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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Sep 20. 2024

흰머리와 함께 살기

  거울을 보니 흰머리 하나가 삐죽 솟아있다. 검은 머리 사이에 힘을 주고 서 있는 흰머리 한 가닥이 보기 싫다. 왜 흰머리는 송곳처럼 빳빳하게 서서 얌전하게 누운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돋보이려는 것일까. 예전이라면 단숨에 뽑아버렸을 텐데, 그렇게 자꾸 뽑다 보면 그 자리가 휑하게 구멍이 생긴다고 하니 참는다. 흰머리를 뽑지 않아 딸아이는 소소한 용돈을 벌 기회가 사라졌다.     


  친정엄마는 젊은 나이부터 일찍 흰머리가 있었다. 내가 흰머리 하나에 십 원씩 받으며 엄마 머리카락을 재빠른 손놀림으로 살필 때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때 엄마는 30대였다. 친정엄마가 흰머리가 많은 이유는 가족 내력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일찍 머리가 하얘졌다. 친정엄마의 흰머리 유전자는 내 동생이 물려받았다. 87세에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귀밑머리만 희끗거렸을 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셨다. 할머니의 유전자는 친정아빠를 거쳐 나에게 내려온 줄 알았다. 아직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는 친정 아빠를 보며, 내가 노인이 되면 멋 부리기 위해서 흰머리로 탈색해야겠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 마음에 찬물을 끼얹듯 그 뒤로 흰머리가 자꾸 눈에 띈다.     


  처음에는 흰머리를 애써 부정하며 족집게로 뽑아냈다. 그렇게 한두 뿌리씩 캐면서 몇 달간은 흰머리에서 달아났다. 어느 날부터는 흰머리가 보이자 딸에게 뽑아달라고 했다. 옛날 생각이 나서 호기롭게 흰머리 하나에 100원씩 현상 수배를 걸었다. 수십 년의 물가상승률도 있지만, 흰머리가 앞부분에 서너 개밖에 없을 거라 여겼기 때문에 열 배를 걸었다. 딸은 엄마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 수 있어서, 또 노다지를 캘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다. 딸아이가 만져주는 손길이 좋다. 나른하게 꿈을 꾸게 하는 부드러운 손이다. 딸이 머리카락을 동서남북 폭풍이 지나가듯 헤집으면서도 흰머리를 못 찾았다. 오래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밭고랑을 넘기듯이 찾으라니 그새 기술을 익히고 논두렁에서 피사리 뽑듯이 흰머리를 뽑았다. 앗싸 한 개, 앗싸 또 한 개. 딸은 콧노래를 부르며 백 원씩 늘어가는 소득에 즐거워한다. 엎드려 누운 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딸아, 이제 없을 거야.’ 근데 흰머리를 계속 찾았다. 깜짝 놀라고 당황한 것은 나였다. 머리 앞부분에만 몇 개 있는 줄 알았는데, 뒤통수에서 제법 흰머리를 찾아냈다. 그날 딸의 소득은 흰머리 열한 개, 천백 원이었다.     


  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샅샅이 뒤지는 손길이 좋다. 그사이에 잠깐 잠이 달달하게 쏟아진다. 잠결에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일부러 흰머리를 뽑게 했을까. 봄날 여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그 느낌이 좋아 흰머리에 현상금을 걸고 그것을 핑계 삼아 계속 머리카락을 만지게 한 것은 아닐까.’ 농사짓느라 하루를 제대로 쉬지 못하시던 엄마였으니 딸 손길에 달콤한 잠을 자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중학교에 간 후부터 친정엄마는 더 이상 흰머리를 뽑지 않고 염색했다. 그때는 흰머리가 많아져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랑 노느라 바쁜 내가 더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져주지 않아서일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고 보니 친정엄마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어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들이라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키우면서 아직 젊은 줄 알았는데, 흰머리가 자꾸 생기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자세히 보니 흰머리만큼 얼굴에 주름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주름은 익숙하다. 흰머리처럼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이 아니고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익어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젊은 시절부터 눈주름 세 개와 함께해서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웃는 주름이라서 좋다고 자화자찬도 해본다. 그러면서 눈가에 아이크림을 듬뿍 바르는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흰머리와 주름을 보며 어떤 노년을 맞을 것인가 고민한다. 이제 장년(壯年)이다. 항상 청춘일 줄 알았는데, 중년도 벌써 지나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장년이 그냥 오십 대라기보다는 청년과 노년의 경계에서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지금부터 서서히 습관과 생각을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인생은 나이의 속도로 달린다고 하더라. 이제 시속 50km의 속도로 살게 되었으니 꽤 빠른 속도이다. 안전운전은 도로나 인생에나 반드시 필요하다. 몸은 토끼처럼 달리지만, 마음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주변을 챙기면서 간다.  

  다시 거울 속의 나를 본다. 흰머리가 몇 개나 솟았는지 자꾸 찾아본다. 그러다 이내 웃는다. 앞으로 동고동락할 사이인데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아직 날은 더워도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점점 나무에서는 빛바랜 이파리가 떨어지고 바닥에는 낙엽이 뒹군다. 지금의 내 모습과 겹친다. 점점 더 앙상하고 뻣뻣한 겨울나무처럼 되겠지. 하지만 나무는 봄이 되면 연두색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초록으로 풍성하게 몸짓을 키운다. 나무처럼 젊음이 반복될 수 없지만, 이제부터 풍성한 열매를 노년에 맺을 수 있게 다양한 씨앗을 마음에 뿌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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