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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일기 (11)

사과?

by 도미니 Feb 18. 2023



소장을 받고 남편은 두번 정도 나를 찾아왔었다. 소를 제기하고 한달 반만의 일이다. 보고 싶지 않다는 나에게 또 마음대로 하라며 성질을 부려대더니 결국은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이혼은 받아들이겠지만 합의로 하자는 이야기였다.


정말 재미있는 얘기다. 난 이미 소송에 들어가는 돈을 모두 지불했는데,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데, 이제 와서 합의를 하자는 것은 정말 무슨 말일까. 아마도 자신이 이번 소송에서 얻을 게 없다는 것을 변호사 누구에게서든 듣고온 모양이지. 그럼 어떤 조건으로 합의를 할 지 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재산분할도 양육비도 지불할 생각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승산이 없으니 양육권은 주겠지만 양육비는 도대체 얼마를 주려고 저러는 걸까.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연락이 와서 또 억지로 만났을 때, 드디어 그는 사과를 해왔다.


코웃음이 나왔다. 그래 지난 번에도 니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 거야. 근데 니 자존심이 널 막았겠지. 그래서 제일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며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합의이혼이었을거야. 난 알고 있었어. 근데 항상 그 미묘한 로직을 나만 알더라. 넌 또 그럴 때마다 인정하지 못하고 날 망상증 환자로 몰아갔었어.


합의이혼을 해? 조건을 이행해. 내가 소장에 썼잖아. 위자료 3천. 재산분할. 양육비. 이행해. 그러면 내가 생각해볼게. 일단 그거 먼저 이행을 해봐 어디. 할 생각 없지? 그러니까 우린 안된다는 거야. 그래서 법원으로 간다는 거잖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판사는 제출된 서류만 보고 판단을 해. 오빠 나이가 50이 내일 모레야. 그리고 오빠 명의 재산이 그만큼이나 있어. 근데 자기 애 키우는 마누라한테 생활비 50만원도 못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판사가 들으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셀수 없이 많은 난도질에 이미 굳은살로 마음 전체가 아물어버린 나를 앞에두고, 추억팔이를 하는 모습이 가소롭다. 저지할 기력도 의지도 없어 한귀로 흘리며 앉아만 있는데, 손 두개 불쑥 앞으로 나온다


?? 하는 내 얼굴에다 대고 손바닥을 하늘로 보인 손을 더 내밀길래, 참아왔던 소리를 질러버렸다.


지금 나보고 이걸 잡으라고? 미쳤어? 내가 무슨 기르던 강아지새끼인 줄 알아? 지금 이렇게 되서 와서는 니가 손내밀면 내가 덥썩 잡을 줄 알았어? 와 정말 개념도 양심도 없구나 나보고 손을 잡으라고? 지금? 니 손을?


나가려는 나를 가로막고, 챙피한 줄도 모르고 카페에서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가 분을 삭이며 앉은 내게 포기하지 않고 또 한번 본인에게 힘을 좀 달라며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평강공주도 아니고 왜 이런 사태파악도 안되는 멍청한 극단적 이기주의자와 결혼을 한 걸까. 나는 왜 그랬을까.


아기를 생각해서 애써 하지 않았던 17년 3월 어느 날에 대한 후회가 이어졌다.


이 정도로 개판인 줄은 정말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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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남편이 짜온 플랜은 신용대출을 받겠대요. 자기 명의 재산은 어머니 것이니 그걸 내가 어떻게 건드리겠냐면서.. 신용대출을 받아서 저와 아이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대요.


정말 무슨 말일까요? 합의이혼조건도 아니고, 의무를 다하겠으니 이혼을 없던 일로 해달라는 것인데, 그럼 저 신용대출 결국 제가 갚는 꼴이잖아요.


이런 간단한 사태 파악조차 안될 정도로 바보멍청이인 건지, 이기심이 그 모든 판단을 흐리는 건지. 문자를 몇번이고 들여다보았어요 이게 정말 무슨 이야기인가, 얘는 진정 제정신인가.. 해서.


다시 재판절차가 진행되는 것 같아 밀렸던 글을 올립니다. 쉬는 동안 잊었던 현실이 법원의 연락과 함께 몰려오니 또 괴롭지만


언제나 저에게 하는 말은,


전세계 이혼절차 중에서 나는 제일 안힘든 사람이다. 그러니 감사해야한다. 감사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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