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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Jun 21. 2023

정유년 어느 봄날

사진 한 장을 따라 다시 그린 기억

지난달 대학 풍물패 동기 J가 청첩장을 보내왔다. ‘J가 결혼을 하다니. 시간 참 빠르다’ 청첩장 링크를 닫고 난 그저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다. 어느 날 휴대폰 앨범을 열고 스크롤을 한 없이 내리다 어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나는 그 사진을 보며 J의 결혼식에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벚꽃이 만개한 2017년 어느 봄날, 오랜만에 13학번 동기들끼리 본관놀이를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엔 나와 같이 막학기를 다니고 있는 D언니, 휴가를 나온 W오빠, 휴학 중인 Y, 갓 전역한 J 그리고 이슬톡톡을 들고 있는 지난날의 내가 있었다.


그해 나는 이 사진으로 인해 당혹스러운 사건을 겪었으며, 한편으론 따스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졸업 후 나는 중국의 쑤저우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그곳에 닿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쓸쓸함이었다. 대학생활을 매듭짓고 연고가 전혀 없는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어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 사귀기는 순조롭지 않았고 나는 기숙사와 학교 앞 메이하오광장에 있는 헬스장만 오가는 생활을 했다. 나는 그 사진을 나의 위챗 모먼트(중국의 카카오톡)에 올리며 중국어로 ‘얼른 친구들이랑 소주 마시러 비행기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썼다. 나에게 영업을 하며 위챗 친구가 된 어느 헬스장 직원은 ‘내가 네 친구가 되어줄게’라는 댓글과 함께 한동안 쫓아다니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반면 나와 쑤저우 생활을 같이 한 일본인 친구 푸카는 사진 속 동기들이 나와 소중한 관계임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해 말 나는 푸카와 사진 속과 같은 봄 날씨를 가진 샤먼에서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어느 날 호텔 방에서 쉬고 있는데 푸카가 갑자기 물었다.

“언니는 한국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였어?”

“동아리 활동 같이한 동기들이랑 제일 친했어. 거의 형제자매나 다름없지”

“아~ 그 사진 속 6명? 나도 봤어! 언니 인스타그램에서!”

그해 상반기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엔 동기들과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고, 우린 한번 모이면 보통 6명이었으며, 한두 명의 멤버들이 종종 바뀌었지만 사진 속엔 D언니, W오빠, Y, J, K가 늘 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 냄새와 술 냄새가 묘하게 배어나온다. 노곤한 봄볕과 왁자지껄한 주변의 이야기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진 속으로 흠뻑 스며들어 그날 그 시간 속에 빠진 채, 잊었다 생각한 사소한 기억 조각들을 찾아내어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입생 시절 벚꽃이 만개한 풍경을 기대하며 걸었던 캠퍼스는 익숙하다 못해 점점 권태로워졌지만,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나는 대학 시절 소중한 추억을 가장 많이 쌓은 동기들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수월한 본관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신입생 시절처럼 낯선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어색함 없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가장 신나는 본관놀이를 했다.


'이곳으로 오시오.'

단톡방엔 본관에 돗자리를 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피자는 이미 시킴. 다른 간식ㄱㄱ'

나는 학교 앞의 유명한 요거트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D언니는 보드카를 챙겨 왔다.


애정행각이 심한 커플을 가리키며 저 커플은 절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닐 거라며 눈꼴이 시렵다는 이야기, 이 돗자리 저 돗자리를 다니며 전도하는 할머니를 보고 나도 저 할머니를 안다고, 이미 우리 학교에서 유명하다는 이야기. 다른 무리로부터 부탁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J에게 이제 사회인이 다되었다며 깔깔 웃으며 지켜보던 우리들의 모습이 여전히 아른거린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은 모든 단과대 패가 함께하는 풍물굿패연합 모임이 있는 날이다. 중간고사 전 마지막 모임이었고 이과대의 어느 강의실에서 H선배가 판굿 강의를 할 예정이었다.

