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생활 1년, 존엄하고 숭고한 삶

지난 겨울 회고글

by 리무


지난 2월, 나의 새벽을 자주 열었던 KTX행신역

"포항으로 가는 KTX 산천을 탑승하실 고객님께서는 플랫폼 1번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지방 출장을 갈 때는 물건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들어야 한다. 회의 준비물까지 들어야하니 팔이 겨우 두 개라는 사실이 애석하기만 하다. 노트북 가방은 어쩔수 없이 옆으로 메고 움직였다. 편의점에서 산 물과 간식은 회의 준비물이 든 쇼핑백에 집어 넣었다. 분명 작년 2월에는 겨울눈들이 고개를 내밀었는데, 올 2월의 기차역 플랫폼은 겨울눈마저 잊을 정도로 여전히 춥고 바람은 매서웠다.


기차에서 좌석을 찾아 앉은 후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 해가 뜨진 않았지만 날은 꽤 밝아있었다. 오송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나만의 시간이다.


작년 11월 모든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종료되자마자 우리 팀은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쉴 틈이 없었다. 2월에 있을 중요한 사업평가를 위해 12월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초과근무는 당연했고 출장도 잦았다. 작년부터 나와 맞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 연구원 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했다. 괴로움이 올라올 때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거지? 지난 직장에서의 퇴사인가? 문과를 선택해서 그런가? 인간의 삶은 그저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가? 답이 없는 물음에 시달릴때쯤 지난 1월이 떠올랐다.


야근과 휴일근무가 일상인 올 1월에는 휴식시간을 필사적 사수하려 애썼다. 나는 일 외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측불허. 나의 안정을 방해하는 건 회사일이 아니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남동생의 결혼 소식에 부모님은 나를 달달 볶았다. 상견례를 하러 주말 시간을 쪼개어 지방에 내려갔고, 집으로 계속 오라는 연락에 시달렸고, 곧 신혼집에 입주해야하니 혼수가 당장 필요하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식 당일에는 축의금을 얼마 할거냐고 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더 해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괴로웠던 1월을 떠올리다가 열차 안에서 눈을 질끔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나는 오송역의 회의장에 도착해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오늘 해야할 수많은 To-do 리스트를 처리해야했다. 나는 분주하게 진행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회의에 참여했다. 보통 5년 단위로 진행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사업이 2~3년 진행된 후 중간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고, 이 평가 결과로 앞으로의 예산이 좌우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내 또래의 젊은 연구자부터 백발의 노교수까지 단 20분 진행되는 발표와 질의응답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의 연구 성과와 필요성을 말해야 했다. 혹독한 평가위원의 질문에 기분 나빠할 틈 없이 분초를 다투며 답변을 하고 나면 질의응답 시간은 어느새 종료되어 있었다. 다음 발표를 위해 연구자들은 빠르게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가만히 회의록을 적다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우 20분 간의 질의응답을 하기 위해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먼 거리를 오고가고 있구나."

그들도 나처럼 시간을 쪼개어가며 평가를 준비하고, 열차를 타고 오고가며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한 동질감에 긴장감이 사르르 녹았다.


분주한 평가회의 일정에 쓸려가다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다. 책을 챙겨왔지만 읽을 기운은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유투브를 들으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그 직업이 최저임금을 주든, 내가 원하는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내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건 굉장히 존엄한 삶이에요."

현재 다니는 직장이 맘에 들지 않아 대기업을 준비해야할 거 같다는 청년의 커리어 고민에 어느 유투브가 답변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지난 1년 간의 연구원 생활이 괴로웠다. 어딘가 나와 딱 맞는 업무, 비슷한 결을 가진 동료들로 가득한 직장이 존재할거라 생각했다. 단지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고, 그런 직장을 반드시 만날거라고 생각하며 지난 1년을 단순히 "버티며" 보냈다. 나의 이 일이 나를 먹여살리는 존엄하고 숭고한 행위인지 모른 채로 말이다.


최근 미뤄둔 치료를 시작하면서 큰 돈을 지출할 일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금전적 부담으로 미뤄둔 치료라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순식간에 목돈이 나가면서 가난해진 느낌을 받았다. 가족은 나의 치료비에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치료 이야기에 혼수에 돈을 보태라는 소리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무도 보태지 않는 치료비를 지출하며 깨달았다. 역시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괴로워하며 꾸역꾸역, 하지만 성실하게 출근을 했던 1년의 시간이 아픈 나를 스스로 치료할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치료를 더이상 미루지 않을 용기를 주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꿈에 그리던 직무인지 아닌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와 똑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뇌하며 야근하던 시간, 한파 속 기차를 오르내리던 시간들이 전부 나를 먹여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치열하게 살다보니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송의 사업 평가회의에서 짧게 만난 연구자들이 보였고, 바들바들 떨며 새벽마다 기차에 오르는 나 자신이 보였다. 오늘도 새벽 급행 열차에 오르는 나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지금 네가 하는 그 일이 꿈에 그리던 게 맞니?"가 아닌, "오늘도 네 자신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기 위해 충실하게 보낼 준비가 됐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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