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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un 06. 2024

아내는 남편의 초능력을 원해.

쉽지 않은 가장의 삶.

갑자기 아내가 글 쓰던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댄다.

말없이 동그랗게 바라보는 아내의 엉뚱한 행동에 난 웃음이 났다가 이내 긴장했다.


"모르겠냐고. 내가 말하는 걸 느껴 못 느껴."

"텔레파시가 안 느껴지냐고."


이건 뭐야.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고두심 씨가 나오고 초능력 가족과 관련된 드라마에 푹 빠졌던 아내가 '눈 맞춤 초능력'을 시도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부릅뜬 아내의 두 눈동자를 통해서 까맣게 잊고 놔뒀던 설거지가 생각났다.


"아, 이제 설거지를 해야겠네."


"그렇지. 느껴지지. 가 하고 싶은 말이 확 느껴지지."

자신의 초능력에 이내 흡족해진 아내는 한마디 던지고 뒤돌아 나간다.


"빨리 가서 해."


아내와 삼십 년 가까이 살면서 나에게도 초능력이 생기긴 했다.

서로 말없이도 로의  감정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절로 느낌이 왔다.


그리고

나이 든 남자는 말없는 사물과도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설거지 개수대의 반쪽을 차지한 초음파 식기세척기 속에 설거지 그릇을 넣으며 새삼 진하게 느껴지는 고마움에 "너 없으면 나 어쩔뻔했냐" 하며 너스레를 떨어댄다.


한창 바쁘게 택배를 돌리는 숨가쁜 상황인데도 아파트 정원에 난 파릇한 녹색의 잎새들과 키 작은 꽃들이 정겹고 이뻐서 눈길이 가면서 저절로 인사를 하곤 했다.


이런 사물과의 소통능력이 강화된 초능력 탓에 구르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고 운다던 사춘기를 지나 오춘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가만히 입 속으로 삼켜진 말들과 여운이 왜 그리 크게 들리고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가만히 혼자 아파하고 힘겨웠을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진 듯 보이는 것도 왜 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자의 보편적 상식수준을 수시로 벗어나고 바뀌는 변화무쌍한 여자의 감성은 제아무리 초능력자라도 늘 긴장할 수밖에 없으리라.


"분명 그때는 그랬는데 오늘은 왜 이래. 전에는 이랬잖아"라며 따지고 묻는 건 의미가 없다.

이유 불문하고 여자인 아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 지금의 생각이 정답인 거다.

 

변화무쌍한 아내에게 맞추려 낑낑거리는 날 바라보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내가 저렇게 사람 만들려고 이 고생을 하며 살았네."


나이 들면 눈은 자꾸 나빠지는데 귀는 왜 이리 밝아지는 모르겠다. 큼지막하게 들리는 아내의 자그마한 혼잣말에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오히려 가슴은 왜 이리도 먹먹해지고 시려오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혼자 아파하고 힘겨웠을 아내의 마음이, 모습이 보이고 느껴져 자꾸만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은 드라마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아내 곁에서 나도 웬만한 드라마 스토리는 다 꿰뚫고 아는 그런 능력이 저절로 생겨났다.


커피에는 시럽 두 번, 커피번 빵을 곁들이면 더 좋아하고,

콩국수, 팥죽을 좋아하고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수수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고

굽 높은 신발보다는 편안한 단화를 즐겨 신고


엄격하게 질책하는 아버지보다는 다정한 아버지, 남편이기를 원하고

자신이 뭐든지 이야기하면 곁에서 가만히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아내는 이제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삶의 실체>가 되었다.

 

허전하고 막막해질 때면

가만히 곁에서 잠자는 아내가 느껴지는 순간이면 평온함이 되살아난다.

 

삶이 힘겹고 고단하게 느껴질 때면

바쁘게 택배를 하며 곁을 지나쳐 아파트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아내의 얼굴과 뒷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약한 나 자신을 질책하게 된다.


"이것도 몰랐어?"

아내는 오늘도 남편을 초능력자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바쁘다.

염력으로 숟가락을 엿가락처럼 구부리려 애쓰는 초능력자인 마냥,        

고달프지만 기꺼이 선물 같은 아내를 위해 아직도 뻣뻣한 나 자신을 굽히려 애써본다.


곁에서 지켜보던 스물네 살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참. 가장이란 힘드네. 쉽지 않은 삶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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