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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그리고 그 이후의 삶

『의대에 합격하기까지』10화

by 청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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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ay : 수능



생각보다 날이 춥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수험생으로서의 삶이 오늘부로 끝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시험 전에 풀어봐야 할 예열 지문들과 문제들을 챙기고, 도시락과 초콜릿을 챙기며 마지막으로 잊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며 문을 나서게 됩니다.


도착한 고사장 내부는 훨씬 조용하고, 미리 켜둔 보일러로 인해 따뜻합니다.

옷을 가볍게 입고 겉옷을 여러 벌 겹쳐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자리에 앉아 1교시 '국어'를 대비하기 위해 예열지문을 몇 개 풀다 보면, 시간이 흘러 다른 수험생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사람은 북적거려 빈 의지가 없어지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시험을 조지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잠시, 감독관분들께서 들어오신 후 본격적인 시험을 준비하게 됩니다.

원래 쓰던 샤프는 사용할 수 없기에, 시험장에서 나눠주는 '수능 샤프'를 받게 됩니다.

본인 확인이 끝나고 OMR을 손에 쥐게 된 그제야 정신이 듭니다.

그리고 본인 앞에 놓인 수능 시험지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작종이 울리고, 같은 시각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이 같은 하나의 시험지를 풀게 됩니다. 그 속에선 분명 헷갈리는 부분도, 예상했던 부분도 존재합니다.

또한 '나오지 않으리라 믿었던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국어 영역을 모두 마치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같은 고사장에 배정받은 본인의 친구들이 보입니다. 낯선 공간 속에서 발견한 익숙한 친구들이니 참 반가운 것이 당연하죠. 그리고 가장 위험한 행동, '답 맞추기'를 하게 됩니다.


주변에서 "수능장에선 절대 답을 맞혀보면 안 된다"라고 누누이 당부했던 것이 기억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가채점표를 꺼내드는 법이죠. 그리고 후회합니다.

꼭 답이 다른 부분이 하나둘씩 나오게 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본인이 실수한 부분'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몰입할 때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판단의 실수, 논리의 모순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땐, 2교시 '수학' 영역이 시작되게 되죠.


앞서 틀린 부분이 계속 떠오릅니다.

'어차피 망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도무지 지워지질 않죠.

그렇게 100분이라는 가장 긴 시험을 끝내고 나면, 이젠 이 시험장이 익숙해지게 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와닿고, 생각보다 수능이 무섭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타이밍이죠.


부모님께서 정성 스래 싸주신 도시락을 먹다 보면 가끔 자리에 없는 친구들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앞서 쳤던 시험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밥을 다 먹고 나니 슬슬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고,

남은 '영어 영역'과 '한국사 영역', 그리고 '탐구 영역'을 차례로 응시하게 됩니다.


영어는 '듣기 영역'과 '독해 영역'으로 구분되기에, 혹시나 학교 스피커 음질로 인해 손해를 보진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탐구 영역에선 부정행위로 오인받아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진 않을까 무섭기도 하죠.

사실 이런 특수한 상황은 거의 연출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수능'이 허술한 시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함께 수험장을 나오게 됩니다.

휴대폰을 켜 뉴스를 확인해 보면 다양한 입시 기관에서 내놓은 분석들이 즐비하죠.

시험이 쉬웠고 어려웠고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와닿는 사실은 수능이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모의고사를 풀지 않아도 괜찮고, 매일 12시간 넘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행복하기 마련이죠.





# 수능,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난 날, 집으로 돌아와 가채점표를 확인합니다.

예상대로 나온 부분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틀린 부분도 분명 존재하겠죠.

그렇게 결정된 본인의 성적을 가지고, 수시는 수시 나름대로, 정시는 정시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과정에 해당하죠.


이렇게 결과가 어떻든 간에, 기나긴 여정 '입시'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도달했고, 이제 그 끝을 보게 된 셈이죠.

그리고 그 시간에 보답하듯이, 대학교 합격 발표 전까진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여유로웁니다.

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놀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봐도 시간이 남습니다.

그렇기에 '공허함'을 느끼는 친구들도 많죠. 공부만 해왔기에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혹은 그 시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수능의 끝은 '새로운 시작점'이란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 자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을 새로이 하는 것임을 말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세상은 넓고 다양한 법입니다.

여태껏 본인을 '입시'에만 가둬두고 틀에 박힌 삶을 살았다면, 이젠 운동과 여행과 같이 본인 스스로를 돌보고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있어서 새로운 목표를 찾는 과정을,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생각을 잃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여태껏 정해진 길을 걸어왔다면, 이젠 본인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기입니다.

수능의 결과가 아쉬워 다시 한번 도전하는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죠.


수능이 끝나고,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졸업하게 되며 맞이하는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다채롭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경험했던 것 그 이상으로 다양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모든 것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길고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또다시 새로운 문장을 써나가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부디, '후회'와 '미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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