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기를 하면서부터 걱정했던 것은 상대방의 답변서 였다. 소장을 위한 이혼 히스토리를 적으면서도, 이걸 그와 어머니가 읽으면 얼마나 화가 날것인 지 그 화가 나를 향한 화살에 어떤 독을 묻혀올지 무서웠다. 따라와서 때릴 것도 아니고, 이제 상관없어질텐데 도대체 왜 그렇게 무서웠는 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마 밤에 무작정 달려드는 불덩어리 두개가, 호랑이가 아니라 강아지새끼란 것을 알고 난 후라서 그럴 것이고, 그 때에는 잠을 설치고 밥도 안 먹힐 정도로 정말 두려웠었다.
검색을 해보면 주로 책잡을 것이 없는 여자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답변 내용은 사치가 심하고, 시부모를 홀대했으며 살림을 소홀히 했다... 블라블라 라는 추상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던데.. 도대체 얼마나 악독한 이야기를 적었을까. 생각만 해도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거두어 들인 후에도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답변서 제출기한은 소장송달 후 한달인데, 일각이 여삼추로 한달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기간은 또 다르게 괴로운 것이 나는 새 직장에 적응을 해야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색하고 엉성하게 일인지 뭐인 지 모르는 것들을 배웠다. 그냥 혼자 섬처럼 떨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또 팀 분위기가 그렇지는 않아서, 이리저리 챙김을 받고 과제를 받고 중간중간 농담에 참여하다 보면 정신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을 묻는 질문을 단순히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때마다 서럽고 서글픈 마음을 넘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는 평소의 10배는 웃어서 팔자주름이 짙어진 얼굴을 하고 있다가 퇴근을 위해 사원증을 찍고 나오는 순간, 표정은 급격히 굳어버린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지금 무언가 작품을 하나 연주하고는 있는데.. 어디로든 어떻게든 보기 좋은 모양새로 흘러는 가고 있는데, 그런데 정작 연주자인 나는 어떤 음계의 건반을 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는 이상한 상태가 이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은 퇴근 후 아기를 뒤로 하고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한달이 되자마자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보니, 답변서 제출기한은 별 의미가 없는 기간이라고 한다.. 다들 제때에 내지 않으며 이러다 기일이 지정되면 부랴부랴 낼 거라고.. 기일은 언제 지정되냐고 하니 송달 후 한달이 넘고 또 2주 정도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기일지정신청을 해서 기일을 좀 당겨는 보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래도 12월에나 열릴 것 같다는 기운빠지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빨리 임시양육권자지정을 받고 싶은데. 그래야 마음이 편해질텐데, 아직도 넘을 산이 끝도 없이 보인다는 사실에 또 마음이 어려워진다. 약해빠진 무른 마음이 동강동강 나는 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고, 다시 저 낯선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한다. 가서 즐거운 척 웃고, 알아먹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해야 한다.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답변서 따위 절대 미리 두려워 하지 마시라는 것이에요. 생각보다 이혼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합니다. 첫 소제기 후 기일이 잡힐 때까지 저조차도 5달이 걸렸어요. 그리고 답변서는 그 직전에야 받았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안그래도 힘든 초반에는 마음을 편안히 정말 편안히. 먹으세요. 다 괜찮습니다.
힘든일들은 나를 강하게 할 것이고, 기쁜 일들는 나를 즐겁게 할거야. 앞으로 난 강해지고 즐거울 일 밖에 남지 않았어. 오늘도 퇴근길에 입술을 깨물며 하는 기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