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챔피언 벨트와 중고 스타렉스

택배 하며 주운 삶의 의미들.

by 코나페소아


태풍이 다가올 때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본능적인 공포가 차오른다. 음울하게 깔린 구름과 날카로워진 바람 끝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긴장한다.

이미 마음속에는 거대한 폭풍이 시작된 것이다. ​


차가운 철제 링 위, 땀으로 번들거리는 건장한 두 남자가 서로의 생존을 건듯 격돌한다. 야수처럼 상대의 숨통을 조이던 한 남자는 승리가 선언되는 순간, 오히려 링 바닥에 엎드려 아이처럼 흐느낀다. 부어오른 눈두덩이에 땀과 눈물이 범벅된 채, 그의 어깨 위에는 황금빛 챔피언 벨트가 걸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환희라 부르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육체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처절한 '통증의 배설'임을 말이다. 링 위나 밖이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냉혹한 시련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이 마흔, 자신만만했던 사업이 3년 만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생전 처음 겪는 혹독한 '돈가뭄' 앞에서 돈의 보호막이 사라진 밤낮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내일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간 산등성이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사람 인(人)' 자로 쓰러진 나무들을 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누가 승리에 대해 말하는가? 견뎌내는 것이 전부인 것을"이라는 릴케의 말처럼, 인생은 시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이다.


그렇게 떠밀리듯 들어선 택배의 세계는 '지독한 통증' 그 자체였다. 불과 몇 달 만에 체중이 20kg이나 빠져나갔고, 내 몸의 근육들은 매일 밤 비명을 질렀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젖은 솜 같은 피로를 털어내고 나선 택배 센터는 거대한 괴물의 뱃속 같았다. 대형 간선 트럭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매연과 거친 엔진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휠소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품들이 쏜살같은 속도로 쏟아져 내려온다. 차가운 철제 레일 위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크고 작은 박스 더미들. 소음이 자욱한 그곳에서 나는 이름 없는 한 명의 택배 기사가 되어 다시 현실이라는 링 위에 선다. 쏟아지는 상품들을 받아 탑차 안으로 옮겨쌓는 '까대기' 시간, 돈을 벌었다는 환희만큼이나 몸의 고통 역시 정직하게 커져갔다. 이 땅을 두발을 딛고 살아가는 권리를 얻기 위한 부담감 속에 아내와 나의 허리에 조여진 벨트는 황금빛이 아니라, 땀과 파스 냄새가 절여진 투박하고 넓은 검정 복대였다.


"아빠, 나도 도울께."

군을 제대한 막내아들이 불쑥 내민 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길이었다. 힙합 래퍼인 아들은 가족을 위해 필요한 건 그저 돈뿐이라고 적나라하게 말하며, 덜컥 중고 '스타렉스' 한대를 사 왔다. 우리가 힘겹게 감내해야 했던 고독한 링 위로 든든한 파트너가 등장한 셈이다. 녀석은 내 구역의 짐들을 덜어 자신의 중고차에 실었다. 통증의 무게가 분산되는 희열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한동안 함께하는 고통을 그렇게 견뎌내야만 했다.


"아빠, 이건 내가 할 거야. 엄마아빤 천천히 해."

족히 20kg이 넘는 절임배추, 쌀 등의 무거운 몰짐들을 실랑이 끝에 낚아채듯 가져가 자신의 중고차에 실는다. 부모가 힘들까 봐 서두르는 아들을 보며 아내는 마음을 졸였다. 운전도 서툰데 주차가 힘든 구역을 누빈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서로를 온전히 돕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로를 향한 불안함을 이겨내는 법을 익혀야 했다. 가족을 위해 필요한 건 그저 돈 뿐이라고 적나라하게 말하는 아들의 가사는 저속해 보이지만 그 언어의 이면에는 가족을 위하는 아들만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나는 안다.


문득 영화 <코다(CODA)>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는 노래하는 딸의 목에 손을 얹고, 성대의 떨림을 통해 딸의 영혼이 내뿜는 진동을 공감한다. 나 역시 택배 하는 아들의 가쁜 숨소리와 바닥을 딛는 묵직한 발소리들이 내 가슴에 진동으로 와닿는다. 그것은 아들이 뱉어내는 랩 가사가 아니라, 아들의 몸이 내게 보내는 그 '진동' 속에서 나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귀로 듣는 대화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뜨거운, 우리 부자(父子)만의 연대였다.


배송 물량이 쏟아지는 화요일 오후, 물류센터 레일 앞은 전쟁터다. 하지만 아들과 호흡을 맞춰 짐을 옮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세상의 소음은 뒤로 물러나고 오직 우리의 움직임만이 선명해지는 '몰입(Flow)'의 상태에 진입한다.


​"하나, 둘."

​구령을 붙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다음 동작을 안다. 아들이 상품을 건네면 내가 탑차 안쪽에 쌓고, 다시 내가 비운 자리를 아들이 채운다. 온몸의 근육은 잔잔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역설적으로 그 통증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가 된다. 잡념이나 망상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과거의 실패나 미래의 불안은 땀방울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진다.

탑차 바닥에 무거운 '똥 짐'들이 든든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주면, 그 위로 크고 작은 삶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고통과 슬픔이 삶의 맨 밑바닥에서 중심을 잡아주기에, 우리 인생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이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몸으로 배운다.


택배를 하며 아내와 아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잡념이나 망상에 사로잡힐 틈도 없이 일에 몰입하는 과정 속에서, 험난한 삶을 뚫어내고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저력이 샘솟는다. 고통이 가족과 나누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파괴적인 비애가 아니라 견딜 만한 삶의 '리듬'이 된다.


​오늘도 배송을 마친 뒤, 앞서가는 아들의 스타렉스 뒷모습을 보며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오늘 수많은 타인의 현관문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삶의 의미를 하나 주웠다. 비록 현실 속 내 삶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요동쳐도, 우리는 함께 땀 흘리며 다시 링 위로 오르기 위해 기꺼이 볼품없는 복대를 오늘 다시 허리에 두를 것이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그저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되었다는 사실 앞에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