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가 내 결혼을 결정했다

수도권 자가에 비영리단체 다니는 김 팀장 이야기

by 마감인간

겉으로 보면 ‘자발적 결혼’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는 장수 연애 커플이었지만, 누구 하나 먼저 “결혼하자”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연애 중인 상태에 관해 특별한 불만이 없어 보였고, 나는 모호한 ‘비혼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30대 캥거루족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한 적은 없지만, 부모 집에 얹혀살았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탓에 ‘캥거루족’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니 월세도, 교통비도, 밥값도 아끼는 거잖아. 이게 어디야?” 우리의 삶은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안온한 연애가 길어질수록, 말하지 않았을 뿐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감각이 마음 한구석에 떠올랐다.

그 무렵 황정은 작가가 『파씨의 입문』 작가의 말에서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다”라고 적은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그 문장에서 말하는 ‘터프함’이란 무엇일까. 넘어져도 일어나는 사람, 야생에서도 버티는 사람,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사람. 한평생 ‘캥거루’로 지내온 나는 그 말을 곧장 ‘터프함 = 독립’으로 받아들였다.


임대아파트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해당 자치구에 오래 거주한 자에게 우선 공급한다는 SH의 행복주택 모집공고가 뜰 때마다 살폈다. 해볼 만한 전형은 ‘예비 신혼부부’. 어느 날 남자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거 한번 해볼까?” 그는 별 고민 없이 “해봐~”라고 답했다. 그리고 처음 넣은 행복주택 청약에 덜컥 당첨됐다. “우리 됐대. 임대아파트.” 내 말을 들은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럼… 우리 결혼해야겠네?”


청약 당첨자가 발표된 그날, 양가에 결혼 소식을 알렸다.

집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돌이켜보면 내가 ‘비혼주의’를 고수했던 건 세계관이나 신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경제적 현실이 결혼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학부와 대학원 등록금, 생활비 대출을 갚고 나니 이미 30대 초반이었다. 인턴 시절 월급은 세전 180만 원. 기자로 4년 간 일하는 동안에도 200만 원 초중반 언저리를 맴돌았다. 비영리단체로 옮긴 뒤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봉 인상은 거의 없었다. 기본급은 낮고, 수당으로 보전됐다. 호봉은 매년 5만 원으로 고정이었다.


캥거루족으로 지내며 학자금 대출을 갚고, 집에 생활비 30만 원을 보태고, 개인 생활비를 쓰고 나면 통장에 남는 건 몇십만 원뿐이었다. 길을 찾으면 길이 보인다는데 노력이 부족했나. 주택마련대출, 전세자금대출로 ‘결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학자금 대출 빚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빚더미에 앉고 싶지 않았다. 전액 대출 상환한 날 은행원이 내게 “펀드 수익률 괜찮아요”라고 권유했지만, 원금 손실이 무서워 손사래를 쳤다. 그때 나의 믿음은 “빚 없는 게 부자”였다.


간혹 우리는 과거를 이렇게 떠올린다. 행복주택의 모집 요건인 소득 수준 상한선에 한참 못 미치는 당시 월급이 다행(?)이었다고. 임대 당첨이 아니었다면 결혼을 꿈꾸긴 어려웠을 거라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 기혼인 활동가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있다. “내가 결혼할 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빌라를 사서...이제 글렀지.” 그땐 웃어넘겼는데 살아보니 아파트가 좋았다.


임대 아파트는 내 인생의 첫 아파트였다. 평수는 작아도 둘이 살기에 충분했다. 신축이라서 깨끗했다. 서울 외곽이지만, 출퇴근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퇴근하고 버스에서 내리면 보이는 동네 풍경이 고즈넉했다. 아파트 옆 작은 공원에서 가족 단위로 셔틀콕을 주고받거나 개와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내 인생도 그럭저럭 여유로운 것 같았다. 과거 동료의 말은 ‘아파트=자산’이라는 뜻이었을테지만, 자가, 주식투자, 퇴직연금, 연금저축, 세제 혜택, 자산을 굴리는 일들, 그 모든 건 나와는 먼 세계의 언어였다.

그 누구도 캥거루족이 되라고 한 적이 없없던 것처럼, 돈을 많이 벌지 말라고 가로막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돈과 자산을 뒷전으로 미뤄두었을까. 왜 이렇게 돈을 무서워했을까. 그 모든 망설임의 바탕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크기와 내가 바라는 삶의 크기 사이의 간극이 있었다. 이 간극은 비영리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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