"오늘 풍연 모임 갈 거야? H형이 판굿 강의 한다던데."

"잠깐만 있다가 우리끼리 고미(예약이 불가능한 학교 앞 인기 술집 '고기야미안해'의 줄임말) 가자."


우린 본관놀이를 마무리하고 이과대로 향했다. 강의실 앞에서 교수님의 자태로 서있던 H선배는 판굿은 각각의 치배들이 호흡을 맞추며 주고받는 게 중요하다며 카톡대화를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대화에서 용건을 잘 전달했으면 이모티콘으로 어색하지 않게 받아치며 대화를 잘 맺어야하고, 판굿도 그렇게 맺는 것이 중요하다며 H선배 특유의 판굿 철학과 재치가 묻어나왔다. 한편 우리는 강의실 뒤편에 쪼르르 앉은 채 어느 타이밍에 나가는 것이 좋을지 지켜보는 중이었다.

'6명이 한꺼번에 나가면 너무 티 나지 않을까?'

'조용히 2명씩 나가자. 문 쪽에 있는 사람부터 천천히 나가.'


첫 번째 타자는 나와 W오빠였다.

'지금이야. 얼른 나가!'


쾅!


'야이 미친놈앜ㅋㅋㅋ 요란하게 나가면 어떡해. 다 쳐다봤잖아.'

오래된 이과대 건물 강의실 철문은 쾅 소리를 내며 우렁차게 닫혔다.


첫 타자인 나와 W오빠는 어쩔 수 없다며 먼저 술집에 가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계단을 급히 내려갔다.

"어...? 이거 D언니 사진인데"

"이게 왜 여기 있냐? 누가 버렸는지 참 궁금하네"

나와 W오빠는 이과대 건물 계단에서 D언니의 취업용 증명사진을 주웠다. 본관놀이를 하던 낮, D언니는 얼마 전 취업사진을 찍었다며 동기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는데, 누군가 사진을 계단에 흘린 것이었다!

"우선 가져가고 D한텐 말하지 말자"


우린 또 무언가를 감춘 채 술집으로 향했다.




후배들과 H오빠만 남은 중간고사 전 풍물굿패연합 모임을 뒤로한 채 13학번 동기들끼리 다시 술집에 모였다. 주황색 조명이 연어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비췄던 그날 저녁, 처음으로 산낙지를 먹은 일이, 후배들이 있는 뒤풀이에 갈 건지 말건지 고민하던 대화들이, 월요일에다가 중간고사가 2주 정도 남은 긴장의 시간들이 사진 속에 여전히 묻어 있다. 그날 술집에서 찍은 6명의 사진은 이젠 없어져버린 나의 예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와있었고 나는 댓글로 K와 '시험공부 제대로 던졌다'며, 막학기니 그냥 던져보자며 하루를 끝맺었다. 친구가 되고 난 후 내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봐준 푸카는 사진 속 나의 동기들을 쭉 기억했다. 그해 5월 대동제 때 동기들끼리 곱창집에서 가진 뒤풀이 사진과, 내 졸업식 사진에도 꾸준히 등장한 익숙한 동기들을 보며, 푸카는 '분명 언니의 친한 친구들일 것'이라고 했다. 휴학 없이 다녔으면 이미 졸업을 했을 학번이 된 우리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하루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시간을, 추억을 쌓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익숙하나 오랜만에 꺼내보아 낯설어진 어느 사진 한 장은 오래된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 사진이 데려간 곳에서 나는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듯 그날의 풍경, 인물, 대화, 분위기, 볕, 냄새, 나의 마음과 감정 등 흐릿했던 기억들을 선명하게 다시 스케치해나갔다. 다시 그려본 기억 속엔 분명 삐져나오거나 왜곡되고 내가 오해한 것들이 있겠지만,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고 느껴질때마다 기억 위에 알록달록한 빛깔을 입혀 예쁜 액자에 걸어 놓은 후 근사한 조명을 비추고 싶다.(23.06.21.)


'이곳으로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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