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밋밋하게 남겨진 거실벽이 너무나 삭막해서 고흐의 포스터 그림(저렴하게 칼라출력된 그림액자)을 장식하려는 나를 몹시도 탄압하며 서럽게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그녀와 거리가 먼 감성에 한껏 취해춤을 추고 있다.
택배를 돌리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이곳저곳이 아프다던 그녀가 말이다.
혹시나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힘겨운 상황들로 인해 지극히 현실적인아내가냅다 자극받아비정상적으로감성이분출되는 건 아닌지 우려와 자책이뒤섞였다. 이런내 심정과는 아랑곳 않고그저 아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끝없는 모험이고 그 속에서 행복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각인되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든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유하게 성공해서 아내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인생은 나에게 그럴 기회를 허락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아내의 얼굴은 남편이 만든다고 하던데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내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한건 아닌지. 힘겨운 택배를 선택한 남편이 걱정스러워 오랜 기간 해오던 방과 후 교사를 단박에그만두고선생님이 아니라 이젠 택배아줌마, 택배이모로 불리는 현실 속으로성큼 들어와내 곁을 지키고있다.
생존을 위한 가난한 현실 속에서 나는 아내의 얼굴에서그 어떠한 미소나, 행복한표정을 두 번다시는 볼 수 없으리란 절망감을느꼈다.
하지만서로를의지하고<말방구>를 트며 절친이자 동료 같은 부부로 살면서 나는 아내에게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남편과 자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아내는 그래도 웃고 행복해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늘 곁에서 들어주며 호응해 주는 내 모습을 보며행복해하고
아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미소 짓는 아내를 느끼곤 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내는 왜 늘 웃으며 행복해할까.
요즘 택배 레일에서 쏟아지는 물건들 부피가 크고 무거워졌다. 늘 서로를 걱정한다. 배송하다가 탑차 뒤에서 짐을 꺼내려다 아내와 마주쳤다. 힘겹고 피곤한 상황이지만 아내를 보자 장난기가 생겨났다.
"라비~~~"
아내가 또 지긋하게 두 눈을 감고 흥겹게 춤을 추려한다. 쉰 살이나 먹은 둘이 키득대는 꼴이 볼성사나울 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살아 낼 힘이, 흥이 생겨났다.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여자인 아내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는 작고 사소한 관심과 존중받는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행복해하고 흥겨움이 샘솟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된다.
노랫말처럼 행복이란 인생 속 작은 순간에 숨어있기에 모든 순간이 보물이고 선물이라는 가삿말이 참 많이 공감된다.
아내가 춤을 춘다.
아내가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화사하게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곁에서지켜보며 난 새로운 경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퍼뜩 스치고 지나는한 가지의문이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