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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아 Nov 12. 2023

2012년 11월의 공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어느덧 가을을 지나 수능의 계절이 찾아왔다. 귀신같이 날씨가 추워져 잠자고 있던 패딩을 꺼냈다. 꼭 수능이 가까워지면 선선했던 바람이 매섭게 바뀐다. 달력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수능 볼 때가 생각이 난다. 나는 수능을 볼 때 엄청나게 긴장되거나 떨리는 건 없었다. 다만 제때 일어날 수 있는지, 도시락은 잘 챙겨갈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오빠는 출타, 아빠는 새벽 출근에 엄마는 돌아가셔서 일찍 일어나 수능 도시락을 싸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다른 집은 엄마가 같이 수능장도 가주고 응원도 해주고 맛있는 도시락도 챙겨준다는데 이제 내게 수능 날 도시락을 싸주고 응원하러 같이 학교까지 가주는 엄마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알람을 몇 개씩 맞춰도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세상 속 미아가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온다고 하더라도,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오더라도 엄마의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없는 채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이 공백은 영원히 공백이겠구나. 설사 다른 가족이 생겨도 변하지 않고 구멍이 난 채로 뚫려 있겠구나.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요리하기 간편하고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는 계란볶음밥을 만들었다. 그 외에 더 할 수 있는 요리가 없기도 했고 챙길 정신도 없어서 2012년 수능 도시락은 그것이 전부였다. 2012년 수능 날의 푸르스름한 아침을 기억한다.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를,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먹을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보인다. 저 주방에서 외롭게 서 있던 아이를 기억하고 있어. 대화 나눌 사람 한 명도 없는 집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

 도저히 이 감정을 말할 수 없어서,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열여덟 살의 나를 서른 하나의 내가 바라보고 있다.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서 있다. 이해나 공감을 바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11월의 공기는 열여덟의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집에 내가 있는데도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바닥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모른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요리하는데도 온기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냉기 가득한 공기만 들이마시면서 하루를 준비했다. 그때 기분은 평생 못 잊을 거야. 발바닥부터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나는 참 작고 외롭고 쓸쓸했구나.

 지긋지긋한 레이스의 끝을 보기 위해 모두 입을 꾹 다문 교실에서 1교시와 2교시를 치렀고 꼬깃꼬깃 싸 온 계란볶음밥을 먹으며 다음 시험을 준비한 기억이 난다. 후에 나온 수능 결과는 모의고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예비 번호를 받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첫 수능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니 수험생과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나를 응원하고 나를 기다리고 내가 잘 되기를 빌어주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언제나 말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서, 지금 내 주위에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매일 깨달으면서 살고 있다. 작고 외롭고 쓸쓸한 내가 저기에 있다가 햇볕 드는 양지로 올라온 것도 주위 사람들 덕분이란 걸 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당신들이 있어 내가 이렇게 잘 버텼고 잘 살고 있다고.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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