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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un 09. 2024

아내가 춤을 추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자기야. 라비 어쩌고 하는 샹송노래 좀 찾아 줘 봐."

 아내가 방금 시청한 드라마 OST가 너무 좋다며 찾아 달라고 냅다 요구했다.


극 중에 시어머니 이혜영 씨가 우아하게 춤을 출 때 그 배경으로 잔잔히 흐르던 LP판 노래라고 한다.


정미조 씨가 부른 <la vie est>로 인생과 행복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와 그녀의 포근 감성과 세련된 불어 발음이 잘 조화된 샹송이었다.


La vie est une aventure sans fin, 

Le bonheur est special. 

인생은 끝없는 모험입니다. 

행복은 특별합니다.


cache dans les petits moments,

La vie est un cadeau, un tresor a cherir.

작은 순간에 숨어 있습니다.

인생은 선물이자 소중히 간직해야 할 보물입니다.


Je saurai toujours que,

Chaque instant est un tresor.

 난 항상 알 거야

모든 순간이 보물이라는 걸.   <우리, 집 OST/정 미조/La vie est >중에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아내는 극 중 이혜영 씨가 빙의라도 된 듯 우아하게(?)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내의 그 모습이 너무나 생뚱맞 낯설고 우스워 낄낄거리던 나는, 

두 눈을 지긋하게 감고 양손을 우아하게 늘어 채 춤을 추는 아내의 감성적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나도 따라서 음악에 젖어들었다.


"라비~~ 에뛔느몽뜨~"


사실 아내는 정서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여자로 알다.

여중, 여고시절에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다.

열광하는 소녀 팬인 친구들을 보면서 왜들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래를 하면 얼마 안 가서 몇 가지 노랫말이 묘하게 뒤섞이고 칵테일 되는 참 신기한 재주를 지녔다.

나의 감성적인 글은 여지없이 비판하며 오히려 현실성 있게 을 쓰라며 끓어오르던 감성에 무정하게 찬물을 끼얹는 그런 여인이다.

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밋밋하게 남겨진 거실벽이 너무나 삭막해서 고흐의 포스터 그림(저렴하게 칼라출력된 그림액자)을 장식하려는 나를 몹시도 탄압하며 서럽게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녀와 거리가 먼 감성에 한껏 취해 춤을 추고 있다.

택배를 돌리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이곳저곳이 아프다던 그녀가 말이다.


혹시나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힘겨운 상황들로 인해 지극히 현실적인 아내가 냅다 자극받아 정상적으로 감성이 분출되는 건 아닌우려와 자책이 뒤섞였다. 이런 내 심정과는 아랑곳 않고 아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끝없는 모험이고 그 속에서 행복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각인되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유하게 성공해서 아내를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인생은 나에게 그럴 기회를 허락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아내의 얼굴은 남편이 만든다고 하던데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내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한  아닌지. 힘겨운 택배를 선택한 남편이 걱정스러워 오랜 기간 해오던 방과 후 교사를 단박에 그만두고 선생님이 아니라 이젠 택배아줌마, 택배이모로 불리는 현실 속으로 성큼 들어와 곁을 지키고 다.


생존을 위한 가난한 현실 속에서 나는 아내의 얼굴에서 어떠한 미소나, 행복한 표정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으리란 절망감 느꼈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방구>트며 절친이자 동료 같은 부부로 살면서 나는 아내에게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 남편과 자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아내는 그래도 웃고 행복해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늘 곁에서 들어주며 호응해 주는 내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아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미소 짓는 아내를 느끼곤 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내는 왜 웃으며 행복해할까.


요즘 택배 레일에서 쏟아지는 물건들 부피가 크고 무거워졌다. 늘 서로를 걱정한다. 배송하다가 탑차 뒤에서 짐을 꺼내려다 아내와 마주쳤다. 힘겹고 피곤한 상황이지만 아내를 보자 장난기가 생겨났다.


"라비~~~"


아내가 또 지긋하게 두 눈을 감고 흥겹게 춤을 추려한다. 쉰 살이나 먹은 둘이 키득대는 꼴이 볼성사나울 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살아 낼 힘이, 흥이 생겨났다.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여자인 아내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하것이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는 작고 사소한 관심과 존중받는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행복해하고 흥겨움이 샘솟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된다.


노랫말처럼 행복이란 인생 속 작은 순간에 숨어있기에 모든 순간이 보물이고 선물이라는 가삿말이 참 많이 공감된다.


아내가 춤을 춘다.

아내가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화사하게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곁에서 지켜보며 난 새로운 경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퍼뜩 스치고 지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여자는 과연 무엇으로 살아가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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