정한 목적이 아닌 스스로 만든 목적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보다 고고가 더 나아 보인다. 나는 한동안 엄마 생각을 뒤로 미뤘다.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힘드니까.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고 자책하게 되니까.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다가와 나를 무너뜨리게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아서 피했다. 그러면서 왜 내 꿈엔 나타나지 않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의연하지 못했다. 엄마와 연결된 끈이 끊어진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한참을 피하고 다시 마주 섰을 때, 뜻하지 않게 내 머릿속에 찾아와 나를 쥐고 흔들 때 나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이번 생에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없고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아주는 일은 내가 다시 태어나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고고의 무모함과 굳은 결심이나 의지 같은 것이 부러웠다. 랑을 만나러 가겠다는 고고의 여정이 나와는 달랐다. 나는 절대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돌아간다 한들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더 행복한 십 대를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딱히 생기지 않는다. 그때의 난 너무 힘들고 엉망이라 지금의 나를 더 아껴주고 싶다.
고고는 랑을 찾아 떠났고 나는 여기에 남아 엄마를 그리기로 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말해줄 수 있는 인간도 로봇도 없다. 나와 고고의 선택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으니까. 여러 갈래의 길들이 펼쳐진 지도 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 선택을 하지도 않아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여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 (2022, 현대문학) 중 128p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