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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로 Jul 12. 2023

5학년에 받은 선물

앞으로 글을 일, 취미, 운동, 관계로 정리하여 쓰자

요즘 방황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고 있다. 퇴직 후 주변에서는 고생했으니 한동안 편하게 쉬라고 하는데, 뭔가 열심히 해야만 마음이 편하고, 바쁜 스케줄을 마련하고 나서야 가슴 뿌듯하다. 그렇지 못한 날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티브이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린다. 괜스레 창문을 열어보며 마주하는 후덥지근한 공기에 짜증을 부려본다. 5학년 말에 갑작스레 만난 퇴직으로 아직 젊기에 서둘러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과 6학년 정년 전에는 직장 구하는 게 좀 낫다는 생각에 한 해 정도 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맘이 왔다 갔다 한다. 일단 쉬어보자며 가진 자유로운 시간에 글을 써보겠다고 열심히 덤벼서 공동 출판도 하고, 브런치 스토리 작가도 합격했다. 여기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의 관성으로 추진력 있게 일사천리로 이뤄냈다. 그런데 차근히 일상을 적다가 갑자기 '아직 미숙한 마음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게 뭔 의미가 있는가? 누가 내 삶에 관심을 두겠는가? 등등.... 러시아워에 줄지어 가고 있는 차들처럼 이러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이러한 방황으로 타이핑하던 내 손은 마비 온 듯이 멈춰버렸다.


벌써 한 달 이상 시간이 흘러 답답한 마음에 작가 선생님께 문의했더니 큰 제목을 두고 자잘한 제목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름 브런치북 구성을 기획하면서 조금 마음을 다스렸다. 자잘한 얘기마다 담아내는 메시지에 신경 쓰기보다는 전체 글이 추구하는 목표에 관점을 두면 글도 다채롭고, 글을 읽는 분들이 큰 파도에 실려 가는 듯 맥을 파악하는 느낌이 좋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막상 다시 펜을 잡기를 망설이며 며칠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문득 지인과 얘기 나눴던 마라톤 생각이 나서 비몽사몽간에 주섬주섬 챙겨 입고 뛰기 시작했다. 곧 밀려드는 여기저기 근육 통증과 가빠지는 숨소리에 달리기를 멈출까 말까를 반복하는데 글을 멈출 게 아니라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소제목에서 얘기했듯이 그리고 작가님께서 일러줬듯이 퇴직 이후 새롭게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좋은 기회인지... 보다 긍정 마인드로 전체 흐름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고통보다는 이렇게 아침을 달리기로 시작할 수 있는 축복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뛸 수 있을지 나아가는 모습을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여태껏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가 크레이 사격에 명중된 접시 파편처럼 부서져 나갔다. 작지만 나의 한 세상을 요목조목 나누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상으로 스토리를 채워봐야겠다.


잠깐의 방황으로 미숙한 마음이 조금 성숙 쪽으로 나아가는 걸 느껴서 좋았다. 고민의 시간이 길지 않아서 처절함이 부족해 곧 다시 고민에 빠져들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것저것 해보는 시간이 5학년에 받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그간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일과 자유로운 시간에 만끽하는 취미. 그리고 이제는 챙겨봐야 할 건강을 위한 운동, 여태 잊거나 뒷전에 팽개쳐 놓았던 가족관계와 친구 그리고 선후배 관계를 가꿔나가는 네가지 범주로 나누어 글을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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