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에 시어머니 이혜영 씨가 우아하게 춤을 출 때 그 배경으로 잔잔히 흐르던 LP판 노래라고 한다.
정미조 씨가 부른 <la vie est>로 인생과 행복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와 그녀의 포근한감성과 세련된 불어 발음이 잘 조화된 샹송이었다.
La vie est une aventure sans fin,
Le bonheur est special.
인생은 끝없는 모험입니다.
행복은 특별합니다.
cache dans les petits moments,
La vie est un cadeau, un tresor a cherir.
작은 순간에 숨어 있습니다.
인생은 선물이자 소중히 간직해야 할 보물입니다.
Je saurai toujours que,
Chaque instant est un tresor.
난 항상 알 거야
모든 순간이 보물이라는 걸. <우리, 집 OST/정 미조/La vie est >중에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아내는 극 중 이혜영 씨가 빙의라도 된 듯 우아하게(?)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내의 그 모습이 너무나 생뚱맞고 낯설고 우스워 낄낄거리던 나는,
두 눈을 지긋하게 감고 양손을 우아하게 늘어뜨린 채 춤을 추는 아내의 감성적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나도 따라서 음악에 젖어들었다.
"라비~~ 에뛔느몽뜨~"
사실 아내는 정서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여자로 알았다.
여중, 여고시절에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열광하는 소녀 팬인 친구들을 보면서 왜들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래를 하면 얼마 안 가서 몇 가지 노랫말이 묘하게 뒤섞이고칵테일 되는 참 신기한 재주를 지녔다.
나의 감성적인 글은여지없이 비판하며 오히려 현실성 있게 글을 쓰라며 끓어오르던 내 감성에무정하게 찬물을 끼얹는 그런 여인이다.
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밋밋하게 남겨진 거실벽이 너무나 삭막해서 고흐의 포스터 그림(저렴하게 칼라출력된 그림액자)을 장식하려는 나를 몹시도 탄압하며 서럽게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그녀와 거리가 먼 감성에 한껏 취해 춤을 추고 있다.
택배를 돌리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이곳저곳이 아프다던 그녀가 말이다.
혹시나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힘겨운 상황들로 인해 지극히 현실적인 아내가 냅다 자극받아 비정상적으로 감성이분출되는 건 아닌지 우려와 자책이 뒤섞였다. 이런 내 심정과는 아랑곳 않고 그저 아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끝없는 모험이고 그 속에서 행복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각인되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유하게 성공해서 아내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인생은 나에게 그럴 기회를 허락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아내의 얼굴은 남편이 만든다고 하던데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내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한건 아닌지. 힘겨운 택배를 선택한 남편이 걱정스러워 오랜 기간 해오던 방과 후 교사를 단박에 그만두고 선생님이 아니라 이젠 택배아줌마, 택배이모로 불리는 현실 속으로성큼 들어와 내 곁을 지키고있다.
생존을 위한 가난한 현실 속에서 나는 아내의 얼굴에서그 어떠한 미소나, 행복한표정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으리란 절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말방구>를 트며 절친이자 동료 같은 부부로 살면서 나는 아내에게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남편과 자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아내는 그래도 웃고 행복해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늘 곁에서 들어주며 호응해 주는 내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아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미소 짓는 아내를 느끼곤 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내는 왜 늘 웃으며 행복해할까.
요즘 택배 레일에서 쏟아지는 물건들 부피가 크고 무거워졌다. 늘 서로를 걱정한다. 배송하다가 탑차 뒤에서 짐을 꺼내려다 아내와 마주쳤다. 힘겹고 피곤한 상황이지만 아내를 보자 장난기가 생겨났다.
"라비~~~"
아내가 또 지긋하게 두 눈을 감고 흥겹게 춤을 추려한다. 쉰 살이나 먹은 둘이 키득대는 꼴이 볼성사나울 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살아 낼 힘이, 흥이 생겨났다.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여자인 아내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는 작고 사소한 관심과 존중받는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행복해하고 흥겨움이 샘솟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된다.
노랫말처럼 행복이란 인생 속 작은 순간에 숨어있기에 모든 순간이 보물이고 선물이라는 가삿말이 참 많이 공감된다.
아내가 춤을 춘다.
아내가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화사하게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곁에서 지켜보며 난 새로운 경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퍼뜩 스치고 지나는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