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런 소장이나 답변서를 받고 당사자들은 감정을 상해하고 힘들어하나 정말 신경쓸 것이 없다. 판사들은 남의 결혼생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3) 화나는 부분에 하나하나 반박을 하면 된다. 굳이 하고 싶지 않다면 안해도 된다.
4) 조정위원들은 답변서를 보지도 않으니 천천히 내도 된다. 한달 정도 시간을 잡고 준비하자.
하지만 변호사 상담의 제일 큰 효과는 누군가와 이런 상황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나보다 나의 법적 상황을 더 잘 분석해주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살가운 위로를 해주지는 않아도 - 사실 위로보다는 해결이 더 중요한 상황이므로, 별 문제 없고,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큰 심호흡을 한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가면서 뿌옇게 흐려진 머릿 속까지 깨워주었다. 안괜찮지만, 괜찮다고 생각하자 괜찮다. 정말 괜찮을 것이다.....
답변서 제대로 보는 데에는 일주일이 걸렸다. 첫날은 주욱 훑어보고 나가서 화를 내며 울다 들어오고, 소진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하루를 거르고 다음 날은 반박 포인트에 형광펜을 치며 읽고 또 나가서 울다 들어왔다. 잠시라도 사건을 잊어보고자 또 하루를 거르고... 그 다음 날은, 종이를 펴놓고 포인트마다 어떤 반박을 할 것인지 단어라도 적어놓고 또 나가서 울었다. 중요한 것은 한번 마음먹고 펼쳤을 때 끝까지 보는 것. 꼼꼼하게 읽지는 못하더라도 일단은 끝까지 다 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하는 길이라면 빠르게 가자... 지금은 아파도 곧 피가 멎고 살이 아물을 거야. 지금 도려내지 않으면 영영 못한다.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한다.
애도 낳았는데, 애기 키우며 시험도 봤는데, 그런 거지같은 대우도 견뎠는데. 못 할 게 어딨어. 할 수 있어
일단 끝내보자.
마치 고문받으러 들어가는 독립투사처럼. 거창한 마음을 먹고 다시 종이를 펼친다.
뒤로 갈수록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느끼더라도, 익숙해져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이 내용에, 이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똑같이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 보다는 그가 쓴 답변서의 앞뒤가 맞지 않는 허점을 짚어내고 그것을 공략해야 한다. 거짓말이니, 분명히 빈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정말 무뎌졌다. 지옥같은 시간들을 발버둥치면서도 막상 건너고 보니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을 읽어도 억울하지 않고, 화도 나지 않았다. 아, 정말 이런 ××랑 이혼 마음 먹길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어 참 다행이다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니, 내일이 조정기일이었다.
가서, 웃어주고 와야지. 절대로 울지 말고 흥분도 하지 말고 눈을 똑바로 맞추며 씩 웃어주는 것이 내일 내 목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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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고 보니, 답변서는 최대한 늦게 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판사야 막판에야 서류들을 읽어볼 텐데 굳이 초반에 서류를 내서 상대방에게 준비할 시간을 줄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그가 조정기일에 임박해서 답변서를 내서 저도 막판에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일주일 만에 무뎌진 것은 정말 큰 은혜였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으니 우리 답변서는 최대한 임박해서 냅시다....-_-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신앙에 매달렸던 초반과 달리, 이번엔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해 화를 내고 울고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가장 필요한 것은
" 근데 넌 괜찮아..? " 라는 관심과 걱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저같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지적은 변호사가 충분히 해주니.. 그것 말고 그저 괜찮냐고 물어봐주세요. 그게, 최고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