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포에서 60대 쿠팡배송기사가 새벽배송 중에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다는 기사를 봤다. 체력적인 부담도 있었겠지만 배송마감시간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히 컸으리라 예상된다.
삼가 동료택배기사인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택배는 참 단순한 노동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쉽게 '물질적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라고 여기고 선택했다. 하지만 일하면서 힘겨운 고비의 순간을 겪을 때마다 '결코 택배는 쉽지 않구나'를 되뇌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나 연립의 경우 무거운 세제나 생수 등은 계단으로 날라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한건이 아니라 여러 건을 동시에 배달할 경우에는 여러 차례 계단을 왕복해야 한다. 서너 시간 동안 까대기를 하면서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배송에 나설 때마다 야속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도 고양이모래, 세제, 유아용 기저귀나 물티슈세트 등 다량으로 배송할 때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일주일 간격으로 몇 박스씩 다량으로 주문하는 고객을 향해서는 너무하다는 원망감이 생겨서는 안 되는데 연약한 사람인지라 생겨난다.
무거운 짐의 운임을 스캐너로 찍어보니 여지없이 형편없는 저가운임이다. 그만 맥이 빠진다.
무거운 짐에 고꾸라지고 투덜대고 푸념하는 이런 상황에 처할 때면 차라리 택배기사인 내가 로봇이라면 모두에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택배기사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면 고객도 부담 없이 가리지 않고 주문할 수 있고, 택배회사도 근로복지나 운임불만 등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마구 부려먹기 좋고, 배송하는 입장에서도 이런저런 상황에 감정이나 육체적 고통에 시달릴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때마침 삼성 등 대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사업으로 로봇산업에 사활을 걸고 매진하고 있다. 사람과 똑같은 이족보행로봇들이 금방이라도 양산에 돌입할 것 같은 분위기다.
요즘은 피도 눈물도 없는 로봇에게 사람은 열등감으로 점점 더 위축되는 세상으로 향하는 것만 같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로봇인간 터미네이터는 인간은 왜 눈물을 흘리는지 궁금해했다.
도대체 사람인 나는 왜 나약한 눈물을 달고 사는 걸까.
최근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전쟁소식을 뉴스를 통해 시청했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납치해서 학대하며 처형하는 잔인한 장면들을 보면서 전쟁의 잔인함에 전율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친딸을 살해한 범인이 오천만 원 합의금과 함께 내민 사면요청서에 기꺼이 서명했다는 비정한 친부의 사건소식을 보면서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가.' 하는 깊은 한숨을 쉬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눈물이 없는 로봇들이 벌인 행태라면 쉽게 이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싶어 진다.
정의와 도덕이 자취를 감춘 사람과 사회는 그저 모든 존재는 수단화되고 물질축적을 위한 도구로 변질된다.
평소 월요일보다 늦은 배송을 마친 후 돌아왔다. 아내가 고구마튀김을 준비한다. 힘들 텐데 왜 그러나 했더니 배송 중에 어느 집에서 나는 튀김냄새에 그만 먹고 싶어졌다고 한다.
김치찌개는 보글거리며 끓는 곁에서 고구마튀김을 아내를 도와 부치고 있으니 갑자기 막걸리가 생각났다. 얼른 마트로 가서 달달한 옥수수 막걸리 한병을 사 왔다.
아내와 함께 소쿠리에 고구마튀김을 내놓고 푹 끓인 김치찌개로 이른 저녁식탁을 차렸다.
작은 와인잔의 달달한 옥수수막걸리를 곁들이니 근사한 저녁만찬으로 변했다. 가족이 서로 격려하며 식사하는 이 순간 그동안의 고단함과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배송할 땐 이런저런 일로 갈등하고 서운해하고 원망하며 툭탁거렸지만 한꺼플씩 앙금을 털어내며 또 이렇게 서로에게 더 다가선다.
로봇은 <물질적 결핍>을 채우는 충실한 수단이다. 하지만 사람은 <만족의 결핍>을 막는 존재이다. 사람의 눈물은 나약함의 표식이 아니라 좋은 삶을 향한 간절함의결정체이다.
정의로운 사회란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센델>
사람에게서 나약한 눈물이 거두어지는 순간 세상은 단순히 물질 축적에만 몰두한 채 점점 더 잔인한 지옥과 같은 전쟁터로 변해 버릴 것 같아 두렵다.
부디 로봇의 시대에 들어서도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들 함께 챙기며 살았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