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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Apr 14. 2024

삶의 파편을 지닌 채 길을 나선다.

<불안의 책>, <월든>, 그리고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사람은 면서  시간과  결핍에 노출된 채 . 흩뿌려 결핍의 파편들을 받아내다 온몸 곳저곳에 쑤셔   길을 나설 쯤이, 인생살이 참 많이 아프고 다는 푸념이 절로 생겨난.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고, 살아가는 것은 곧 상처를 받는 것이다. <강의 p72/신영복>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지만 삶의 파편에 상처 입은 영혼믿을 수 없이 지루하게 견디며 살아야 한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 '치호' '일영'을 닮아있다.

(영화 <달짝지근해:7510>/유해진, 김희선 주연)


제과회사 연구원인 치호는 언제나 일분일초도 어긋남 없이 착실하게 출퇴근하고, 싱글 맘인 일영은 악착같이 딸을 양육하고 사느라 여념이 없지만 알 수 없는 무기지곤 한다.


권태... 나는 열심히 일한다.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진 않지만  성의없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의무 또는 운명을 수행한다. 그러나 가끔은 한창 일하는 중에, 또는 도덕주의자에 따르면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한다는 휴식시간 중간에 쓰라린 무기력이 내 영혼을 채우고, 나는 일이나 휴식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지겨워진다. <불안의 책 p341/페르난두 페소아>


작가 페르나두 페소아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 황하는 인생들이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는 삶의 방식> <권태로운 정>실감 나게 사했다.


그것은 생각 없이 생각하는데 생각하는 일의 피곤함이 따르고, 느낌 없이 느끼는데 느끼는 일의 괴로움이 따르는 일이다. 원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인데 원하게 만드는 일에 수반되는 구역질이 같이 오는 일이다. <불안의 책 p340>


각자가 지닌 삶의 파편들(가족, 아픈 과거, 회사, 경제난 등)로 인해 로를 향한 사랑을 념한 채 생각 없이 생각하는 피곤함과 느낌 없이 느끼는 괴로움이 요동치는 현실의 바닥에 다시 주저앉아 몸부림치던 치호와 일영은 끝내 오열하고 만다.


그들의 모습 원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듯이 내몰린 인생 에서 치밀어 오르구역질을 간신히 홀로 버티  있는 인생들의 고통이, 아픔이 저미듯 느껴온다.


어쩌면 인생이란 결핍이라는 빠지지도 녹지도 흘러내리지도 않는 파편들로 점철된 인생행로  구할 수 없는 답, 정답이 없는 문제에 골몰하다 그대로 서서히 굳어가서글픈 운명을 지닌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예 품위를 뒤로 한채 지금은 허망하게 말라비틀어진 어느 고대 이집트의  미라처럼 말이다.




일상 속에서 결핍이 느껴질 때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만 같다.


실제로 L. 윌리엄스(L.J.Williams) 박사는 시간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물을 폭넓게 인식하지 못하는 '터널시야효과(Tunnel Vision)'에 빠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터널'에 갇혀버린 시야는 특정한 것만 보고 나머지는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주변의 전체상황과 중요한 진실을 놓쳐버린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만 급급할 뿐 터널 밖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예측하고 인지하려는 시도는 회피한다.

 

결핍의 터널갇히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나 물질적 풍족함을 상실해서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실 속 가치 있는 것들을 음미할 느슨함 또는 심리적 여유를 버렸기 때문이다. 


터널에 갇히면 어부들이 집어넣은 메기 한 마리를 피해 움직이는 수많은 정어리 떼처럼 오직 생존만을 위해 필사적으로 피하고 움직일 뿐이다.


이런 사실은 결핍의 진정한 의미가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들 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심리적 여유를 상실한 상황 있음을 가르쳐 준다.


세상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리를 따라가려는 사람과 본능을 따르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지극히 평범해서 따라나선 무리들 속에서 나는 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경험하곤 했다.  


인생에게 원했던 것은 너무나 적었건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 가까운 들판, 한 줌의 평온과 한쪽의 빵,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결국 내가 원한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불안의 책 p19>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영혼이 느끼는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불만, 우리 내면에 있는 슬픈 어린아이가 갖고 싶은 신성한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절망"때문은 아닐까. 삶의 결핍이란 장자크 루소의 말처럼 나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며 행복이란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그의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삶이란 우리가 결코 다 이해하거나 분석해 낼 수 없다. 그저 어떤 따스하고 신비로운 흐름을 따라 살아내는 중이라는 그런 느낌들이 늘 우리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내 속에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을 꿈꾸는 무수한 자아들이 꿈틀거린다. 그것들이 내 안을 지나간다. 그것들은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속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것들과 함께 어울려 삶의 표면을 가만히 유영하는 순간 비로소 삶은 타인과 벌이는 놀이터가 된다. 내 끝에 내 시작이 있듯이 래는 오늘로부터 시작됨을 깨닫는 순간 곧 떨어져 사그라들 벚꽃의 화사한 아름다움을 서글픔이 아니라 마음껏 만끽하게 된다.

 

홀로 월든 호숫가를 거닐던 지혜자는 서두르지 말고 분별력을 발휘하라고 당부한다. 삶의 이러저러한 파편들이 우리를 향해 튀어져 날아올 때마다 탈선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하루를 보내라고 한다.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자.

그리하여 호두껍질이나 모기날개 따위가 선로에 떨어진다고 해서 그때마다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든 또는 거르든 차분하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손님이 오든 또는 가든, 종이 울리든, 단호하게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왜 우리가 무너져 내려 물결에 떠내려가야 하는가?

<월든 p140/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오늘 나는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내 삶을, 내 영혼을 가만히 갈아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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