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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Jun 05. 2024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치고

70회 행운의 백 점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봤다. 대입 시험과 운전면허시험 이후 OMR 카드에 표시하는 시험은 처음인 듯. 혹시 표시에 빗나가 점수에서 빠질까 봐 조심조심 표시했다. 그 결과가 오늘 발표되었다. <점수 100>이라는 글자에 두 눈이 고정된다. 두 달간의 노고에 혼자 왈칵 눈물이 터진다.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행운도 따랐다.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줄여서 ‘한능검’)』을 준비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착오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의 국사 공부에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머릿속에는 국사의 단편들만 가득하고 긴 흐름에서 자신 있게 대답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최태성 선생님의 한능검 심화 과정 유튜브를 듣게 되었다. “한국사는 최태성” 오랜 교직 생활과 최고 인기 강사로 유명한 전문가답게 한국사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다. 아뿔싸! 알고 보니 중학교 2학년 「역사」는 세계사였다. 「역사」 과목이 있다 길래 당연히 국사려니 착각했다. 동영상 강의 청강을 그만둘까 하다가 내년에 필요하겠지 싶어서 계속 들었다. 그런데 재미와 교육은 되지만, 원동력이 없으니 점점 나태해지고 연속적으로 충실하게 듣지 않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시험이라도 치자. 그래서 강의 전체를 시청하는 원동력으로 삼자’는 생각이 들었다.      

  4월 말에 접수한 후에 한 달간 열심히 공부했다. 일단 인터넷 접수과정이 너무 힘들었고, 다음 접수가 가능할는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집안일이나 운동하면서 가볍게 귀로만 듣던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눈으로도 보기 시작했다. 노트에 선생님의 판서를 그대로 옮겨 적었고, 판서에 빠진 내용을 채워 넣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다 보니 낯선 용어들이 조금씩 낯익어졌다. 시험 십여 일 앞두고 겨우 동영상 전체를 시청한 후에 나머지 시간에 기출문제를 풀었다. 기출 500문제의 선지 2,500개의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했다. 아는 선지도 반드시 한 번 더 점검했다. 시장에 가거나 외출할 일이 있으면 단어만 기록해 둔 수첩을 보고 달달 외웠다. 정치-외교 부분은 흐름이 있어서 쉬운데, 경제나 문화는 일단 외우고 봐야 했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기출문제도 잘 쳤다. 합격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한능검 시험공부에만 시간을 다 투자할 수도 없고, 집안일과 여러 일정으로 공부 시간이 빠듯했다. 시험을 한 주 남기고는 모든 약속을 취소한 채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 공부에 몰두했다. 옛날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끊임없이 귀로는 최태성 선생님 강의를 듣고, 눈으로는 필기 노트를 보고, 입으로는 중얼중얼 다녔다. 아침마다 시험 보는 꿈을 꾸다 깼다. 남자들 군대 가는 꿈이나, 여자들 아기 낳는 꿈은 물론, 어려운 공부를 한 사람들은 시험 꿈도 꾼다는데, 나도 시험 꿈을 꾼다. 너무 긴장했나 싶어 긴장을 풀려고 애도 썼지만, 다음날에도 시험 꿈을 꾸었다.     

   드디어 시험 보는 날. 아침을 가볍게 먹고 물 한 병과 초콜릿 두 개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지만 가족의 응원을 힘차게 어깨에 걸었다. 필기 노트를 보며 페이지에 쓰인 내용과 위치를 외우려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시험 시작 전. 빳빳한 5천 원권 지폐의 율곡 이이 선생과 눈을 마주치며 급제를 빌었다. 문제는 너무 쉬웠다. 나중에 보니 이번 시험은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은데, 다행히 나는 다 아는 문제였다. 단 하나가 잠시 헷갈리기는 했지만, 아침에 본 필기 노트에서 위치를 떠올리며 자신 있게 표시했다. 문제와 답지를 맞혀본 후에 제출하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전화기를 켜고 가족 톡에 ‘다 맞은 듯’이라고 보냈다. 시험시간이 끝나자마자 최태성 선생님 유튜브에는 답이 올라왔다. 비교해 보니 진짜 다 맞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공부 피로가 몰려와서였을까. 오히려 그때는 마음이 더 차분했다.      

한능검 50회-70회

  한능검 시험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준비된 행운’이었다. 그동안 보고 듣고 읽은 것들이 모두 도움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읽던 책들은 여운형 평전, 이회영 위인전, 김산의 아리랑, 강근호(청산리전투 중대장) 지사와 이육사 시인에 관한 것들이었다. 어려웠을 일제 강점기 투쟁은 이미 내가 아는 것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위해 다닌 박물관들은 문화재를 쉽게 기억하게 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익산‧부여‧공주 백제 문화권은 백제의 역사와 유물을 이해하기 쉬웠고, 「삼국유사」를 통해 신라 역사도 쏙쏙 기억했다. 최근에 보았던 KBS 「고려 거란 전쟁」과 「태종 이방원」은 고려와 조선 초의 역사를 알기에 좋았다. 심지어 공연도 도움이 되었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웅」에서는 연해주 최재형 지사를 떠올렸고, 부산 해운대문화회관에서 보았던 「구름 위를 걷는 자」를 통해 진성여왕, 위홍, 최치원을 기억했다. 같은 극단 「장수왕」은 더 극적이었다. 「장수왕」에서 극단에서 유명한 배우가 비중이 작은 스님 역할이라 의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장수왕이 백제에 심어놓은 첩자였다. 그 첩자 ‘도림’이 이번 70회 시험에 나왔다. IMF와 남북공동선언 세대이니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는 몸소 겪은 역사이다.   

   한국사 검정 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얻은 것은 한국사를 구석기부터 최근까지 한 흐름으로 점검한 것이다. 중‧고등 이후 통으로 국사를 배운 적이 없었다. 언제나 국사는 단편이었는데, ㄱ에서 ㅎ까지 제대로 관통했다. 그다음은 공부하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간만에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한 시간 공부하면 집중력이 풀려 졸렸다.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문에는 아이들이 격려와 축하 글을 붙여놓았다. 노력한 공부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잔잔했던 마음에 파도가 치듯, 울컥하는 눈물을 삼키고 들어가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공부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소홀했었는데, 이렇게 진한 축하까지 해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가장 큰 조력자인 남편도 옆에서 든든하게 서 있었다. 가족이 큰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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