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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Jan 24. 2024

내 머리속의 악마

그날 밤 에고의 귓속말

"뭐랄까. 처음 봤을 때 당신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거 같았어요. 제가 사실... 사실 꽤 오래 기다렸어요. 꿈 속에서 기다린 시간까지 하면 정말 오래요. 당신이 나타나서 회색빛 같았던 제 일상이 수채화보다 더 알록달록한 빛깔을 가지게 되었어요. 당신은 참 아름다워요. 반짝거리는 당신의 두 눈과 마주치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요. 검고, 단단하고, 반짝임을 담은 두 눈. 맑은 시냇가에 물기를 입은 예쁜 조약돌 같아요. 아! 당신은 조용하고 차분해요. 함께 있을 땐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지죠. 좋은 단어들만 고르고 골라 신중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번잡하고 정신 없는 현실에서 큰 위로가 돼요. 더 자주, 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도 신중해요. 깔끔한 음식, 되도록 다른 존재를 착취하지 않은 음식을 고르려고 하죠.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욕망보단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당신과 함께 하는 식사가 늘어날수록 내 몸과 마음도 분명 건강해질거예요. 아, 역시 당신은 다른 세계에, 아픈 타인들에게도 관심이 많아요. 이런 세심함과 배려심은 어디서 나온 멋진 모습인지. 자기 삶의 문제에 허덕이느라 외면하기 쉬운 어두운 세상 소식에도 당신은 귀를 기울이죠. 세상의 낮은 곳에 꾸준히 관심을 보내는 당신 덕에 이 세상은 더 살만한 곳으로 변할거예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을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들어져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내가 고대하던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오래 기다린 건 아니였어요. 당신은 왜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거죠?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 게 재밌나요? 나를 부담스럽게 하지 마요. 난 당신의 눈빛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왜 우린 말도 없이 마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죠? 당신은 이러고 있는 걸 왜 좋아해요? 이게 재밌어요? 난 민망해 죽겠어요. 우리가 지금 서로를 쳐다만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요? 아, 요즘 삶의 재미를 잃고 있어요. 당신이 먹는 거에 너무 유난이라서 나조차 재미가 없어요. 주변 사람 피곤하게 하는 예민한 채식주의자군요. 그냥 좀 맛있게 먹어요. 생각이 깊고 깊어 늘 진지하고 진중한 당신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요. 남들처럼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요. 모두가 가진 욕망을 그냥 가져요. 그게 편해요. 당신의 이상향은 저 우주 끝에 있어요. 사회는 원래 정글이에요.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요. 좋은 세상? 좋은 관계? 약자들에게 관심? 그런 거 다 내려 놓고 그냥 좀 가벼워지면 안 돼요? 아. 이래서 예쁜 사람은 피곤해요. 착한 사람은 재미 없어요. 별난 사람은 부담스러워요. 당신은 그냥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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