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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08. 2023

죽어가며 말하는 이들 앞에 묵념

W.H.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 

장례식 블루스_ W.H. 오든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기름진 뼈다귀를 물려 개가 못 짖게 하라.
피아노들을 침묵하게 하고 천을 두른 북을 쳐
관이 들어오게 하라. 조문객들을 들여보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휘갈기게 하라.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신형철 시화 <인생의 역사> 중에서 발췌>)




제목에서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데 반해, 시어들은 꽤나 강렬한 느낌이다. 화자는 자신의 말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활동을 멈추고, 모든 흐름까지도 멈추게 하고 오로지 장례식에만 집중하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장례식이 웅장하게 거행된다 한들 그러한 일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의 동서남북'이자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던 이가 죽어버렸으니. '별들은 이제 필요 없으니 다 꺼버리라'는 거침없는 외침에서 화자의 강렬한 분노가 느껴진다. 


장례식을 준비하는 유가족이 분노하고 있다는 건 그 죽음이 사회적인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는 뉴스를 거의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소식은 저절로 알게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생님들에 대한 뉴스가 그랬다. 학부모의 갑질에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린 그 마음을 내가 감히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더운 방학 동안, 바로 얼마 전까지도 검은 옷을 갖춰 입고 거리에서 집단행동을 하는 선생님들의 분노에 다만 마음이 숙연해질 뿐이었다. 부디 선생님들의 바람대로 법과 제도가 정비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부터 더는 죽음으로 말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신형철 <인생의 역사,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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