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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나쌤 Mar 28. 2023

무남독녀 외동딸은 왜 지붕 위로 올라갔나?

기억 조각 맞추기


여름이라 연일 비가 왔다. 어느 날 집 천정에서부터 벽을 타고 빗줄기가 벽지 위로 흘러내렸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맑은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을 더 좋아했던 나지만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나는 늘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전문 보일러공을 불러야 하고, 지붕에서 물이 새면 지붕 설비하는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한다고...



하지만 아빠는 내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잘 알지도 못하는 걸 능력껏 고쳐보겠다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부엌을 온통 물 바다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사고는 아빠가 쳐놓고 뒤처리는 늘 나나 엄마의 몫이었다. 근본적으로 성질이 급한 아빠는 엄마와 나에게 미안하단 말도 한마디 없었다. 그저 자기 뜻대로 일판이 돌아가지 않는 데에 몹시 화를 낼 뿐이었다.



지붕에서 물이 새고, 빗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릴 때도 나는 몹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왜 우리 집은 지붕에서 물이 샐까?라는 슬픈 생각보다 아빠가 이번엔 또 무슨 해괴한 행동을 할지 미리부터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여름이라 연일 비 오는 날이 이어지자 아빠는 빗물이 새는 벽의 위치와 지붕의 위치를 대강 짐작한 듯했다. 어느 날 아빠는 마치 어린아이들 물총처럼 생긴 장비를 어디선가 구해왔다. 지붕 위로 직접 올라가서 물이 새는 곳에 실리콘을 쏘면 물이 새지 않을 거라고 아빠는 확신하듯 말했다.



지붕 위를 겅중겅중 걸어 다니는 아빠를 마당에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괜스레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게 뻔했다. 슬라브 지붕이 성인 남자의 무게를 견딜 만큼 견고하고 튼튼했었나? 지붕이 폭삭 무너져 내려서 아빠가 순식간에 지붕에서 사라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라면 지붕을 전문으로 고치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다. 아빠의 행동 패턴으로 보면 아빠의 이런 수고는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엄청난 수고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 반복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이런저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몹시 뿌듯해하는 것이었다. 뭔가 대단한 기술자라도 되는 듯 뻐기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뚝딱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돈 주고 사람을 부를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했다. 아빠는 모든 일에 전문가인가 보다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잠시 생각도 했지만 아빠의 넘치는 자신감은 아빠를 스스로 전문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며칠 후 또다시 비가 왔고, 어김없이 예전 그 자리에서 빗물이 흘러내렸다. 아빠가 지붕 위를 마치 묘기 부리듯 걸어 다니며 했던 작업은 도대체 어떤 효과를 가져온 건지 궁금했다. 아빠는 분노했고, 애먼 실리콘에 대고 욕을 했다.



나는 지붕 업자를 부르자고 다시 한번 아빠에게 청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빠는 고집불통이었고 이 정도 일로 돈을 주고 업자를 부르는 건 쓸데없는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문뜩 어쩌면 아빠보다는 내가 좀 더 이쪽 분야에 전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성정이 불같은 아빠보다는 내가 침착하게 일 처리를 더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지붕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아빠를 걱정해서 한 선행이 아니었다. 순전히 아빠가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붕 위는 경사진 면 때문에 중심 잡기가 어려웠고 아빠의 말에 의하면 자칫 잘못 밟으면 지붕이 깨질 수 있으니 기둥 부분 튼튼한 부분을 찾아서 발을 잘 딛어야 한다고 했다.

'지붕이 깨질 수도 있는데 무남독녀 외동딸을 지붕 위로 올려 보냈다고?' 입술이 꽉 깨물어졌지만 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지붕 위에 올라가는 건 크게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것보다 내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건 지붕 아래서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버둥대는(?) 딸을 보며 자기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온갖 짜증과 화를 쏟아내는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빠는 성격이 급했다. 차분히 일의 과정을 설명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뜻대로 일이 안 풀리면 혼자서 욕을 했다가 화를 냈다를 반복했다.



그런 아빠때문에 나는 지붕 위에서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꼈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사람의 기억이란 때론 왜곡되고, 다른 기억과 중복되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재생해 내기도 한다. 인간의 기억은 영구적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삭제되고,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어릴 때의 기억이나 인상 깊은 사건을 한 장의 사진이나 영상 또는 특정인의 음성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그것은 좋았던 기억일 수도 있고 영원히 잊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다.



나의 어릴 때 이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내면서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회색빛 가득한 우울한 글을 썼었다. 어쩌면 어릴 적 그 당시에 지붕 위의 아빠를 올려다보며 했던 나쁜 생각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빠가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기보다는 어쩌면 그러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 올리면 죄책감에 몸이 떨린다.



지붕 위에 올라간 아빠, 그리고 아빠 대신 지붕 위로 올라간 나... 그때 나는 마당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빠의 모습과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으며 이대로 몸의 힘을 빼고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묵혀두고 더 이상 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써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이 된 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글을 써 보기로... 그리고 이 글을 이렇게나마 완성했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미완의 상태로 두기로 한다.



어린 시절 언젠가 나는 불행을 불행으로 덮어버리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 잘못된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내가 40년의 시간을 잘 버티고 잘 견뎌내었다. 그런 나를 칭찬한다. 잘했고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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